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단계 6자회담에서 북한이 던진 첫번째 카드는 '새로운 경수로 건설'인 것으로 확인됐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서 짓다가 중단된 함남 신포 경수로의 공사 재개에 대해 미국이 '절대 불가', 한국이 '대북송전으로의 대체'를 강력히 주장하는 상황에서 제3의 요구사항을 내놓은 것이다. 경수로 건설 고수 입장을 이어가며 한미의 반발을 비켜가는 의외의 제안이다.
***평화적 핵 이용권의 세부 요구사항 명확해져**
북한은 베이징 6자회담 개막을 전후한 양자협의에서 이같은 카드를 내놨고 14일 오후 이번 회담 들어 처음 갖는 북미 양자협의에서도 이같은 입장을 직접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
회담에 참가중인 정부 관계자는 14일 "북한이 개막 전 양자접촉에서 신포 경수로는 케도 차원에서 이뤄진 만큼 중단된 공사를 재개하라고 요구하지 않는 대신, 자국이 모든 핵을 포기하는 것에 상응해서 6자회담 차원에서 경수로를 지어달라는 요청을 했으며 북미 양자협의에서도 이런 주장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경수로를 가져야 하며 이것이 핵문제 해결의 관건"이라는 김계관 부상의 13일 발언대로 북한은 회담의 최대 쟁점인 평화적 핵 이용 문제에서 경수로 확보를 그 핵심 내용으로 삼으려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경수로에 대한 북한의 입장은 회담 개막 전까지 뚜렷하지 않았다. 북한이 말하는 경수로가 평화적 핵 이용권의 하위 개념으로 미래에 경수로를 지을 수 있는 권리를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1994년 제네바 합의의 산물로 짓다 중단된 신포 경수로를 의미하는 것인지 우리 정부의 고위 관계자들도 아리송해 했다.
그러나 이날 제안으로 북한의 입장이 명확해졌고 바로 이 지점에서 회담 초기의 논점도 분명히 부각되고 있다.
***한미, 난감한 표정 속에 '불가' 입장 표명**
문제는 미국이 경수로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1994년 제네바 합의의 폐기를 대전제로 북핵 문제에 접근하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신포 경수로는 물론 어떤 형태의 경수로도 그것을 허용할 경우 제네바 합의의 재판이 될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이같은 판단에는 영변 흑연감속로뿐 아니라 신포 경수로마저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전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북한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저변에 깔려 있음은 물론이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는 이날 경수로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질문에 "한반도 비핵화는 무조건 이뤄져야 하며 그 이후에 다른 논의가 이뤄질 수 있다"고 말해 미국의 입장이 확고함을 내비쳤다 .
힐 차관보는 이날 오후 한미 오찬회동 뒤에도 "경수로는 이론적인 문제로 많은 시간과 돈이 든다. 한반도 비핵화 실현이 우선 시급한 문제이며, 누가 경수로에 펀딩(funding)하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이어 "4차 수정초안이 아주 완벽해 최소한의 변화를 통해 문제를 매듭짓고 싶다"고 말해 제3의 경수로 건설로 논의를 확대시킬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했다.
우리 정부도 난감해하는 분위기다. 신포 경수로 문제를 대북 송전 '중대제안'으로 돌파하려던 타결안이 빛을 바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대표단의 고위관계자는 "핵 폐기의 보상으로 남측이 북측에 200만kW 전력송전을 제의한 바 있다"면서 "경수로 요구는 이런 측면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평화적 핵 이용·활동 권리와 경수로 지원 요구는 합리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미국 태도에 따라 회담 기간 좌우할 듯**
초반 분위기가 회담의 성패를 좌우할 거라고 여겨졌던 이번 6자회담이 처음부터 벽에 부딪히자 또다시 휴회에 들어가거나 최악의 경우 결렬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의장국인 중국은 북미 양국이 경수로를 핵심으로 한 평화적 핵이용권과 핵폐기 범위에 접점을 찾지 못할 경우 회담을 장기화할 필요가 없다고 보고, 이렇게 되면 추석전 종료를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북한측 태도를 지켜본 뒤 극적인 반전이 없을 경우 여러가지 변수를 감안해 이번 주 중반께 결론을 내릴 것"이라면서 "휴회가 될지 여부는 그 때 가서 판단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결국 2단계 회담의 기간과 성패는 1차적으로 새로운 경수로를 지어달라는 북한의 주장에 미국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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