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기로 발견된 안기부 도청테이프의 내용 공개를 두고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던 정치권의 기류가 2일 공개 쪽으로 급선회하고 있다.
야 3당이 이렇게 한 목소리로 공개를 주장하고 나선 가운데, 테이프 공개 여부를 검증하기 위한 '제3의 기구'를 설치하자고 제안한 여당 내부에서도 보다 적극적인 공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산발적으로 제기됐다.
***與, 지도부의 판단 '유보'에도 공개요구 빈발 **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2일 불법 도청 테이프의 합법적 공개를 위해 '특례법'을 제정할 방침을 밝혀, 결국 테이프 공개 쪽으로 입장이 기우는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다.
이에 오영식 공보부대표는 "국민적 요구에도 부응하면서도 문제를 법체계 내에서 해결하려는 방안을 강구하다 보니 제3의 기구와 특별법을 제안하게 됐다"며 "이 제안에는 공개 여부에 대한 어떠한 판단도 들어가 있지 않다"고 말해 일단 공개 여부를 둘러싼 논란에선 한 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취했다.
이처럼 지도부는 공개를 둘러싼 또 다른 논란을 경계하며 판단을 '제3의 기구'로 넘기려 하는 데 반해, 당내에서는 테이프 공개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비중 있게 제기됐다.
민병두 전자정당위원장과 박영선 의원은 이날 공동 명의의 보도자료를 통해 "삼성 X-파일을 비롯해 274개 테이프 전부에 담겨 있는 부패의 진상이 철저하게 해부돼야 한다"며 테이프 공개를 주장했다.
두 의원은 "일부에서는 불법적으로 수집된 증거는 법정에서 증거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독수독과론(毒樹毒果論. Fruit of poisonous tree)을 제기하고 있으나 독수독과론은 권력기관의 권력남용에 대한 경고"라며 "권력기관의 권력남용이 드러난 X-파일 사건은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독수독과론 원칙과는 배경이 다른 것인 만큼 도청록은 전면 공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사위원인 최재천 의원 역시 라디오 프로그램 인터뷰를 통해 "범죄성이 담겨 있는 테이프에 대해서는 공개하더라도 큰 문제가 없다고 본다"며 공개 주장에 힘을 실었다. 최 의원은 "알 권리와 사생활 보호라는 문제가 충돌할 수 있지만 헌법상 공공복리를 위해서는 기본권이 제한되는 경우도 있으니 결국 공개하자는 쪽이 헌법 이론상 더욱 힘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우리는 테이프 공개 두렵지 않다" **
야당 쪽의 기류도 변했다. 그간 야 3당이 특검 도입에 뜻을 같이 하면서도 민주노동당만이 테이프 전면 공개를 주장해 왔던 데 반해, 이제는 한나라당과 민주당도 테이프 공개 주장에 합세했다.
한나라당 이정현 부대변인은 이날 실무회의 브리핑을 통해 "도청 테이프 내용 공개에 결코 반대하지 않는다"며 "다만 실정법상 불법도청 내용을 공개하는 것 자체가 불법인 만큼 모든 것을 법에 근거해 처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부대변인은 여당이 제안한 특별법 제정에 대해서도 "도청 내용 공개가 불법인 것을 뛰어넘기 위해서라도 특검법 협상 과정을 통해 여야가 함께 특별법 제정을 논의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해 긍정적 검토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간 입장 표명을 아꼈던 민주당도 입을 열어 테이프 공개에 무게를 실었다. 이낙연 원내대표는 "테이프 내용 공개에 신중한 태도를 취해 온 것은 공개의 결과를 두려워해서가 아니다"며 "테이프 내용의 공개 여부에 대한 여론의 향배를 주시하고 법의 제약을 면밀히 검토해 시대와 국민의 요구에 맞게 결단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특히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테이프 공개 가능 쪽으로 선회하는 것은 테이프가 공개되더라도 김대중 전대통령 측에 상처를 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라고 보도되고 있는데 그런 발언 자체가 부도덕한 음해"라며 "우리는 테이프의 내용 공개를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측은 한나라당 김무성 사무총장이 "한나라당이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X-파일에는 열린우리당의 모(母)정당인 국민의 정부 시절에 관한 내용이 포함돼 있고 이 내용이 공개되면 온 국민이 경악할 사건이 담겨 있다고 한다"고 말한 데 대해서도, "김대중 전대통령을 공격하기 위한 도청에 티끌만한 시빗거리라도 걸렸다면 그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겠느냐"며 "김 총장은 뭔가 있는 것처럼 운만 띄우지 말고 김 전대통령과 관련된 문제가 있다면 주저 없이 공개하라"고 반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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