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은 국제관계에서의 다자간 협력보다는 일방주의에 치우쳐 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국제정치학자들의 모임인 '국제관계센터'(IRC)와 '외교정책초점'(FPIF)은 미국의 대외정책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톰 배리 IRC 소장을 비롯한 5인의 학자들이 공동으로 작성한 보고서의 원제목은 'A Global Good Neighbor Ethic for International Relations'.
이 보고서는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를 비판하면서, 1930년대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폈던 외교정책인 '좋은 이웃 정책'(Good Neighbor policy)을 보기로 든다. 20세기 전반기에 신흥 강국인 미국을 이끌면서도 다자간 협력을 모색했던 루즈벨트 외교정책을 모델로 삼아, 보고서는 바람직한 대외관계 수립을 위한 7가지 원리를 제시하고 있다. 아래는 그 요약이다.
미국 역사상 오늘날처럼 외교정책이 혼란스럽고 분열적인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미국의 이라크 점령, 깊어가는 무역수지 적자, 대외 강공정책, 그리고 다자간 국제협력(multilateral cooperation)과는 거리가 먼 일방주의(unilateralism) 등은 미 국민들로 하여금 부시행정부의 대외정책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인지 혼란과 회의를 느끼게 만들었다.
물론 미 행정부의 대외정책을 일반 국민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조지 워싱턴 대통령 시절에도 미 국민들은 "워싱턴 행정부의 대외정책이 과연 미국의 국가이익과 안보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하며 걸핏하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특히 미국이 대외적으로 팽창을 시작하던 1890년대 이후로 미 국민들은 대외정책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게 됐다.
오늘날 테러와의 전쟁과 이라크 후세인 정권을 비롯한 다른 반미국가의 체제를 무너뜨리는 정책은 좌우파를 가리지 않고 미국내 정치권의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아울러 부시행정부의 대외정책이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높아지고 있다. 부시대통령은 "지금의 대외정책을 그대로 밀고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고비용에 비해 성과는 낮고, 위험은 점점 커가는 지금의 대외정책은 큰 변화를 필요로 한다.
***루즈벨트의 '좋은 이웃 정책'**
여기서 한 가지 물음이 생겨난다. 미국의 대외정책은 바뀔 수 있는가. 일방주의에서 벗어나 국제적인 다자간 협력과 평화를 모색하는 이행모델은 어디 있는가. 다행스럽게도 미국의 대외정책은 오늘의 우리에게 영감을 불어넣을 수 있는 자랑스런 유산을 지녔다. 그것은 1930년대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추진했던 '좋은 이웃 정책(Good Neighbor policy)'이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미 대통령으로서는 극히 예외적으로 1933년부터 1945년까지 12년동안 대통령에 재임했던 인물. 그는 1890년대부터 미국이 의욕적으로 추진해 왔던, 식민지 획득과 해외자원 확보를 위한 제국주의적인 해외팽창과 무력개입(military intervention) 정책을 공개적으로 포기했다. 1933년 취임연설에서 루즈벨트는 '좋은 이웃 정책'으로 알려진 미국의 새로운 국제관계 청사진을 그리면서 이렇게 선언했다. "나는 미국이 스스로를 굳게 지키면서도 아울러 타국의 권리를 존중하는 '좋은 이웃 정책'을 추진하겠다" 그런 대외정책에 바탕을 두고 루즈벨트 대통령은 약소국가들을 못살게 구는 국제적인 왈패(global bully)로 세계를 지배하려 들지 않고, 다자간 국제협력을 추구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전 루즈벨트 행정부의 대외정책은 오늘날과 비슷한 경제, 안보, 문화적 갈등과 씨름해야 했다. 그렇지만 '좋은 이웃 정책'으로 그런 문제점들을 깔끔히 처리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국내적으로는 저소득층을 살리기 위한 사회민주적인 정책, 대외적으로 전시 대통령으로서의 강한 지도력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1929년 대공황으로 미국의 경제가 무너진 뒤 집권한 루즈벨트 대통령은 '뉴딜 정책'을 추진하면서 실업과 생산증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데 성공했다-역자 주).
오늘의 세계는 1930년대 대공황과 뉴딜정책이 상상도 못했던 변화를 겪고 있다. 따라서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좋은 이웃 정책'이 미 대외정책의 청사진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루즈벨트 정책의 바탕을 이루는 기본원리는 지속적인 새로운 국제관계를 세우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21세기의 글로벌 시대는 국제관계의 기본영역을 아우르는 일곱 가지 원리로 이뤄진 새로운 '좋은 이웃' 윤리를 필요로 한다.
▷제1원리: 좋은 이웃이 되기 위한 첫걸음은 더 이상 나쁜 이웃이 되지 않는 것이다(to stop being a bad neighbor).
▷제2원리: 미 대외정책은 미국의 이해관계와 밀접한 관련을 맺어야 한다. 미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선 새 대외정책 안건이 국가안보와 삶의 질, 기본권을 증진하는 국내정책들과 맞아떨어져야 한다(대외 군사적 강공책 때문에 교육복지예산이 잘려선 안 된다).
▷제3원리: 미국의 국가이익과 안보, 복지문제가 타국의 이해관계와 서로 맞물려 있으므로, 미국의 대외정책은 일방적 지배보다는 호혜주의(reciprocity), 대결보다는 협력에 바탕을 둬야 한다.
▷제4원리: 미국은 강대국으로서 세계지배(global dominance)를 추구하기보다 책임 있는 지도력과 파트너십을 발휘해야 한다.
▷제5원리: 미국의 국가안보정책은 외부의 침략을 물리치는 군사력과 아울러 비군사적 조치, 그리고 국제협력을 통해 보다 효과적으로 국가안보를 강화하도록 힘써야 한다.
▷제6원리: 미국은 거시경제적(macroeconomic) 무역과 투자, 그리고 대외원조로 다른 나라들이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도록 도와야 한다.
▷제7원리: 평화롭고 번영하는 근린관계는 국내는 물론 국제적 차원의 효과적인 행정이 이뤄지느냐에 달려 있다. 효과적 행정이란 투명성ㆍ대표성ㆍ책임의식을 지닌 행정을 가리킨다.
***"군사개입 위해 괴물 조작했다"**
테러와의 전쟁을 둘러싼 지금의 외교정책은 많은 문제점을 지녔다. 국제테러에 맞서 싸운다는 구실 아래 미 부시행정부는 남미 콜롬비아에서 '마약 테러(narcoterrorism)' 전쟁에 휘말려 들어갔다. 테러와의 전쟁 범위는 너무나 넓고 애매하다. 그래서 파키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 같은 독재국가들을 지원하고, 이스라엘의 완고한 강경파들(intransigent hard-liners)에게 끌려가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미 제4대 대통령 존 퀸시 아담스는 "미국이 죽여야 할 괴물들을 찾아 해외로 나가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그의 경고는 이 세상에 괴물들이 없다는 게 아니라, 미국 안보를 위협하는 괴물을 일부러 조작해내선 안 된다는 뜻이었다. 19세기 말의 미-스페인 전쟁, 1960년대의 베트남전쟁 등은 미국이 '괴물'을 죽이기 위해 불필요하게 군사적으로 개입한 보기들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라크 전쟁도 마찬가지다. 테러와의 전쟁이란 이름 아래 미군의 해외주둔이 크게 늘어났지만, 테러전쟁의 결과로 미군과 민간인 계약자들에 대한 테러 위협이 줄어들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다.
분명히 이 세상에는 파괴돼야 할 괴물들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9.11 동시다발 테러를 일으켰던 오사마 빈 라덴의 알 카에다 조직이다. 그러나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면서 부시행정부는 오만하게도 일방주의를 고집함으로써 국제사회와 마찰을 일으켰다. 그럼으로써 미국의 현 지도자들은 미국의 미래를 위험 속에 빠트렸다. 우리는 부시 대통령이 주장하듯 지금의 대외정책을 그대로 밀고 나갈 수는 없다.
미국의 대외정책을 바꾸려면,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은 프랭클린 루즈벨트 행정부의 '좋은 이웃 정책'에 바탕해 새로운 국제관계 원리들을 세워나가야 한다. 그런 원리들을 실천함으로써 미국은 물론 전세계의 안보와 발전을 이뤄나갈 수 있다. 그 원리들은 국제관계 증진을 위한 구체적인 청사진은 아니지만, 지금 같은 혼란스런 시대에 국제정치를 효과적으로 이끌어갈 윤리적 기준이다. 루즈벨트 행정부의 '좋은 이웃 정책'은 1930년대에 올바른 것이었지만, 우리 시대에도 올바르다.
필자 이메일: kimsphoto@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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