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오늘 남장(男裝)하고 올까 하는 생각까지 했어요. 우리가 경찰의 보육시설 설치 자체를 반대하거나, 여성들끼리 대립하는 걸로 비춰질까봐 걱정입니다."(조미환 사직어린이독서연구회 회장)
지난 6월 서울시립어린이도서관 별관에 여성경찰 자녀의 보육시설을 설치하기로 결정한 경찰청이 학부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를 강행하자, 8월 17일부터 서명·탄원운동을 벌여 온 학부모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이들은 8일 전교조·민노당과 함께 경찰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모의 소득수준과 상관없이 아이들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어린이도서관"이라며 "더 지어도 모자랄 판에 경찰이 꼭 굳이 이곳에 보육시설을 설치해야겠냐"고 항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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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경찰청은 이미 어린이도서관 별관 1층의 전시실과 보존자료실을 철거해 도서관 본관 1층의 교양강좌실과 휴게실로 옮겼다. 그 덕분에 많은 어린이들이 사라진 휴게실을 대신한 도서관 마당의 파라솔을 이용하고 있다. 그나마 비오는 날에는 현관 앞에 쪼그려 앉아서라도 도시락을 먹을 수 있지만, 날씨가 추워지면 갈 데도 없다.
***서울 유일의 공공어린이도서관, '경찰과의 오래된 악연(?)'**
1963년부터 서울시립아동병원으로 쓰이다 1979년 5월 4일 유네스코 제정 '세계 어린이의 해'를 기념해 공공어린이도서관이 된 종로구 사직동의 어린이도서관은 현재 하루 평균 2500여 명이 이용하며, 2200여 권 대출, 4600여 권 열람을 자랑할 정도로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이 어린이도서관의 별관을 경찰청이 접수해 경찰 자녀 보육시설로 만들겠다고 나선 배경에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 이 곳은 애초 사직단과 인접해 있다는 연유로 토지는 문화재청, 건물은 서울시가 각각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1983년 청와대 하명 사건의 수사를 전담하던 경찰 '사직동팀'이 별관을 접수(등기는 98년)했다. 그러나 2000년 이른바 '옷로비 사건'이 터지면서 사직동팀이 2001년 5월 해체되자, 서울시교육청은 이를 경찰청으로부터 무상임대받았다. 교육청은 2002년 6억여 원의 리모델링비를 들여 디지털자료실, 전시실 등을 보강해 어린이들의 품으로 돌려줬다.
***경찰 "여성경찰들의 보육 애환도 살펴달라"**
그러나 경찰청이 이 별관에 여경 100여 명의 자녀를 위한 '24시간 운영 보육시설'을 설치해 10월 개소하겠다고 밝히면서 갈등이 시작된 것. 경찰청은 최근 5일 설치업체와 계약까지 완료했다.
경찰은 "학부모들의 입장도 이해하지만 여경들의 보육 애환도 이해해달라"며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경찰청 여성청소년기획과 관계자는 "현재 가임기의 여경은 3200여 명으로 매년 600명씩 증원할 예정인데다, 대부분 3교대 근무기 때문에 보육시설은 필수적"이라며 "직장보육시설 증축을 위해 2005년도 예산으로 29억 원을 신청했으나 2억7000만 원만 나왔다. 이 예산으로 설치가능한 곳이 경찰청 소유인 별관밖에 없었다"고 '강행'방침을 확인했다.
그는 이어 "현재 서울시교육청과는 어린이도서관 본관 건물을 증축하는 방안을, 서울시와는 서울시 소유의 별도 2층 건물을 활용하는 방법을 각각 논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경찰청이 계층간 차별을 줄일 수 있는 공공어린이도서관의 의미를 고려해 다른 공간을 찾아야 한다"는 학부모들과 "경찰의 어린이도 적절한 보육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맞서고 있는 경찰의 대립이다. 대한민국의 열악한 보육·교육 환경이 빚어낸 '불필요한' 갈등이 어떻게 해결될지 예의 주시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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