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재선의 일등공신으로 '미국에서 2번째로 강력한 인물'이란 별명까지 들어가며 미국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칼 로브 백악관 부비서실장의 정치생명이 중대한 위기에 처했다.
'리크 게이트(Leak Gate)', 즉 미 중앙정보국(CIA) 비밀요원 신분누설 사건의 장본인으로 그가 지목되면서 그를 해임하라는 민주당의 정치공세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제까지 침묵을 지켜 왔던 언론들도 로브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향후 대응을 적극적으로 추궁하기 시작함으로써 백악관은 사면초가의 위기에 빠졌다.
민주당의 집요한 반대로 자신이 지명한 존 볼튼 유엔대사의 상원 인준을 3개월째 관철시키지 못하고 있는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이보다 더 큰 정치적 난관에 봉착한 셈이다.
일요일인 지난 10일(현지시간) 뉴스위크의 보도로 로브가 CIA 비밀요원 발레리 플레임의 신원을 노출시킨 취재원 중 하나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민주당은 로브에 대한 총체적인 공세에 나섰다.
우선 민주당 상원 원내총무인 해리 라이드 의원은 11일 로브의 백악관 부비서실장 해임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는 "부시 대통령은 자신의 행정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도덕성을 요구하겠다고 말해 왔으며 특히 누구든 발레리 플레임 사건에 연루된 사람은 행정부에 남아 있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면서 약속 이행을 촉구했다.
찰스 슈머 상원의원은 로브에게 편지를 보내 "대중 앞에 공개적으로 나와 이 사건과 관련된 자신의 역할을 정직하게, 그리고 남김없이 모두 털어놓으라"고 요구했다. 또 프랭크 라우텐버그 상원의원은 비밀요원의 고의적인 신분 누설은 '반역죄'에 해당한다면서 부시 대통령은 로브의 비밀취급 인가를 정지시켜 비밀회의로부터 차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헨리 왁스먼 하원의원(캘리포니아)은 로브의 증언을 듣기 위한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백악관 출입 기자들도 취재원 공개 거부로 구속된 뉴욕타임스의 주디스 밀러 기자 문제와 관련해 보복이라도 하듯이 스콧 매클렐런 대변인을 상대로 로브의 책임 문제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기자들은 이날 40분간의 브리핑중 30분을 로브 문제에 집중하면서 "대통령이 CIA 요원의 신분 누설에 관련된 사람은 파면시킬 것이라는 약속을 지킬 것인가", "로브는 범죄를 저지른 것인가" 등등 매클렐런을 집요하게 추궁했다.
이에 매클렐런은 "수사중인 사건이어서 언급할 수 없다"며 직접적인 답변을 회피했으며 로브의 직책이 변경된다거나, 부시 대통령이 파면 약속을 지킬 것인지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매클렐런은 칼 로브의 연루 혐의가 처음 제기된 지난 2003년 9월, 로브는 이번 사건과 전혀 관계가 없으며 이 사건과 관련된 사람은 누구든 백악관에서 파면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같은 정치공세에도 불구하고 칼 로브에게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여부는 현재로서는 미지수다. 미 연방법에 따르면 문제의 인물이 비밀요원임을 알고, 그 이름을 명시적으로 밝힐 경우에 한해 범죄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11일자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로브의 변호사 로버트 러스킨은 "로브는 플레임의 이름을 몰랐고, (타임의) 쿠퍼 기자에게 그녀의 이름(플레임)을 언급하지 않았으며, 이는 타임이 그녀의 정체를 폭로하도록 고무하려던 것이 아니라, 타임이 사실이 아닌 일부 주장들을 바로잡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법적인 책임이 없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리크 게이트' 파문 이후 플레임에 관해 어떤 기자와도 이야기한 적이 없다고 말해 왔던 로브가 플레임의 신분 누설에 어떤 식으로든 관여한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남으로써 향후 그의 거취는 물론 부시 행정부의 도덕성에도 치명타가 가해질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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