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기준기록도 통과하기 어려운 한국 육상
한국 육상은 해방 이후 참가한 올림픽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을 각각 1개씩 획득했다. 모두 마라톤에서 딴 메달이다. 트랙 경기에서는 한 번도 메달을 획득하지 못했다. 결승에 진출한 적도 없다.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는 선수 자체가 적으니 메달을 기대하는 것이 힘들다.
▲ 정혜림 선수 ⓒ연합뉴스 |
우선 A형 기준기록을 통과하는 선수가 자국에 아무리 많다고 해도, 참가 인원은 최대 3명으로 제한된다. 또 A형 기준기록을 통과한 선수가 없는 상황에서 B형 기준기록을 통과한 선수만 있을 경우 1명만 출전할 수 있다. 이 경우 B형 기준기록을 통과하는 선수가 여러 명이 있다고 하더라도 출전권은 단 1명에게만 주어진다.
트랙 종목에 참가하는 한국 선수가 적은 것은 이 기준기록을 통과하는 선수가 거의 없다는 뜻이다. 기준기록을 통과하는 선수가 여럿 있는 상태에서 대표팀 선발전을 치르는 것은 육상 종목, 특히 단거리 트랙 종목에서는 요원한 이야기다.
배불러서 국제대회 성적이 안 나온다?
한국 단거리 육상이 국제대회에서 맥을 못 추는 건 무엇 때문일까? 기존에 지적됐던 신체적인 조건은 지금도 주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그런데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끝난 후 몇몇 전문가들은 다른 해석을 내놨다. 올림픽이나 국제대회에 나가지 않아도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데 크게 지장이 없는 현실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지자체나 실업팀에 들어가면 4000만~6000만 원, 몇몇 선수들은 1억 원 가까운 연봉을 받는다. 이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선수들은 전국체전 우승을 목표로 한다. 그러다 보니 선수들이 올림픽 등 국제대회보다 전국체전에 더 신경을 쓴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수들이 전국체전에서 좋은 성적을 내려는 것을 부정적으로 봐선 안 된다는 견해도 있다. 구미시청 육상팀 권순영 감독은 "전국체전은 선수들에게 가장 기본이 되는 무대다. 거기서 좋은 성적을 낸 선수들이 아시안게임, 올림픽에 진출하는 것 아닌가"라며 "전국체전은 국제대회에 나갈 선수를 키우는 가장 기초적인 대회다.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려고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선수들이 국내의 성과에 안주하도록 만드는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안양시청 육상팀 강태섭 감독은 "육상 선수도 직업적인 측면이 있는데, 전국체전에 나가면 포상금을 주는 등 선수에게 일정 부분 혜택이 돌아간다. 하지만 올림픽은 메달이 아니면 아무런 혜택이 없다"며 "육상, 특히 단거리 종목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기 굉장히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선수들로서는 가능성이 낮은 올림픽 메달보다 당장 성과가 나올 수 있는 전국체전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며 선수들이 처한 현실적인 조건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선수들이 놓여 있는 환경과 더불어, 선수층이 얇아지는 구조에도 문제가 있다. 대한육상경기연맹 관계자에 따르면 고등학교 졸업 후 40% 정도는 은퇴하고 40%는 대학에 진학하며 나머지 20%만 지자체나 실업팀으로 진출한다. 대학에 운동부로 진학해서 다시 실업팀이나 지자체로 가는 경우는 1년에 많아야 2-3명이다. 적잖은 이들이 운동을 계속하지 못하는 건 선수로 활동하다가 은퇴하면 생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 전국체전에 참가한 육상선수들 ⓒ뉴시스 |
보통 실업팀이나 지자체로 진출하는 선수들은 10년 정도 선수생활을 한다. 은퇴하면 지도자나 코치의 길을 걷는다. 월 150만 원 정도 받는 계약직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마저도 자리를 구하기가 힘들다. 감독이나 코치로 고용되지 않는 대다수의 선수들은 직업을 바꿔야 한다. 고등학교 선수들은 이러한 불안정한 미래를 쉽게 선택하지 못한다. 결국 선수층은 얇아지고 더 좋은 기록을 내는 것은 점점 어려워진다.
"올림픽에 나가 성과를 내도록 유도하는 정책 필요"
육상 감독들은 선수들이 처한 상황을 개선해야 올림픽에서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강태섭 감독은 "선수들이 올림픽에 나가서 성과를 내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 감독은 올림픽 메달에 따라오는 연금 외에 다른 인센티브를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면 개인 기록이나 한국 기록을 경신했을 때 인센티브를 주는 정책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육상은 기록을 측정하는 경기다. 개인 기록을 세우는 것 자체가 선수의 노력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메달이라는 상징성이 없더라도 선수가 노력한 부분에 대해 실질적으로 격려하는 정책이 마련된다면, 지금보다 많은 선수들이 국제대회나 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 힘쓸 것이라고 전망했다.
육상 선수들이 비교적 괜찮은 연봉을 받고 운동을 이어갈 수 있는 팀이 많아진 것은 비인기 스포츠를 살리기 위한 정부 정책에서 비롯됐다. 이 때문에 선수들이 올림픽에 나갈 동력이 없어졌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연봉을 낮추고 다시 '헝그리 정신'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선수층을 더 얇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런던올림픽 폐막을 앞둔 지금, 올림픽에 많은 선수들이 참가할 수 있도록 더 치밀한 정책적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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