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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 디거’를 이해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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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 디거’를 이해하기 위하여

김명훈의 '영화, 영어, 그리고 미국' <29> ‘Indecent Proposal’

여성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의 법칙에 속하지만, 유독 미모에 목숨을 거는 여성들이 있다. 대체로 사람의 근본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으로 추정되는 이들은, 영상매체가 군림하는 현대 사회에서 여느 이데올로기 못지않게 우리를 억압하는 외모지상주의(lookism)의 원리를 받들어 자신들의 외모에 모든 것을 투자하고, 그렇게 이룩한 외모를 활용하여 신분상승 내지는 ‘인생역전’을 꾀한다.

(잠깐 ‘lookism’에 대해: ‘외모’는 영어로 ‘looks’라고 한다. [“She was attracted by his good looks.”] 단수인 ‘look’은 명사로 보통 ‘표정’ 또는 ‘기색’을 뜻한다. [“She had a tired look on her face.”] 그래서 식자들 중에는 외모지상주의를 ‘looksism’이라고 해야 옳다고 주장하며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것을 무시하고 이렇게 쓰는 이들이 많이 있다.)

그러한 신분상승이나 ‘인생역전’은 물론 대부분 어떤 형태로든 미모를 돈 주고 살 용의가 있는 돈 가진 남자를 매개체로 한다. 나름대로 현명한 여자들은 이것이 인생의 지름길임을 터득하고 있다. 수년 동안 책과 씨름해봤자, ‘성실하게’ 살아봤자 쉽게 얻어지지 않는 돈이 잘 만들어진 얼굴과 몸매로 단숨에 얻어지는 것을 수없이 봐왔기 때문이리라. 어쨌든 그런 지름길을 택하는 여자들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그다지 곱지 않기에, 여자의 미모와 남자의 돈의 상관관계를 언급하는 표현들은 어김없이 그런 거래의 불순함을 강조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흔히 쓰이는 ‘골드 디거’(gold digger – 돈을 노리고 돈 많은 남자와 교제하는 여자)라는 표현에는 ‘일확천금’의 부정적인 개념이 내포돼 있다. 그리고 원조교제에 있어서 ‘gold digger’와 짝을 이루는 ‘sugar daddy’(한국에서는 ‘스폰서’라고 하던가)는 딸 뻘의 젊은 여자가 가진 게 돈밖에 없는 늙은이의 단물을 빨아먹는 기생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또 ‘trophy wife’(전리품 아내)라는 표현은 옆에 끼고 다니는 여자가 남자의 성취도의 상징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밖에 가장 노골적인 표현 중 하나로는, 바닷가 시골동네에서 부자 아저씨의 요트를 드나들며 섹스의 대가로 돈을 타서 쓰는 젊은 여자를 칭하는 ‘boat whore’(whore = 갈보)라는 표현도 있다. 이같이 남자와의 관계에 있어서 금을 캐는 자세로 임하는 여자들을 무조건 경멸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겠지만, 그것을 미화하는 것 또한 그냥 순순히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어떻게든 미모를 활용할 줄 아는 여자들의 생활력은 인정해 준다 하더라도, 그런 길을 택하는 여자들의 순애보까지 들어주기에는 우리의 속이 너무 좁기 때문일 것이다. 목표가 돈일진대 사랑 같은 소리는 집어치우라고 한다면 차라리 명쾌한 맛이라도 있을 터이다.

1993년에 나온 에이드리언 라인 감독의 ‘은밀한 유혹’(원제 ‘Indecent Proposal’)이라는 영화는 그런 명쾌함을 맛보게 해주는 영화가 될 수 있었다. 돈이 궁해 라스베가스로 달려간 젊은 잉꼬부부(드미 무어, 우디 해럴슨)에게 한 억만장자로부터 아내와 하룻밤을 지내게 해주는 대가로 백만 달러를 주겠다는 제안이 들어온다는 영화의 스토리는, 그 음탕한 설정을 끝까지 과감하게 몰고 갔다면 인간의 물욕과 소유욕, 그리고 성욕의 정체를 제법 진지하게 파헤치는 작품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이 영화는 할리우드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다. 외모지상주의의 근원지는 할리우드다. 이 동네의 역사를 보면 외모 하나만으로 ‘인생역전’을 이룬 여자들의 신데렐라 스토리가 널려있다. 이건 비단 영화 배우들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외모지상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지배하는 이 동네의 영화산업에 기생하는 수많은 여자들의 신분상승과 인생역전의 스토리를 말하는 것이다. 외모에 목숨을 건 여자들은 모두 할리우드로 간다. 이런 토양에서 만들어진 할리우드 영화들이 얄팍한 물질주의의 한계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은밀한 유혹’은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들이 갖고 있는 이중성, 즉 속물적 가치관과 설익은 이상주의 사이를 오가는 이중성에 휘말려, ‘음탕한 제안’이라는 영어 제목에 담겨있는 명쾌함의 가능성을 스스로 포기하고 만다. (사실 ‘은밀한 유혹’이라고 바꿔버린 우리말 제목은 김이 빠진 제목인데, 결과적으로 영화와 어울리는 제목이 된 셈이 돼버렸다.) 그 이중성이란 이를테면, 어느 날 갑자기 여성의 외모를 초월하게 됐다는 주인공의 눈에 비치는 사랑의 모습이 결국 팔등신 미인의 모습인, 2001년 영화 ‘Shallow Hal’(우리말 제목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의 그런 이중성과도 같은 것이다.
‘은밀한 유혹’의 본심은 돈에 있다. 이 영화의 중심에는 돈이 없는 여자도 미모 하나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다는, 할리우드식 가치관이 자리하고 있다. (여자여, 미모는 인생의 우대입장권이다. 억만장자의 눈에 띄기만 해라, 인생역전이다.) 착실하게 살림을 꾸려가던 부부가 돈 걱정 끝에 한탕에 5만 달러를 벌겠다고 라스베가스로 간다는 발상은 차치하고라도, 그들이 첫날밤에 딴 2만5천 달러를 침대 위에 뿌려놓고 한편의 뮤직비디오에서처럼 정사를 나누는 장면의 천박함은 가히 가관이다. 드미 무어가 20달러와 50달러짜리 지폐가 수북이 깔려있는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하는 말은 무슨 우회적인 경고처럼 들린다.

“I love you. I mean, even without the money.” - 당신 사랑해. 내 말은, 이 돈이 없다 해도 말이야.

사랑은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이 영화는 사실 돈의 유혹에 완전히 매료되어 있다. 이 영화가 돈을 숭배한다는 것은 억만장자 게이지의 신격화에 가까운 묘사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난다. 그는 엄청난 부자일 뿐만 아니라, 로버트 레드포드의 얼굴을 가진 미남인데다가, 아니, 여자를 섬세하게 배려해주는 완벽한 신사가 아닌가. 이건 “돈을 포함한 모든 것”을 갖춘 남자의 유혹을 꿈꾸는 여성 판타지의 전형이 되겠다. (여성이 쓴 시나리오여서일까. 시나리오를 쓴 에이미 홀든 존스의 초기 작품인 ‘Mystic Pizza’(1988)에서도 흠잡을 데 없는 부잣집 아들이 가난한 집안의 딸(줄리아 로버츠)의 상대역으로 나온다.) 돈이 없어도 진정한 사랑은 영원하다는 얘기를 하는 것 같지만, 사실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일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은연중에 펼쳐 보이는 것이다.

영화는 심지어 그 환상을 아메리칸 드림으로까지 승화시키려 한다. 후반에 다이애나는 시민권 신청자들을 위한 준비교육을 시켜주는 파트타임 강사로 취직하는데, 강의 중 게이지가 롤스 로이스를 타고 나타나자 강의를 듣던 이민자들은 하나같이 눈과 입이 벌어지며 “우~” “아~”를 연발하고, 눈뜨고 보기 힘든 가장 촌스러운 모습으로 그에게 선망의 눈길을 보낸다. (그 중 한 명은 된 발음으로 “I’m from Seoul, Korea”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아메리칸 드림의 이런 해몽을 어떻게 받아들이든, 이런 장면이 이민자에게 주는 모멸감은 아마도 미국에서 사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실 이 영화의 본심은 남편 데이비드의 친구이자 변호사인 제레미(올리버 플랫)가 가장 명쾌하게 표현해준다.

“How can you negotiate without me? I could have got you at least 2 million!”
- 나 없이 어떻게 교섭을 할 수 있단 말이야? 내가 최소한 2백만은 받아줄 수 있었을텐데!

“For a million bucks I’d sleep with him.”
- 백만 달러라면 나라도 그 사람이랑 자겠네.

이런 솔직함이 ‘은밀한 유혹’의 골격을 이루었다면, 그 관점이 여성 판타지의 소프트포커스가 아닌 사회풍자의 예리함을 택했다면, 이 영화는 사뭇 흥미로울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억만장자의 음탕한 제안으로 굳건히 믿었던 사랑이 무너져 내리고, 돈의 엄청난 위력 앞에서 모든 가치관이 돌이킬 수 없이 변질되는 모습들을 보여줬다면 그래도 여운이 남는 짜릿한 작품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안전모드로 만든 이 영화는 그렇게 솔직하지 못하기에, 처음엔 빼어난 미모를 지닌 여자가 가난한 남편의 곁을 떠나 억만장자의 품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미화하는 데 여념이 없다가, 할리우드 엔딩의 수습단계에 가서는 그녀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돈 없는 남편 곁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을 믿어달라고 한다. (물론 끝까지 여자가 돈에는 관심이 없었음을 강조하기 위해, 영화는 데이비드가 부자들의 ‘돈지랄’ 경매에서 소 한 마리를 정확히 1백만 달러에 삼으로써 억만장자로부터 받은 돈을 모두 날려버리는 장면을 삽입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다이애나가 잘 생긴 억만장자의 손에 이끌려 다니는 장면들은 그나마 현실에 충실하다는 느낌이 든다. 차라리 그녀가 게이지의 품에 안겨 먼 산을 바라보는 장면으로 끝났다면 고개를 끄덕였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할리우드의 위선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마지막 장면에서 다이애나는 그 아늑한 롤스 로이스에서 뛰쳐나와 남편에게로 다시 돌아간다. 그것도 버스를 타고 말이다. 이토록 아름답고 순수한 여자를 어디서 만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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