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중앙정보국(CIA) 비밀요원의 신원을 미국 언론에 누설했느냐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이른바 '리크게이트(leakgate)'가 닉슨 행정부 당시 워터게이트에 맞먹는 정치적 스캔들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문제의 '취재원'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최측근 참모인 칼 로브 백악관 부비서실장임이 점차 분명해지면서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일부 언론매체들이 그에 대한 본격 수사를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11일 발매된 최신호(7월 18일자)에서 또다른 시사주간지 타임의 매트 쿠퍼 기자에게 CIA 비밀요원 발레리 플레임에 관해 이야기해준 '취재원'이 로브 부비서실장임을 그의 변호인인 로버트 러스킨 변호사가 시인했다고 보도했다.
로브 부비서실장은 '리크게이트'로 불리는 플레임의 신원 누설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패트릭 핏제럴드 특별검사와 타임 기자인 매튜 쿠퍼 측 변호사의 요청에 따라 쿠퍼 기자가 법정에서 자신에 관해 증언하는 것을 허용했다고 뉴스위크는 러스킨 변호사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쿠퍼 기자는 지난 6일 뉴욕타임스의 주디스 밀러 기자와 함께 취재원 공개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법정모독 혐의로 수감 위기에 몰렸으나 수감 직전 문제의 취재원으로부터 자신의 신원을 공개해도 좋다는 전화연락을 받았다며 대배심 증언을 약속해 수감을 면했으며 밀러 기자만 수감됐다.
'리크게이트'란 조지프 윌슨 전(前) 이라크 주재 미국 대리대사가 이라크의 핵물질 구입 시도 의혹을 부인하는 글을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뒤 몇몇 언론에 윌슨 전 대사의 부인 플레임이 대량살상무기(WMD) 업무를 담당하는 CIA 요원이라는 사실을 지적한 보도가 잇따라 법적으로 보호받도록 돼 있는 비밀요원의 신분이 누설된 사건이다.
그러나 플레임의 신원을 최초로 공개한 언론인은 보수적 칼럼니스트 로버트 노박임에도 불구하고 검찰측은 노박은 제쳐둔 채 밀러 기자와 쿠퍼 기자만을 집중 추궁하고 있어 편파수사가 아니냐는 비난이 일고 있다.
로브 부비서실장은 '리크게이트'로 파문이 일자 자신은 플레임과 윌슨에 관해 어떤 기자와도 이야기한 적이 없다고 말해 왔으나 이번 사건과 관련한 대배심 증언에서는 쿠퍼 기자와 플레임의 신원에 관해 말했음을 시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 연방법에 따르면 CIA 비밀요원의 신원을 공개하는 것은 중범죄에 해당된다. 그러나 해당 법률에는 '비밀요원임을 알고'라는 단서 조항이 붙어 있어 로브의 증언 내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가 과연 연방법을 위반했는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한편 밀러 기자가 소속된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프랭크 리치는 11일자 칼럼 '워터게이트보다 추악한...'에서 이번 리크게이트는 부시 행정부가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CIA 비밀요원의 신분이라는 국가기밀까지도 언론에 유출하는 추악한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다고 강력 비난했다.
이라크가 아프리카 니제르로부터 핵물질을 구입하려 했다는 의혹이 근거 없다는 윌슨 전 대사의 폭로가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전쟁 계획에 중대한 차질을 빚었기 때문에 그를 파멸시키기 위해 국가기밀 누설이라는 연방법 위반 행위까지 저질렀다는 것이다.
이 칼럼에 따르면 2002년 아프리카 현지를 방문 조사했던 윌슨 전 대사가 이 문제가 관해 자신의 기명칼럼을 뉴욕타임스에 실은 것은 이라크전쟁 발발 후인 2003년 7월 3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이전에 자신의 현지 조사내용을 익명을 전제로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에게 알려 기사화하도록 했다.
한편 진보적 시사주간지 네이션의 논객 데이비드 콘은 10일 이 잡지 홈페이지에 올린 칼럼을 통해 워터게이트가 닉슨 행정부의 범죄 행위 그 자체보다도 이를 은폐하려던 시도 때문에 닉슨 대통령의 사임을 초래했다면서 로브 부비서실장에 대해 대배심에서의 위증 여부를 가려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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