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학원 다녀 가능한 논술이 아니라면 좋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학원 다녀 가능한 논술이 아니라면 좋다"

[좌담] 고등학생들이 본 '서울대 본고사' 논란

서울대의 2008학년도 대학입시안 발표 이후 들끓던 '본고사 논란'이 일단 진정 국면으로 들어섰다.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14일 "매년 각 대학의 논술고사를 심의해서 본고사를 치른 대학에는 행정·재정적 제재를 가하겠다"는 대국민 담화도 발표했다.

'통합교과형 논술'이라는 모호한 실체를 고스란히 남겨둔 채 봉합된 이번 논란을 학생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15일 대한민국 청소년의회 의원인 4명의 고등학생을 서울 혜화동 흥사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정의교육시민연합과 흥사단이 주관해 2003년 설립된 청소년 의회는 현재 전국의 만 14~19세 청소년 2만60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정부의 청소년 정책에 관한 자기 목소리를 내 왔다.

청소년의회의 의장을 맡고 있는 이동수 군(상명고 2)과 이샘 양(성신여고 2), 이경훈 군(중앙고 2), 장요한 군(신목고 2) 등 4명은 이날 현재 학교 현장에서 이뤄지고 있는 논술 교육의 실상에 대한 평가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학생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평소의 생각을 술술 풀어갔으며 특히 '부실한 공교육'과 '자주 바뀌는 입시정책' 대목에서는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의 '창의력'을 평가하기 전에 '창의적인' 교육부터 해달라"는 이들의 '아우성'은 1시간 남짓 이어진 좌담 시간 내내 이어졌다.

***"현재 학교에서 별도의 '논술 교육' 어려워"**

이샘 : 보통 학교에서 글쓰기나 논술은 수행평가를 통해서 하죠. 저희 학교에서는 일주일에 세 번 있는 작문 교과에서 2번은 문학, 1번은 작문 수업을 하고 한 학기에 두 번 정도 수행평가를 하는데요. 선생님이 이론을 먼저 가르쳐주시긴 하는데 전반적으론 너무 부족하죠. 자꾸 논술의 중요성이 부각되니까 저희 학교에서는 이번 여름방학 보충학습에 논술 교과를 넣기로 했어요. 3학년의 경우는 과학논술, 사회논술을 각 과목 선생님들이 맡아서 각 주제에 대해 실시해보기로 했다고 하더라구요

이동수 : 저희 경우는 대학용 자기소개서를 쓰거나 2~3개 독후감으로 수행평가를 하는데 학생들이 대부분 귀찮아하죠. 저는 나중에 어차피 자기소개서 쓸 거면 만들어놓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이경훈 : 저희는 논리학이라는 과목이 따로 있거든요. 사회과목 선생님들이 논술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건데, 그다지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아요.

장요한 : 솔직히 당장 뭘 특별히 더 하고 싶진 않은데(웃음) 그렇다고 학교에서도 공교육 강화를 위한 특별한 노력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저희 동네(목동)는 사교육이 심한 동네거든요. 학교에서도 애들 잡아두고 자율학습 시키기보다는 저녁에 학원에 가게 내버려두는 편이죠.

***"솔직히 학교에 잘 가르치는 선생님 많으면 학원 안 가"**

이동수 : 솔직히 학교에 잘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많으면 학원 안 가거든요. 실력 있고 재미있는 선생님 수업에는 보충수업 때도 아이들이 몰리고 수업 태도부터 달라요. 교과서만 읽는 선생님 수업시간에는 떠들고 자고 그러죠. 상황이 이런데 학교에서 논술 수업은 거의 생각도 못하죠.

학생들이 평가하는 공교육의 현황이 이렇다고 해서, 과연 학원 등의 사교육은 최근 논란이 된 논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을까. 이들 가운데 2명은 이미 논술학원을 다녀본 경험이 있었다.

이동수 : 저는 논술학원을 5개월 다니다가 끊었는데, 솔직히 논술학원에서 가르쳐주는 것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어요. 처음 한두 달은 맞춤법, 비문 수정, 글쓰는 요령 등을 가르쳐주고 그 다음부터는 계속 글 첨삭 반복이거든요. 논술은 결국 자기 생각이 중요한데 그런 것은 학원에서 배운다고 되는 건 아닌 것 같더라구요. 애들이 학원 찾게 하지 말고, 학교에서 외부 강사를 초청한다든지 해서 글쓰는 요령이나 논술 틀만 어느 정도 잡아주면 좋겠어요.

장요한 : 전 3개월 정도 하다 그만뒀는데. 어떻게 보면 글은 개개인의 생각을 얼마나 글에 잘 반영하고 표현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잖아요. 근데 학원이나 학교나 학생들의 생각을 길러주지 않고 '주제에 대한 찬반 쓰기 요령' 같은 걸 가르쳐주는 건 우스운 것 같아요. 지금도 솔직히 고3들 몇주 동안 논술 특강하는 식으로 준비하잖아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100분 토론하듯 얘기하면서 제 생각이 트이는 느낌은 좋아요"**

그래도 이들은 입을 모아 "처음에는 논술 수업이 재이있었다"고 말했다.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었을까.

이동수 : 보통 학교나 학원의 수업방식은 선생님 강의만 일방적으로 듣고 받아적고 문제 풀고 이런 식이잖아요. 그런데 어떤 주제에 대한 글을 읽고 토론하는 게 새로웠어요. 자기 참여가 있는 게 좋았죠.

장요한 : 저는 영화 일을 하고 싶어서 대학도 예체능계로 가고 싶은데요. 지금 '하자센터'에서 글쓰기 체험 교실을 다니거든요. 논술 교육은 아니고 토론을 많이 하죠. 논술학원도 처음에는 지금 하자센터에서 하는 것과 비슷했어요. 자기 생각 표현 방법 연구하고, 말 그대로 '100분 토론'처럼 하죠. 그런데 하자센터에는 참여하는 애들이 다양해요. 학교 안 다니는 애들도 있고, 대학생도 있고, 각각 생각이 정말 다르죠. 그런데서 토론하고 나면 제 생각을 돌아볼 수 있어 좋아요. 결국 논술이라는 게 자기 생각 트이게 하는 거잖아요. 그런 재미있는 방식이라면 논술도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예를 들면 토요일에 학급회의 하잖아요. 보통 반장이 앞에 나와서 몇몇 안건 처리하고 대부분 애들은 관심 없고 그렇게 지나가는데 이런 시간을 잘 특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학생들은 시험으로서의 논술 요령을 주입받고 단순 반복하는 것은 당연히 지루하지만, 또래들끼리 토론하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생각이 트이고 뭔가 배웠다는 느낌에는 긍정적이었다.

이들은 "요즘 학원에서는 학생들의 의욕 고취를 위해 토론 테이블마다 돈을 걸어 잘하는 학생들이 타가게 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학원 가서 그렇게까지 하는 것보다 학교에서 '창의적인' 학습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느낌이 훨씬 강했다.

이샘 : 학교에서 노력하면 아예 불가능할 것 같진 않아요. 전 시사토론반이거든요. 선생님이 한주의 뉴스를 정리하고 사회적 이슈를 선정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토론해요. 여긴 20여 명이 있는데 하고 싶은 애들만 모이니 열의도 있고 하주 활발하고 애들이 재미있어 하죠.

***새로운 입시제도의 도입은 부유층만 유리?**

이번 '본고사 논란'과 관련해 현재 우리 사회에는 "서울대가 통합교과 논술에서 어떤 내용을 문제로 내든, 새로운 입시제도의 도입 자체가 '재빠른 유형 분석과 집중 학습'을 가능케 하는 사교육에 접근가능한 부유층 학생들에게 유리하게 돼 있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이들은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대답은 크게 갈렸다.

이샘 : 전 그 주장에 찬성이에요. 수능도 처음에는 통합적 사고력 운운하면서 도입됐지만 몇 년 지나고 나니 문제 유형과 테크닉 잘 아는 애들이 유리하잖아요. 논술도 처음에는 생각있는 애들이 잘 할 수 있을지 몰라도 해를 거듭하다 보면 결국 수능처럼 획일화되지 않을까요.

이동수 : 전 생각이 다른데요. 결국 강남애들이 입시에 유리하다고 하는 것은 정보를 꿰뚫고 있다는 건데, 정보는 인터넷으로 다 알 수 있거든요. 저희 학교에서는 애들이 학교를 못 믿어서 애들끼리 자구책으로 자료 돌려보면서 조그만 입시 정보까지 다 알고 있거든요(웃음). 요즘은 대학별로 너무 전형이 다양해서 정보를 모르면 안되지요. 각 대학마다 내신은 몇 % 반영하는지, 어떤 과목을 반영하는지 등 이런 것들이요.

장요한 : 결국 중요한 건 강남이나 이런 지역성보다는 학교의 학습 분위기고 선생님들의 열의와 재량인 것 같아요. 40분간 주구장창 재미없게 수업하는 것과 20분 바짝 하고 쉬고 다시 집중해서 재미있게 20분 하는 것과는 애들이 자고 깨어 있는 게 다르죠(웃음)

***"대학에서 '사교육으로 가능한' 테크닉 요하는 문제 안 내야"**

이경훈 : 그런데 지금 서울대 논술 갖고 난린데 지금의 논술 시험도 영어, 수리, 국어 다 따로 있고 굉장히 어렵거든요. 뭐가 다르죠? 말만 통합교과지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요.

이동수 : 저는 대학들이 학생들에게 별도의 테크닉을 요하는 문제만 안 냈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제시문 가, 나에 대해 논술하시오' 이 정도면 괜찮은데 이번 성균관대 문제 보면 제시문을 7개나 내놓고 (이 가운데 영어지문이 2개나 됐어요) '각 지문을 분석하고 연관관계를 분석하시오'라고 했어요. 자기 생각이 있어도 글쓰는 방법을 모르면 어떻게 하겠어요. 추가적인 테크닉이 필요하지 않은 시험이어야죠. '동학농민운동과 프랑스 혁명을 비교하시오'라는 정도면 국사와 세계사에서 배운 것을 토대로 쓰면 될 것 같은데...

이샘 : 별도의 테크닉을 필요로 하는 문제를 내려면 중고교 교육부터 바뀌어야죠. 그런 논술이라면 2~3년만으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초등학교 때부터 그런 교육적 환경과 문화적 베이스가 깔려 있어야 하는데, 학생 누구나 그런 환경을 가질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1시간 동안의 열띤 이야기 속에서 학생들이 일방적으로 평가받는 교육의 객체가 아닌 참여하는 주체가 되고 싶어한다는 바람이 가득 느껴졌다. 이들은 누구보다 자기의 생각이 성장하는 느낌을 원했고, '학원이 아닌 학교'에서 '창의적인' 교육을 받고 싶어했다. 사회는 '부유층과 본고사의 연관성' 등의 논란으로 힘을 빼기보다는 이들의 바람을 어떻게 들어줄 수 있을까에 더 골몰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