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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전여옥씨, 학력컴플렉스 아닌 학력테러가 문제입니다"

[기고] 전여옥씨의 학력 발언을 접하고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이'다음 대통령은 대학 나온 사람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 기사를 접한 나의 최초 반응은 발언의 문제점을 따져서 비판하는 이성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속상함과 분노에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갔을지도 모를 내 주변 사람들이었다.

내 누님들, 그리고 대학을 다니지'못한' 숱한 이웃과 친척과 친구들. 그리고 내가 모르는, 대학을 다니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 그 중에서도 특히 힘들게 살아가고 있을 가능성이 많은 이 땅의 '고졸 젊음'들. 그들이 받았을지도 모를 통증과 설움을 생각하니 나도 아팠다. 그리고 아주 드문 현상인데, 그 발언은 발설자 얼굴과 겹쳐지면서 내게 구토감을 일으켰다. 내 몸의 이런 반응에 스스로가 놀랐다. 내 최초 반응은 감성적이며 육체적인 것이었다.

감성반응에서 끝나서는 안 될 것이다. 전여옥씨 발언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그 이면에 깔린 문제가 무엇인가를 끄집어내 볼 필요가 있다. 그의 발언은 우리 사회 지배층, 전여옥의 표현을 빌자면 엘리트주의에 사로잡힌 자칭 엘리트 집단들의 황량한 내면과 이데올로기를 드러내주고 있다.

'엘리트 전여옥씨'가 그런 생각은 갖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그 소신은 관용의 대상이 아니며, 존중의 대상은 더더구나 아니다. 또한 이것은 도덕의 문제이며 동시에 사회의식 수준의 문제이기도 하다.

전여옥씨가 던진 말의 심층에 틀어박혀 있는 것은 천박함과 그로 인한 잔인함이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 모순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 공동체가 존재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도덕 결핍에 따른 천박함이고, 무의식 속에 깊게 자리잡고 있는 전도된 엘리트 의식이 가져온, 사회적 약자를 짓밟고, 소외시키는 가학적인 잔인함이다.

우리 사회의 폐쇄적 엘리트들과 일부 부유층들이 가지고 있는 이런 잔인함은 종종 발견되는 현상이다. 나는 지난 2003년 네 살, 여섯 살, 여덟 살 아이와 함께 아파트에서 떨어져 스스로 목숨을 끊은 30대 어머니에 대한 기사를 다룬 조선일보의 사회면 제목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세 자녀 14층에서 던진 비정한 엄마" '던짐'과 '비정함'의 조합에서 풍겨나오는 가진 자들의 잔인함.

당시 신영복 선생은 이런 시각과 관련돼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우리 사회의 모순을 '잔인한 모정'이라는 개인의 문제로 치환하려는 이데올로기이다. 부모가 있어도 병원에도 못 데려가는 부양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부모가 자식만 남겨두고 떠나가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혼자 죽는 것보다 아이들과 같이 죽는 게 훨씬 더 괴롭다. 그러나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 부모 없이 자라날 아이들의 고난을 누구보다 잘 아는 모성이 그런 비극적 결정을 내린 것이다"

전여옥씨의 발언도 사회적 모순을 개인 문제로 뒤바꿔버리는 이데올로기의 전형이다. 그의 발언을 처음 보도한 <오마이뉴스> 기사에 대한 전씨의 반박글에 이런 구절이 있다.

"'대학 나온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멘트의 본질적인 의미는 '학력 컴플렉스가 없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전여옥 의원에 대한 스토커질을 그만 두십시오. 이번 발언의 본질은 학력지상주의가 아니라 학력컴플렉스입니다. '고졸대통령' 소리에 흥분하는 것은 학력컴플렉스에 사로잡혔음의 반증에 불과합니다."

전씨가 하고자 한 말의 핵심은 '대학도 나오지 못한 사람'들은 대통령이 되는 것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이걸 다른 걸로 이해하라고 말하면 그건 궤변이거나 비겁한 행위다.

"학력 컴플렉스가 없는 사람이면 좋겠다." 없애라고? 누가 만든 컴플렉스인가. 누가 강요한 것인가. 그 컴플렉스를 사회적으로 재생산해내서 이득을 보는 세력은 누구였나. 그것을 끊임없이 조장하는 사회가 사라지기 전에는 컴플렉스는 없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을 조장하는 데 앞장 선 사람이 없애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게 본질(!)이라고 한다.

물론 충정에서 우러 나온 말로, "학력 컴플렉스를 극복하고 꿋꿋하게 살라"고 얘기할 수는 있다. 그러나 엘리트임을 내세우며, 대졸자가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소리나 하는 전여옥씨 같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얘기는 아니다. 개인을 질식시킬 정도로 학력/학벌 사회를 극심하게 강요해온 사회에서 그것 때문에 고통받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컴플렉스"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참으로 당사자들을 두 번 죽이는 잔인한 행위다. 동시에 학력/학벌 사회라는 구조적 모순을 개인의 문제로 뒤바꿔버리는 이데올로기이다. 사회적 모순을 은폐시키는 행위다. 그런데 전씨는 인식 수준의 경박함 때문에 이런 걸 모르고 있는 것 같다.

홍세화 선생은 어느 자리에서 한국의 엘리트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그들은 능력도 책임도 없으며, 극심한 경쟁을 뚫고 이겨 선택받았다는 사실에 대한 보상심리만 있는 사람들이다." 전씨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제 생각에는 고등학교 나온 대통령께서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자수성가 하시고... 그러면 그 포용성이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었어야 하는데 서울대학교 없애자 등 그런 것이죠."

아마 노무현 대통령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도대체 논리가 없는 말이다. 대통령이 훌륭하고 아니고는 과거 학교 경력이 아니라 현재 그리고 임기 동안 대통령 직책을 잘 수행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서울대 폐교론 역시 학력이나 학벌에 따라 주장이 갈리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 전체 교육문제를 어떻게 보고, 미래의 방향을 어디에 둘 것인지에 대한 정책, 시각의 차이에 따라 갈라지는 것이다. 실제로 서울대를 졸업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서울대와 무관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생각이 다른 것이 현실이다.

전씨에게는 서울대 폐교론이 교육 정책의 주요한 구성 부분으로서 우리 사회가 한번쯤 진지하게 논의해볼 만한 과제가 아니라, '고졸 대통령'이 포용성이 없어서 내놓은 '어떤 행위'에 불과하다. 지독한 사시(斜視)다.

사실 전여옥씨의 발언에 동의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공론의 장에서 발설하는 무모함 또는 용감함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전씨의 이번 발언이 갖는 긍정성은 감추어진 그런 뷰류들의 세계관의 한 자락이 다시 한번 널리 공개됐다는 점이다.

한나라당 내부에서 전씨를 대변인 자리에서 그만 두게 하라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쩌면 전여옥씨 같은 사람이 사학개혁에 반대하고, 평준화 정책을 공격하고 엘리트 교육을 좋아하는 그 당의 대변인에 딱 맞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번 전씨의 발언 파동은 전씨 개인의 가벼움이나 무지와 직결된 것이겠지만, 보다 깊이 따져보면 폐쇄적인 엘리트의 교체와 충원을 통해 보수독점 정당 구조를 오랫동안 유지해온 이 나라 정치인들의 일반적인 의식구조일 수도 있다.

예컨대, 열린우리당 대변인이 말한 것으로 보도된 내용을 읽어보면 더 그렇게 생각된다. (전여옥씨의 발언은)"국가 원수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 말을 듣는 귀는 대통령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국민에 대한,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것을 먼저 지적할 줄 아는 정치인들이 필요하다.

'엘리트 전여옥씨'가 이번 발언을 통해 기여한 것은 역설적으로 '엘리트 정치'의 폐쇄회로와 먹이사슬을 끊어내기 위해 항상적인 대중 참여 정치와 보수 독점 정치구조 해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크게 일깨워줬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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