사립학교법 개정에 강하게 반대해 온 사학법인들이 이사장 취임과 이사 해임 권한을 이사회 의결만으로 가능하게 이미 법인 정관을 대폭 개정해 놓은 사실이 밝혀져 파문이 일 전망이다.
이는 국회에서 △개방형 이사제 도입 △학교법인 임원의 이사장 친족 비율 축소 등을 골자로 하는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사실상 이를 무력화할 수 있는 조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교육부 정관준칙 폐지와 동시에 법인정관 '개악'**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구논회 열린우리당 의원실에 따르면, 전국 4년제 대학 67개 교 가운데 34개 교가 이사장 취임과 이사 해임 권한을 이사회 의결만으로 가능토록 법인정관을 개정했다. 또 2년제 대학 31개 교 가운데 15개 교, 초·중·고 61개 교 가운데 55개 교도 이미 같은 방식으로 법인정관을 개정해 놓은 상태다.
기존 사립학교들의 정관준칙(8장 117개 조와 별표 2개로 구성된 예규)은 임기 만료 전 임원의 해임에 대해 관할청의 승인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었고, 이사장 취임 또한 관할청의 승인을 받도록 돼 있었다. 그러나 교육인적자원부는 지난 5월 23일 "학교법인의 정관 자치권을 준칙이 침해하는 결과가 초래되고 있다"며 정관준칙의 폐지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에 대해 교육계는 "임원의 해임 절차가 이사회 의결에 의해서만 이뤄질 경우, 외부 인사에 배타적인 이사회가 법인 운영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살리는 개혁적인 이사회 구성 방안을 사실상 무력화할 소지가 높다"며 "이번 조치는 결국 교육부와 사학법인들이 합작으로 만들어낸 '국민 기만극'에 다름 아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구논회 의원은 "교육부는 정관준칙을 폐지하기 전에 사립학교 관계 법령의 취약한 부분을 보완하는 최소한의 장치를 사전에 마련해야 했지만 이를 고의적으로 방치했다"며 "특히 임원의 해임에 대한 관할청의 승인 요건은 지난해 12월 정관준칙 폐지와는 별도로 추후 추진하겠다고 밝혀놓고 무엇이 그리 급해 공문까지 보내 임원해임에 대한 승인 요건 삭제부터 강조했는지 명확히 해명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인 '입김' 강화로 학내 민주화 후퇴 우려**
많은 사학법인들은 이번 법인정관 개정 과정에서 현행 사립학교법을 어겨가며 법인의 권한을 강화하는 반개혁적인 조치도 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전문대학법인협의회는 정관준칙 폐지 결정이 나자마자 각 사립대학에 정관 개정시안을 배포해 △이사장에게 예·결산 자문위원 임명권 부여 △예·결산 자문위원회에 법인 감사 참관, 의견 개진권 부여 △심의기구로 설치돼 있던 '대학평의원회' 대신 자문기구인 '대학평의회' 설치 △이사회의 대학평의회 임명 △학교장 또는 이사장에게 교원인사위원회 임명권 부여 △인사위원회에 학부모·동문 참여 등의 내용이 개정 정관에 들어가도록 독려했다.
그러나 '예·결산 자문위원 임명권을 이사장에게 부여'하는 것은 학교회계와 법인회계를 구분한 현행 사립학교법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며, '예·결산 자문위원회에 법인 감사가 참석'케 하는 것도 부당한 학사개입의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또 '대학평의원회 대신 대학평의회를 설치'하는 것은 학내의 민주적인 의사결정기구에 대한 무력화 조치이며, '인사위원회에 학부모·동문 참여'를 열어 놓는 것도 민주적인 절차에 의한 선출 방법이 선행되지 않을 경우 법인의 '친위대' 역할을 할 소지가 높다는 게 교육계의 지적이다.
***정관에 '사학윤리강령' 포함 문제엔 "나 몰라라"**
한편 사학법인들은 법인정관 개정 과정에서 지난 6월 27일 결의대회 등을 통해 천명했던 투명성·공공성 강화 방안들을 미미하게나마 일부 반영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사학법인들은 당시 예·결산을 전면 공개하겠다고 밝혔으나 구논회 의원실이 초·중·고 61개 교의 정관을 조사한 결과 여전히 '비공개'로 돼 있는 법인이 43개 교나 됐다.
또 한국사학법인연합회(회장 조용기)는 지난 8월 8일 제2기 사학윤리위원회 발족과 더불어 '사학윤리강령'을 각 사학법인의 정관에 포함시키겠다고 밝혔으나, 확인 결과 4년제 대학 2개 교, 2년제 대학 1개 교만 이를 정관에 삽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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