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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6자회담, 북-미간 '초보적 신뢰구축'이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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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6자회담, 북-미간 '초보적 신뢰구축'이 성과"

미래전략연구원 '지구촌, 분석과 전망' <25> 제4차 6자회담 쟁점과 과제

***1. 기대와 아쉬움**

시작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회담이 시작될 때만 해도 첫 단추를 잘 꿰었다는 평가와 함께 이번엔 무언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기대를 갖기도 했다. 우선 회담 복귀 과정에서 북미간 직접 접촉이 있었다. 뉴욕에서의 직접 접촉 말고도 지난 7월 초 힐 차관보와 김계관 부상이 직접 만나 회담재개를 결정한 것은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이른바 중대 제안으로 압축되는 한국 정부의 적극적 역할 역시 평양과 워싱턴을 오가며 북미간 의견접근을 가능케 하는 좋은 조건이 되었다.

회담 기간 내내 활발한 양자 접촉이 진행된 점 역시 분명 예전과 다른 모습이었다. 인사말과 기조연설에서 북미가 이견을 드러내긴 했지만 회담의 진전을 가로막을 만한 장애를 꺼내들지 않으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합의문 작성과정에서도 중국이 제시한 초안을 놓고 4차례나 수정을 해가며 진지한 의견수렴의 모습을 보였다. 과거의 형식적 의견교환과는 달리 이번에는 북핵문제 해결의 원칙을 합의하기 위해 서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 게 사실이다.

그러나 역시 쉽지 않은 협상이었다. 과거에 비해 진일보한 회담 태도와 형식에도 불구하고 공동합의문 도출이라는 마지막 성과를 이끌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결국은 합의 도출 대신 일시 휴회라는 우회로를 택함으로써 아쉬움을 남기게 되었다.

***2. 절반의 성공**

이번 휴회 결정으로 제4차 6자회담은 절반의 성공에 머물고 말았지만 그 동안에 거둔 성과도 적지 않음을 함께 지적해야 한다. 무엇보다 북미간 초보적 신뢰가 일정하게 형성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성과다.

북핵문제 해결의 핵심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은 이번 4차회담에서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실질적 대화를 가졌다. 물론 지금까지도 북미간의 만남은 있었다. 그러나 테이블도 없는 복도에서 잠깐 만나거나 회담장 구석 소파에 앉아 환담하는 수준을 넘지 못했다. 오히려 북미간 만남에서 북한 대표는 미국에게 핵무기를 갖고 있다는 등의 협상용 위협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4차 회담에서의 북미 양자접촉은 단순한 만남을 넘어 이견을 조율하고 실제 협상이 진행되는 '양자 회담'으로까지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막판에 결렬이라는 손쉬운 길을 택하지 않고 또 다시 힘겨운 협상을 벌여야 하는 휴회를 택한 것도 사실은 북미간 초보적 신뢰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북미간 활발한 양자 대화가 사실상 이번 회담을 자기 주장만 하는 회담이 아니라 '협상이 있는' 회담으로 진전시켰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이번 회담기간 동안에 축적된 북미간 초보적 신뢰는 휴회기간에도 협상의 진전을 기대케 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아울러 한국의 적극적인 역할 역시 이번 회담의 가시적 성과로 손꼽힐 만하다. 회담 성사에서부터 회담 진행과 합의문 도출과정에 이르기까지 한국 정부의 역할은 단연 돋보였다. 기존에는 회담개최국인 중국이 활발한 중재 역할을 수행했음에 비해 이번에는 한국 정부가 그 역할을 대신했다고 평가할 정도로 회담의 진행과 협상의 진전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지고 남북, 한미 양자 접촉을 통해 북미간 접점 찾기에 나선 한국의 돋보이는 역량은 4차 초안을 놓고 북미가 결정적으로 대립하고 있을 때 남북미 3자 접촉을 주선해낸 데서 단적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북한과 미국 사이의 협상을 진전시키는 이른바 '촉진자'(facilitator) 역할을 명실상부하게 수행한 것이다.

협상내용에서도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고 할 수 있다. 과거 3차까지 진전된 것이라고는 기껏해야 북한의 핵동결과 미국의 상응조치에 대한 논의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회담에서는 북한이 동결을 넘어 핵폐기라는 입장을 명확히 했고 미국 역시 그에 대한 댓가로 다자 안전보장과 대북관계 정상화 및 경제지원의 의사를 명확히 했다. 이는 사실상 핵문제 해결에서 필요한 양측의 요구사항을 원론적이지만 서로 수용하겠다는 합의로서 그 자체가 매우 획기적인 의미를 갖는다.

또한 이번 회담에서 북미 양국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들어줄 수 있다는 의사와 함께 상대방이 반사적으로 거부하는 기존 이슈는 적극적으로 제기하지 않는 유연함을 보였다. 즉 북한이 신경질적으로 싫어하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되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CVID)와 고농축우라늄(HEU) 문제를 미국이 협상과정에 제기하지 않았고 북한 역시 미국이 결코 수용할 수 없는 핵보유를 전제로 한 핵군축 회담 주장을 테이블에 올려 놓지 않았다. 서로 필요로 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수용하면서도 서로 원하지 않는 것을 피해가는 협상의 기술을 보여준 것이다.

또한 이번 회담에서 새로운 의제로서 한반도 평화체제와 관련된 논의가 합의되었음도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6자회담이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다자틀의 논의구조임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위해 관련 당사국들이 논의를 진행한다고 합의한 것은 6자회담이 북한의 핵포기를 넘어 장기적으로는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과 냉전구조 해체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사실상 북한의 핵폐기를 전제로 북미관계가 정상화되어야 한다고 할 때,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바로 정전 상태의 한반도다. 북한과 미국이 교전당사국으로서 아직도 정전상태에 놓여 있는 만큼 향후 양국간 관계 정상화는 전쟁상태의 명실상부한 법적 종료를 전제로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남한과 북한이 휴전선을 경계로 군사적 대치를 지속하고 있는 것도 법적으로는 정전체제에 따른 것인 만큼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 된다. 결국 이번 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위해 논의하기도 했다는 사실 자체가 북핵 문제 해결이 질적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3. 쟁점 분석: 평화적 핵이용 문제**

앞에서 지적한 적지 않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이번 회담이 절반의 성공인 것은 마지막 산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거에 비해 북미간 초보적 신뢰가 쌓인 것은 분명 성과였지만 그 신뢰가 마지막 장애물을 넘어 뛸 만큼 단단한 것은 아니었던 셈이다. 역시 본질적인 부분에서는 북미간 불신이 가로 놓여 있었고 이는 최종 합의문 도출에 결정적 난관으로 작용하고 말았다.

매우 진지한 모습으로 적극적 의지를 가지고 협상에 임한 결과 북한의 핵폐기와 미ㆍ일의 대북 관계 정상화, 북한에 대한 다자 안전보장, 에너지 지원을 포함한 경제지원 등 상호 요구사항에 대한 원론적 합의가 이뤄졌다. 그러나 마지막에 합의문 도출에 결국 실패하고 만 것은 바로 핵폐기의 범위와 평화적 핵이용 권리에 대한 것에서였다.

일단 말 대 말로 북한이 핵동결을 넘어 핵폐기에 동의해준 것은 유연한 태도 변화였다. 그러나 핵폐기의 범위에 대해 미국은 '모든 핵무기와 모든 핵 프로그램'(all nuclear weapons and all nuclear programs)을 주장함으로써 민수용 핵프로그램까지 완전 폐기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반면 북한은 자신들의 핵폐기 범위를 '모든 핵무기와 관련된 핵 프로그램'(all nuclear weapons and related nuclear programs)으로 한정함으로써 발전용 원자로 등 민수용 핵시설은 제외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옥신각신 하다 결국 중국이 제시한 4차 초안에는 일단 미국의 의견을 받아 들여 '모든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으로 명시하되, 단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즉 NPT 복귀와 IAEA 사찰을 통해 신뢰를 쌓는다면 NPT 회원국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는 내용을 병기함으로써 절충을 시도했다. 즉 당장의 폐기범위에는 영변의 원자로 등 민수용으로 주장되는 모든 시설까지 포함하되 북한이 NPT에 복귀하고 IAEA의 사찰을 적극 수용함으로써 모범적인 회원국이 된다면 주권국가로서 평화적 핵이용 권리를 인정한다는 타협이었다. 그러나 이 안에 대해 미국은 동의했지만 북한은 평화적 핵이용에 대한 명확한 표현이 부족해 보였고 결국 거부함으로써 마지막 산을 넘지 못했던 것이다.

마지막 쟁점이었던 이른바 평화적 핵이용을 북한이 끝까지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를 전략적으로 판단한 결과였을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논리적 정당성을 시종일관 유지하려는 집착이 컸다. 체제의 성격상 북한은 자신들이 기존에 주장하던 논리와 원칙을 일관되게 유지하려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미국의 적대정책과 핵위협에 대한 자위력 차원에서 핵을 개발한 것이기 때문에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로 핵무기는 포기하겠지만 당연히 에너지로의 평화적 이용은 정당한 권리라는 일관성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자신들의 핵개발의 발단이 미국이었고 따라서 미국이 잘못한 것이기 때문에 미국의 적대정책 철회로 핵개발 포기는 받아들이지만 평화적 핵이용 권리는 당연히 가져야 한다는 논리인 것이다. 회담 말미에 김계관 부상이 기자들과 만나 '패전국도 아니고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평화적 핵이용 권리를 박탈하겠다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같은 논리적 명분론 외에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 고수에는 제네바 합의의 정당성에 대한 정치적 선전의 효과도 작용하고 있다. 지금 2차 북핵위기로 북미간 제네바 합의는 사실상 사문화되었지만 여전히 북한은 미국에게 제네바 합의의 이행을 요구하고 있다. 2003년 8월 1차 6자회담 당시 북한이 미국에 요구했던 4단계 해법의 마지막 순서는 미국이 북한에 경수로를 완공해주고 북한은 미국이 요구하는대로 핵폐기를 하는 것이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제네바 합의는 북한의 핵동결을 전제로 미국이 두 개의 경수로를 건설해주는 것이었고 이는 곧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지 않는다면 에너지용 경수로 발전소라는 평화적 핵이용은 당연한 권리로 인정받았음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북한에게는 1994년 제네바 합의의 정치적 정당성과 함께 경수로 건설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서도 핵의 평화적 이용이 상징적 의미를 가질 것이다.

또한 북한에게는 실리적 계산도 있었다. 평화적 핵이용을 확보해 놓아야만 핵포기 이후 북미관계 정상화가 이루어졌을 때, 북한이 필요로 하는 내부적 에너지원으로서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할 수 있다. 북한에게 에너지난은 고질적 문제인 바, 향후 북한 경제가 활성화되고 경제규모가 확대되었을 때 필요한 에너지 공급원으로서 원자력 발전소는 유력한 대안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북한으로서는 향후 에너지 확보라는 실리적 판단에서도 지금 평화적 핵이용 권리를 받아 놓아야 하는 것이다.

또한 한국의 중대제안이 제시한 중대제안의 미비점, 즉 북한 영토 밖에서 전력을 얻어 써야 한다는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차후에라도 자국 내 발전소를 건설하려면 응당 핵의 평화적 이용은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된다. 회담 휴회 이후 부시 대통령이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 불가' 방침을 설명하면서 한국으로부터 전력을 제공받기로 했음을 지적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북한이 영원히 한국의 전력에 의존하기를 기대할 수 있지만 북한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경제적 생명선인 에너지를 자국 외의 다른 국가에 영원히 의존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따라서 장차 언젠가는 자국 내부에 자국 소유의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해야 한다는 실리적 계산이 분명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를 위해 평화적 핵이용 권리는 당연히 확보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북한이 핵의 평화적 이용을 끝까지 고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미국에 대한 불신이었다. 북한이 핵을 폐기한 후 미국이 과연 자신들에게 상응조치를 해줄 것이냐는 믿음이 결여된 상황에서 당연히 북한은 핵 포기 이후라도 미국을 다시 위협할 지렛대가 필요하고 그것은 바로 평화적 이용을 앞세운 원자로의 유지가 가장 확실한 방법일 것이다. 핵무기와 핵물질은 폐기한다 하더라도 발전용 원자로를 확보한다면 미국이 약속대로 댓가를 지불하지 않을 때 언제라도 원자로 가동을 중단하고 플루토늄 추출을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북핵문제가 결국 평화적으로 해결되려면 북한과 미국이 서로 요구하는 것을 교환하는 거래의 방식일 수밖에 없다. 즉 북한은 핵폐기를 미국에 제공하고 미국은 그 댓가로 안전보장과 관계정상화 등을 북한에 제공하는 거래가 성사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그런데 거래에는 반드시 '신뢰'가 전제되어야 한다. 판매자와 구매자가 물건을 교환하는 데서 상대방이 약속한 물건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불신 상황에서는 결코 거래가 성사될 수 없다.

북한 입장에서 자신이 핵폐기를 수용하고 이를 실천했을 때, 자신의 핵을 구매한 미국이 비용을 지불하지 않을 수 있다는 불신이 여전히 남아 있고, 따라서 판매자 북한은 합리적 선택으로서 구매자 미국의 댓가 지불을 요구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가지려 하고, 그것으로 가장 확실한 효력을 갖는 것이 바로 원자로에서의 폐연료봉 인출과 재처리에 의한 플루토늄 추출인 것이다. 이번 회담에서 북한이 모든 비판을 감수하고도 평화적 핵이용을 고수하려 한 데는 바로 이같은 거래 중단시 안전장치로서의 대미 위협 카드 확보가 본질적인 이유였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북의 평화적 핵이용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은 북한의 행태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었다. 투명한 검증을 동반한 평화적 핵이용이 모든 국가의 일반적 권리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남북이 1992년에 합의 채택한 비핵화 공동선언에도 핵의 평화적 이용은 명시되어 있고 마찬가지로 1994년의 제네바 합의 역시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이 전제되어 있다. 당연히 NPT 규약에도 모든 국가는 평화적 핵이용의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이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을 부득불 불허한다는 것은 사실상 여론상 불리할 수밖에 없다. 미국 내부에서도 이를 놓고 논란이 있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을 선뜻 허용할 수 없었다. 왜일까? 미국에게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 특히 영변의 원자로는 결코 평화적인 발전용 원자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미국에게 북한의 영변 원자로는 1994년 1차 때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랬듯이 언제라도 핵물질을 만들고 핵무기를 위협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것이었다. 1994년 북한이 저장중인 폐연료봉을 꺼내려 할 때 클린턴은 북폭을 준비할 정도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금년 5월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영변 원자로의 가동을 중단하고 연료봉 인출을 완료했다고 선언하는 것은 그 자체로 부시 행정부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 되었다.

미국으로서는 과거 북한의 행태를 감안할 때 평화적 핵이용을 명분으로 한 원자로의 가동이 결국은 미국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는 핵무기 개발 카드로 종종 활용되었음을 너무나 잘 알게 된 것이다. 경수로를 회담 테이블에 올리지도 말라는 힐 차관보의 발언에서 보듯 미국이 일관되게 경수로 건설을 반대하는 것 역시 농축 우라늄 핵개발로 제네바 합의를 깬 북한의 잘못을 처벌하겠다는 것 외에 본질적으로는 핵무기 개발로 이용될 수 있는 최소한의 가능성만 있는 것이라도 결코 북한에게는 허용할 수 없다는 근본적 불신에서 비롯된다.

평화적 핵이용 논란은 결국 북미 불신이고, 이는 곧 상대방의 선(先) 행동에 여전히 집착하는 모습을 버리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미국이 주권국가의 일반적 권리인 평화적 핵이용을 북한에게 인정할 수 없는 것도 북한의 핵폐기 행동을 미리 보기 전에는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고, 북한이 평화적 핵이용을 이유로 원자로를 유지하고 싶은 것도 미국의 약속이행이 선행되어야만 원자로를 포기하겠다는 심산인 것이다.

이처럼 13일간의 지리한 협상이 의미 있는 성과를 도출하지 못한 채 휴회로 결말나게 된 데는 기실 북미간 불신이 가장 큰 이유로 자리잡고 있었다. 물론 과거에 비해 양측의 신뢰가 형성되고 있는 긍정적 조짐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마지막 산에 도달할 정도의 힘 있는 신뢰는 축적되지 못했음을 역으로 입증한 셈이다.

***4. 한국의 과제**

속개되는 6자회담 전망과 관련해 조금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김정일 위원장의 행보를 보면 핵문제의 조속 타결을 위해 보다 유연한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지난 6월 북한의 6자회담 복귀과정과 남북관계 정상화과정을 보면 김정일 위원장이 이제 직접 나서서 남북관계와 핵문제를 챙긴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제 경제회생과 인민생활 향상을 위해 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진전은 김위원장에게 불가피한 선택이다.

6.17 면담으로 직접 남북관계가 정상화되고 현안들이 정리되자 그 뒤에 열린 15차 장관급 회담과 10차 경추위 등에서 북한은 오히려 남한이 놀랄 정도로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7월 말에 개최된 경추위에서 북한은 남북한의 경제요소를 결합하는 새로운 경협방식을 제안했고 그 시작으로 남측이 신발과 의류 비누용 자재를 제공하고 그 댓가로 북한은 아연과 마그네사이트 등 광산자원을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남한의 경공업과 북한의 광공업이 상호 결합하는 윈-윈의 경협방식은 과거와 전혀 다른 새로운 경협방식인 바,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면서 경공업에 대한 지원을 요구한 것은 북한이 이제 보다 적극적이고 전향적으로 남북관계에 임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8.15 민족대축전에 참가한 북측의 정부대표단이 우리의 요구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충원 국립묘지를 참배하겠다고 나선 것도 대표적인 사례다. 지금까지 남북관계의 진전은 사실상 경협을 중심으로 한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협력 위주였다. 체제와 직결되는 이념적 부분은 서로 건드리기 힘든 금기의 영역이었고 그 대표적 경우가 바로 북측의 국립묘지 참배와 남측의 금수산 궁전 참배였다. 그런데 북한 대표가 먼저 이 민감한 이슈를 풀어감으로써 이제 전쟁과 대결로 상처받은 남북의 이념적 대결이 치유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특히 아직도 정전상태인 지금의 한반도 상황에서 6.25 전사자들이 묻혀 있는 현충원을 공식 참배한 것은 전쟁을 종료하고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첫걸음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이처럼 남북관계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나서 전향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최근의 모습은 앞으로 핵문제에서도 통크게 문제를 전격적으로 풀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낙관적 전망만 갖고 휴회기간 내개 회담이 재개될 때까지 마냥 쉴 수는 없다. 한국은 북미간 셔틀외교를 통해 접점 찾기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이번에 한국정부가 보여준 적극적 중재 역할은 여전히 기대할 만하다. 남북관계와 한미관계를 병행하고 있는 한국이 양자를 설득할 수 있는 창의적 아이디어와 부지런한 노력을 기울인다면 비록 크게 만족스럽지는 못하더라도 포괄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은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쟁점으로 남아 있는 평화적 핵이용에 대한 논란은 이미 북미 모두 상대방의 의사와 논리를 충분히 알고 있으므로 시제를 구분하는 방식, 즉 현재에는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을 불허하되-이는 북한도 전력(前歷)이 있는지라 거부하기 힘들 것이다- 미래에는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을 용인하는-이 역시 미국도 무한정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을 불허할 수 없을 것이다- 방식으로 접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를 놓고 북미간 의견조율이 가능하도록 한국정부가 열심히 뛰어야 함은 물론이다. 남북한간 확보하고 있는 채널을 통해 북한에게는 미국의 처지를 설득하는 한편, 긴밀한 한미공조를 통해 미국에게는 북한의 의중을 정확히 전달하고 상호 설득에 나서야 할 것이다.

휴회기간 중 북미간 수용 가능한 타협점을 찾는다면 속개되는 4차 회담에서 6자회담 이후 최초로 공동합의문이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첫 번째 합의문인 만큼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다 풀겠다는 욕심보다는 핵문제 해결을 위해 상호 수용해야 할 사항들을 포괄적으로 합의해내는 정도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일단 필요한 보따리를 풀어 놓고 각자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만 합의해도 북핵문제는 해결을 향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순서 맞추기는 그 다음에도 해도 될 일이다. 이번에 도출해야 할 것은 공동성명(statement)이고 모든 문제의 해결은 그 이후 합의서(agreement)에서 처리해도 될 것이다. 다시 열릴 4차 회담 때까지 한국은 물론 북한과 미국 모두 불신을 줄이고 신뢰를 늘여 나가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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