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공중파 방송에서의 노출 자체도 잘못이었지만 난 그 이후 카우치 밴드의 철없는 반응에 더 어이가 없었다. 무슨 메시지가 있는 저항도 아니었다. 그저 생방송인줄 몰랐고 클럽에서 놀듯 분위기 띄우려고 했을 뿐이라니…. 가뜩이나 인디밴드들이 '홍대 앞'의 장기 불황으로 고전하고 있는데 이번 일로 '생각 없는 변태들' 쯤으로 도매금으로 넘어가게 돼 더 화가 난다."
97년부터 기타리스트로 홍대 앞 클럽을 지켜 왔다는 이모씨(27)는 "카우치 밴드 같은 노출은 홍대 클럽가에서 절대 일반적인 게 아니다. 우선 라이브 극장이 너무 좁아 벗을 엄두(?)조차 안 난다"는 말까지 하며 착잡한 심정을 토로했다.
지난 30일 MBC <음악캠프>에 출연한 한 인디밴드의 신체노출 방송사고 후 홍대 앞 음악인들의 심란함은 2일 기자회견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뜬금없는 전라노출, '관객과의 소통' 없다면 홍대 클럽에서도 '폭력'"**
클럽운영자, 음악인, 문화기획자로 구성된 '홍대 앞 음악인 비상대책위'는 "이번 일로 인디밴드 전체가 마녀사냥 식으로 매도당해서는 안 된다"고 우려를 표하면서도 "카우치 밴드의 행동은 명백하게 잘못된 행위다. 더군다나 방송에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위였다. 그저 깊숙이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거듭 밝혔다.
그럼 방송에서는 안 되고, 홍대 앞에서는 괜찮나?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문화기획자 이규석씨는 "표현양식은 관객의 수용 의지와 소통에 달려 있다"며 "카우치 밴드가 설사 홍대 클럽에서 그런 행동을 했다고 해도 관객의 이해와 관객과의 소통 없이 일방적이었다면 그것 역시 폭력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카우치 밴드가 관객에게 위협을 가할 의도가 없었다 하더라도 상당수 관객이 '뜬금없는 전라노출'로 불쾌감을 느꼈다면 분명히 잘못된 것이고 이에 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얘기다. 독일의 문화인류학자 한스 페터 뒤르는 <음란과 폭력>이라는 저서에서 "대개의 문명사회에서 남성의 대중에 대한 갑작스러운 성기노출은 보는 이에게 수치심과 불쾌감을 주는 행위로 주로 '폭력과 위협'의 코드로 읽힌다"고 설명한다.
이유야 어찌됐든 중세부터 근세 초기까지만 해도 남자가 만일 대중 앞에서 성기를 드러내면 오늘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한 처벌을 받았다. 1550년 베네치아에서는 도메네고라는 이름의 남자가 미사에 참석한 여자들 앞에서 성기를 노출했다가 6개월의 감옥형과 10년 추방형을 받았을 정도다.
***퇴폐공연팀 블랙리스트 작성이라니...**
그러나 1일 이명박 서울시장이 순발력 있게(?) 재빨리 내린 조치 또한 위험해 보인다. 이 시장은 "퇴폐 공연팀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서울시 산하 공연 초청 여부에 반영하라"고 말했다. 이런 낙인찍기가 문제해결에 정말 도움이 될까? 이런 식의 접근은 오히려 기존 대중문화에 새로운 문화를 수혈하려는 방송인들의 실험정신을 위축시키고 예술인들의 다양성을 죽일 수 있다.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차기대선주자 중 하나로 꼽히는 정치인의 이러한 '불도저'식 사고방식은 우리 사회의 비주류 비상업문화에 대한 시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금기의 경계를 넘나들면서도 한 사회의 시대정신을 반영하며 대중의 폭넓은 사랑을 받는 밴드들도 얼마든지 존재해 왔다.
60년대 월남전을 둘러싼 미국 젊은이들의 절망감의 상징이던 밴드 도어즈<Doors>(윌리엄 블레이크의 시구절 '만약 인식의 문(Doors of perception)이 사라진다면 무한한 진실이 다가올 것'에서 따옴)의 보컬 짐 모리슨은 당시 반전과 평화를 향한 열망과 청년정신의 진수로 꼽힌다. 짐 모리슨 역시 유명해지기 전에는 선정적인 무대 매너로 클럽에서 쫓겨나기 일쑤였고, 훗날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 삽입되기도 했던 'The End'는 '살부(殺父)의식'을 정면으로 노래해 미국사회에 파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우리는 그의 선동을, 그의 고통을 공유할 수 있었다"**
일본작가 무라카미 하루끼는 <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었다>라는 에세이에서 "1967년은 그런 해였다. 짐 모리슨은 본질적으로 선동자였다. 우직한 군인 가정의 장남이던 그는 데뷔 당시 성장 배경을 묻는 질문에 '고아'라고만 답했다. 그러한 선동 없이 짐 모리슨은 짐 모리슨일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시절에 우리는 모두 짐 모리슨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선동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짐 모리슨이 LSD와 코카인으로 자신의 머리를 선동하고, 버본 위스키와 진으로 내장 기관을 선동하고, 바지 지퍼를 열고 페니스를 꺼내 관중을 선동할 때 우리는 그의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공유할 수 있었다"고 당시를 회고한다.
'악마숭배자'라며 미 기독교계의 공적인 된 마릴린 맨슨(Marylin Manson) 밴드는 또 어떤가. 마릴린 먼로와 희대의 살인마 찰스 맨슨의 이름을 따 89년 결성된 이 밴드는 섹스, 폭력, 반기독교적인 기괴한 퍼포먼스로 미국사회에서 악명을 날리고 있다. 2003년 말 '미성년자 입장불가' 딱지를 붙이고야 겨우 허락받은 한국공연에서도 성행위를 연상케 하는 갖가지 춤 등 과도한 성적 이미지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99년 콜럼바인 총기 난사사건의 주범이 맨슨의 광적인 팬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또 한번 비난의 도마위에 오르기도 했지만 그의 철학은 확실하다. 2004년 2월 '모든 신에 대항하여(Against All Gods)'라는 제목의 한국 공연에 앞서 한 인터뷰에서 그는 "내 음악과 이라크 전쟁 중 어느 게 더 반기독교적인가?"라고 되물었다.
'총기허용 반대, 침략전쟁 반대'를 외치며 미국사회의 위선을 조롱해온 그는 9,11 테러 이후 애국법(Patriot Act)이 무리없이 통과되는 등 일종의 전체주의적 분위기가 형성된 미국사회에서 거침없이 사회의 폐부를 찌른다. 그가 "이라크의 한 어린 아이가 기관총을 들고 있는 사진을 보고 참혹하고 수치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베트남전 참전용사인 내 아버지는 지금도 '왜 내가 거기에 있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한다. 미국은 스스로에 테러를 하고 전쟁을 자처한 것 아닌가? 이에 대해 내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 그게 세계를 위한 애국자로서 맨슨이 설 수 있는 힘이다"라고 당당히 말하는 모습은 '엽기 코드' 이면의 예술가로서의 저력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외국에서도 기괴함과 일탈에 대한 관용은 어디까지나 일반 라이브 공연에서일 뿐 어디까지나 공중파 방송과는 명백히 구분된다. 한 인디밴드 관계자는 "가끔 인디계 가수들이 m.net 등 방송 출연도 하는데 이들이 하도 악명(?)높은지라, 사전에 표현수위를 철저히 조율한다"고 설명했다.
즉, 밴드의 성향 및 퍼포먼스에 대한 이해와 수용의 준비가 된 관객들로 채워진 라이브 공연과 무차별적인 대중이 보는 공중파 방송은 공연 수위가 다를 수밖에 없고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한 사회에는'미친 바보들'도 필요하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통제와 검열, 도덕적 훈계는 우리 사회의 문화적 다양성의 위축만을 불러올 뿐, 생산적인 해결 방식이 아니거니와 '문화 전체주의' 사회를 만들 위험성마저 있다는 점이다. 역사상 반 발자국 앞서가는 예술가들의 창작물은 늘 풍요로운 인류의 문화유산이 돼 왔고, 결국 그 수혜자는 대중이었다.
문화평론가 진중권씨는 그의 저서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에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의 왕궁에는 광우(狂愚)가 있었다. 왕의 권위를 조롱하고 권세의 무상함을 노래하는 광대들의 무례함은 선천적 정신박약의 뜻으로 너그럽게 용서됐고 이 광대들은 이렇게 얻은 발언의 자유로 헛소리 속에 진실을 말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바보들은 합리와 이성의 시대에 추방됐고, 오늘날 그 광우의 역할을 예술가들이 맡게 됐다는 것이다.
때로는 한 사회에 거침없이 진실을 말해줄 '미친 바보들'도 필요하다. 홍대 앞 인디밴드들이 당장 뜨는 '한류' 같은 문화 상품이 안 된다고 너무 구박하지는 말자. 그들이 다수 동시대인들이 공감할만한 음악과 예술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때 가서 외면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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