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감정이 뜨겁다. 모 언론사의 온라인 여론조사에서 ‘독도사태를 계기로 일본과의 국교단절까지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무려 70%가 일리있는 주장이라고 응답한 반면 29.5%만이 감성적 대응이라 응답한 사실은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과격행동이 난무하는 속에서 관계장관이 상대국 수상을 직설적으로 비판하고 급기야는 대통령이 “패권주의,” “외교전쟁”이란 표현을 동원하기까지 이르렀다. 타오르는 반일감정이 한국외교를 압도하고 있음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82년 교과서 파동으로부터 시작되어, 일본 정치지도자들의 망언, 종군위안부 문제, 수상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후소샤 교과서 왜곡문제 등 일련의 과거사파동은 지난 20여년간 한일관계를 좌우하는, 한일관계에 있어 가장 큰 변수였다.
외교가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경쟁의 장이라면 한일간의 과거사문제는 이익보다는 정서적 판단을 증폭시킨다는 점, 정서의 폭발은 비대칭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점(즉, 일본이 아닌 한국만의 일이라는 점), 그리고 이는 주기적으로 재연되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소망스런 일이 아니다. 이런 과거사문제를 극복하고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모색해 가기 위해서는 한일간에 벌어지는 정서의 국제정치, 역사의 국제정치란 현상에 대한 본질적 인식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며 그럴 때 비로소 올바른 대일전략이 수립될 수 있다.
***1. 역사의 정치**
과거(the past)는 투명하고 진실된 사실(fact)로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는 집단적으로 기억되고, 구성되고, 논쟁되고, 지속되기 때문이다. 과거는 역사인식 혹은 집단적 기억을 반영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 해석은 인식하는 혹은 기억하는 시점 -- 현재(the present) -- 에서 이루어진다. 과거는 항상 현재에 있는 것이며 현재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다양한 역사가, 관료, 정치인, 학교, 언론, 영화 등이 서로 다른 버전의 국사(國史)를 생산해 내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국사는 결코 중립적(neutral)이지 않은, 현재적 조건을 반영하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띠고 있다. 사실의 기억은 교섭되고 타협되어지는 것이다.
일본의 과거, 보다 구체적으로 전전(戰前)의 제국일본에 대한 해석은 그대로 이데올로기성을 드러내고 있다. 1945년 패전은 전후 역사쓰기에 있어서 출발점이었고, 역사의 단절 즉, 45년 이전의 과거와 단절된 “새 일본”의 출발은 과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는 전쟁과 식민지 문제로서 “무엇이 잘못 되었는가”에 대한 대답이었고, 일본의 근대(modernity) 그리고 심지어는 일본의 전근대(premodern)에 대한 평가가 수반되는 성격의 과제이었다. 이를 둘러싼 역사해석 즉, 과거와의 단절이란 의미를 둘러싼 해석은 서로 다르게 나타나 경합하게 되었고, 진보세력의 국사(國史)와 보수세력의 국사(國史)간의 날카로운 대립이 그것이었다. 진보의 국사가 전전 일본과의 단절과 반성을 통해 진정한 민주주의를 구축하려는 열망의 표현이었다면 보수의 국사는 전후 경제적ㆍ국가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과거의 밝은 면을 부각시키려는 의도의 표출이었다. 물론 후자의 역사는 메이지유신 이래 천황제국가에 의한 근대화추구를 긍정하되 1930년대 군부 지도자 등에 의한 일시적 궤도탈선(제국의 과팽창)을 인정하는 점에서 황국사관과 대동아공영권을 긍정하는 우익(右翼)과는 차별적이다.
과거의 기억이 정치적인 만큼 두 국사 간의 우열 역시 정치적으로 즉, 시대의 정치적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 되었다. 진보사관의 전후(戰後) 상대적 우위는 일본이 고속 경제성장을 거듭하여 경제대국이 되면서 쇠퇴해 갔고, 일본의 저력/기적이 오래된 과거의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란 담론이 부상했다. 1970년대 말 오히라 수상의 “일본형 복지국가론”과 “전원국가론,” 80년대 나카소네 수상의 “늠름한 일본문화,” “국제국가론” 등은 서양문명에 비견되는 일본문명의 격상을 표상하는 언어로서, 문명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한 일본의 전근대와 근대사는 서구와 비견되는 영광의 역사로 새롭게 채색되어지는 것이었다. 한일간 외교대립화한 1982년 교과서왜곡 파동은 바로 이 시점에서 국내정치적으로 불거진 사건이었다. 이는 우리가 제기한 사건이 아니라 일본사회의 우경화에 대한 반작용 즉, 일본의 진보세력이 역사쓰기에 있어서 보수세력의 영향력 확대에 제동을 건 결과로 시발된 것이다.
80년대 보수사관의 부상이 당시의 국운상승을 반영하는 것이었다면 90년대 보수사관의 지속은 장기불황에 따른 국운하강(물론 상대적 하강)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잃어버린 10년”이란 표현대로 이때가 상실의 시대라면 상실된 것은 근대화를 지탱했던 일본정신과 문화, 근로의욕, 민족적 동질성이라는 인식이 등장하였고 이시하라 신타로 등이 이를 대변하였다. 이들에게 일본의 복권은 상실된 과거(=영광의 역사)의 복원이 되는 것이다. “새역모”에 의한 후소샤 교과서의 등장은 이런 시대적 맥락에서 즉, 소망하는 국가정체성이란 차원에서 상상된 과거의 기술로 이해되어야 한다(여기서 미국 변수는 박영준교수의 글에서 집중적으로 취급되므로 생략함).
***2. 역사의 국제정치**
역사쓰기가 이데올로기적 작업이고 곧 정치라면 역사쓰기를 둘러싼 국가간 대립은 국가간 정치 즉, 국제정치의 한 모습이 된다. 교과서 검정을 둘러싼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국제화된 모습이 바로 1982년 한일간의 교과서논쟁(한국의 “왜곡”론과 일본의 “외압”론의 대치)이며 역사의 국제정치이었다. 전후 반공동맹을 공고화해온 한국의 보수지배층이 일본의 진보진영을 후원해야 하는 기묘한 현상이 등장했다. 엘리트수준(집권 정치가, 관료, 재계)의 보수반공 연대의식과 대중수준의 강한 반일정서가 이중적으로 전개되는 속에서, 그리고 강한 반일정서의 폭발 속에서, 친일반공의 약점을 가진 지배층은 반일정서를 관리하며 국익을 추구하는 외교역량을 발휘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었다.
과거사문제가 표출되면 -- 많은 경우 일본내 양심/진보세력의 제기로 등장하면 -- 한국내 반일정서가 폭발하고 정서의 홍수 속에서 외교가 실종되는, 그럼으로써 힘의 열세에 있는 우리가 상대적으로 더 큰 손실을 입게 되고, 일본의 외교적 수사와 함께 감정이 진정되면 사건 이전의 상황으로 되돌아가고, 차후 또 다른 과거사문제 돌출과 함께 동일한, 아니 대단히 유사한, 역사의 국제정치가 반복되는 현상을 우리는 목도해 왔다. 1982년 교과서사태와 오늘의 독도사태는 그 성격상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성격을 가진 과거사문제가 해결되려면, 적어도 한국과 중국이 이를 덮고 넘어가지 않는 한, 일본의 국내정치가 진보사관을 받아들일 만큼 선진적인 민주정치체제를 갖게 되어 망언의 정치가는 정치적으로 사장되는 자기규제 메커니즘이 작동되든가, 아니면 국제정치적으로 외압 즉, 외부적 압력이 작동되든가 둘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현재 자민당이 지배하고 있는 일본의 정치체제가 가까운 장래(5-7년) 급격히 변화되지 않는 한 일본 스스로의 해결은 기대할 수 없다. 고이즈미나 차세대주자군(아베 신조 등)의 보수적 역사인식에 비추어 자민당 내부로부터 환골탈태를 기대하기는 어렵고, 정권교체에 의한 제2의 호소카와나 무라야마를 기대하는 것 역시 어렵다. 또한 사회 저변에 흐르는 보수화의 물결이 급격히 변화될 가능성도 희박하다. 그렇다면 과거사문제의 해결은 국내가 아닌 국제정치의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사안이 된다.
역사의 국제정치를 푸는 방식은 국제정치란 장이 갖고 있는 속성 즉, 힘이 지배하는 세상임을 자각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 정서의 국제정치 즉, 반일정서의 극단적 표출은 일본을 움직이는 힘으로 작동하지 못한다. 정서의 존재는 단지 협상의 수단으로 이용되어질 뿐이다. 한일간에 역사의 국제정치가 반복되고 있는 사실은 양국간의 불균등한 힘의 관계를 드러내는 반증이다. 반대로 일본 수상의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대한 중국의 결연한 반대에 직면하여 나카소네와 같은 보수인사가 외교적 고려의 입장에서 야스쿠니신사에서 전범을 분사(分祀)할 필요가 있다는 언급을 하고 나오는 것은 바로 떠오르는 중국의 힘을 반영하는 사례이다.
***3.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국제정치는 힘의 논리가 작동하는 장임을 인식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일본의 변화를 가져올 만한 힘을 -- 외압을 효과적으로 행사할 능력을 -- 갖지 못한 것이 현실이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상대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나아가, 역사의 국제정치에서 외압이란 통상(通商)의 국제정치의 그것과는 다르다. 후자의 경우, 외부의 통상압력(i.e., 미국)에 대하여 일본이 시장을 여는 즉, 싫지만 행동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결되는 반면, 전자의 경우는 외부의 압력에 대해 마음의 변화를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한국의 반발에 직면하여 일본이 마음은 다르면서도 외교관계를 고려해 립서비스 혹은 침묵하는 행동은 문제의 근본적 해결의 길이 아니며 언제든 재발될 수 있고 또 그래왔다.
그런데, 앞서 지적하였듯이 역사인식이란 일본의 현재적 삶에 의미와 동기를 부여하려는 형태로 세상(과거)을 해석하려는, 즉 일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규범적 판단이 내재되어 있는 메타언어(meta-language)적 성격을 띤다. 다시 말해서 이는 상상된 과거를 통해 현재의 고민과 걱정을 해석하려는 작업인 만큼 역사인식의 변경은 가치관과 국가진로에 대한 본원적 고민이 수반되어야 하는 심각하고 고통스런 과제인 것이다. 이는 강경대응으로 “뿌리를 뽑을 일”처럼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 문제는 일본인의, 일본의 정치지도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과제로 귀착된다. 즉, 우리가 행사해야 할 힘은 물리적 압박이 아닌, 일본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원하도록 만드는 힘 즉, 소프트파워(연성권력)가 되어야 한다.
소프트파워란 상대방의 마음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을 말하며 이런 구조적 혹은 구성적 권력의 핵심은 바로 매력(attractiveness)이다. 매력은 가치창조력, 문화력, 지력, 신뢰감 등으로 발산되며 효과적인 대민외교(public diplomacy)가 매개체로 활용될 수 있다. 예컨대 미국적 가치와 대중문화, 압도적 지력은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군사ㆍ경제적 하드파워를 넘어 21세기 제국적 질서를 유지하는 주요 권력원천이 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21세기 국제관계는 한편으로는 매력의 창조와 발산의 경쟁이 될 것이며, 특히 한일관계에 있어 역사문제는 소프트파워의 동학(dynamics) 속에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
21세기 국력평가기준으로 볼 때 한일간 역사왜곡논쟁은 일본에게 소프트파워의 심각한 저하를 야기하는 사안이다. 일본의 국수주의적 가치와 역사인식은 일본의 매력을 저하하는 요소이다. 왜냐하면 국가간에 형성되는 소프트파워란 특수문화에 대한 매력이라기보다 그 국가와 사회가 추구하는 원리와 가치에 대한 존중이며 이는 특정국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주변국을 아우르는 일정한 보편성을 띠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은 실효성 없는 정서적 외압이나 후속수단이 마땅치 않은 정치적 압력 보다는 일본의 행동이 21세기적 표준에서 얼마나 후진적인지를 내려다보면서, 점잖게, 세련되게, 지속적으로 지적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서 일본이 무력(武力)과 금력(金力)을 넘는 매력의 발산 없이는 결코 동아시아의 패권 혹은 국제적으로 지도적인 위치에 오를 수 없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하게 한국이 일본내 양심세력, 아시아 혹은 국제사회와의 연대를 통해 일본의 중심을 압박하기 위해서는, 혹은 그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는 자체적으로 소프트파워의 컨텐츠가 개발되어야 한다. 이른바 한일관계독트린에서 나온 “인류 상식에 기초한, 세계사의 보편적 방식에 기초한 과거사처리”라는 추상적 언어를 뒷받침해 줄 컨텐츠는 한국인의 창의와 지적 능력에서 도출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국 스스로가 세계의 혹은 지역의 모범과 표준이 되는 일이다. 예컨대 우리의 교과서가 세계적 모범의 수준에 달할 때 일본의 국수적 교과서로 힘이 작동, 그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결국, 소프트파워의 핵심은 한국 스스로 표준을 만들어 이웃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데 있다. 그럴 때 일본은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고 한국을 아쉬워하게 되는 것이다.
요컨대, 과거사문제는 일본에게 그들의 근대에 대한 해석과 관련된 지적 작업인 동시에 현재적 고민과 걱정을 해석하려는 이데올로기적 작업인 만큼 단순히 역사적 사실의 발굴에 의한 상대방의 설복으로 해결될 성질의 사안이 아니다. 또한 물리적 강제의 시도나 정서의 무제한적 분출이 문제해결의 길은 더더욱 아니다. 정작 요구되는 것은 교묘하고 세련되게 매력적인 컨텐츠를 담아 보내는 일본의 마음 끌기이다. 이는 모범을 보이는 긍정의 전략이며 머리를 짜내는 지적 전쟁이지 얼굴 붉히는 각박한 지구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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