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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 포르노, 그리고 美 수정헌법 제1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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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패러디, 포르노, 그리고 美 수정헌법 제1조

김명훈의 '영화, 영어, 그리고 미국' <27> ‘The People vs. Larry Flynt’

표현의 자유란, 헌법이 보장해주는 것과는 관계없이, 그 수위가 불변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의 분위기나 시대의 정서에 따라, 또 권력을 쥔 자들의 성향에 따라, 그 자유의 폭은 확대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 그렇기에 지금 미국에서처럼 극우 이념으로 무장한 정부가 통제 지향적 이념아래 사회의 모든 분야를 장악하려고 획책하는 판국에서 표현의 자유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실제로 근래에 9.11이라는 대참사를 겪은, 정서가 불안해진 나라에게 표현의 자유 따위는 사치라고 생각하는 무리들도 적지 않기에 더더욱 그렇다.

어쨌든 요즘 미국에서는 표현의 자유나, 언론의 자유나, 암암리에 제한을 받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지금의 미국은 한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꿈꾸던 그 ‘자유의 나라’와는 거리가 있다. 자의든 타의든 시민들은 말을 조심하고 있고, 제도권 언론은 자체검열을 무척 성실하게 하고 있다. 알게 모르게 무고한 사람들이 의심 받고 인권을 유린당하고 있으며, 도처에서 감시의 눈길이 느껴진다. 국가안보를 빙자, 독소조항으로 가득 채운 2001년의 미국 애국법(USA Patriot Act)은 지금의 이런 사회적 분위기의 머리말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신성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분명 있겠지만) 미래에 대해 일말의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미국의 수정헌법 제1조(First Amendment)가 있어서다. 권리장전(Bill of Rights)의 맨 꼭대기를 차지하고 있는 수정헌법 제1조는 자유의 표현에 관한 모든 논쟁의 시금석이 된다. 그 실천은 일개 정권이 좌지우지 할 수 있지만, 그 의의는 변하지 않는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Congress shall make no law…abridging the freedom of speech, or of the press.

의회는 표현의 또는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종교, 평화집회, 불만의 구제를 위한 정부에 대한 청원의 권리 부분 생략]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수정헌법 제1조는 “표현·언론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식의 표현 대신 의회가 그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는 표현을 썼다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미국의 헌법제정자들은 아무런 유보사항도 없이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의 제정을 원천 봉쇄해버린 셈이다. (참고로,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놓고 대한민국의 현행헌법 21조는 “언론 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언론 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한 때에는 피해자는 이에 대한 피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등의 유보사항을 명시하고 있다.)

이처럼 표현의 자유가 든든히 보장되어 있는 듯 하지만, 미국의 표현 및 언론의 자유의 역사는 이 자유를 억압하려는 세력과의 끊임없는 투쟁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따금씩 나오는 수정헌법 제1조와 관련한 연방대법원의 ‘획기적인 판결’은 그 투쟁의 역사에 방점을 찍어준다. 이러한 획기적인 판결들을 통해 미국의 표현의 자유는 최소한 이론상이나마 꾸준히 확대되어 왔다.

1988년 대법원까지 올라간 포르노 잡지 ‘허슬러’ 사건(Hustler Magazine v. Falwell)에 대한 판결은 기존의 표현의 자유의 범위를 확대시켜준 가장 최근의 ‘획기적 판결’이다. 이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공인에 대한 패러디가 아무리 혐오스럽다 할지라도 공인을 패러디할 수 있는 권리는 보호되어야 한다고 만장일치로 판결함으로써, 사실상 패러디와 그 표현방식에 성역도 금기사항도 없음을 선언했다. 이 사건은 1964년 언론보도에 의한 정치인 명예훼손 사건(New York Times Co. v. Sullivan)에서 뉴욕타임스의 손을 들어준 대법원 판결과 함께, 언론 및 표현의 자유에 있어서 지난 반세기 동안 가장 중요한 판결 중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83년 ‘허슬러’지 11월 호에 실렸던 Campari 광고 패러디.

이미 악명이 높았던 ‘허슬러’지 발행인 래리 플린트(Larry Flynt)를 졸지에 표현의 자유의 화신으로 만들어준 이 사건의 핵심에는, 산전수전 다 겪은 듯한 오늘날 우리의 관점에서 봐도 경악할 만한 패러디 광고가 있다. 당시 여러 잡지에 실리고 있던 캄파리(Campari) 술 기획광고를 차용한 문제의 광고는 ‘허슬러’를 끊임없이 공격해 왔던 기독교 근본주의자인 제리 폴웰(Jerry Falwell)목사의 ‘첫 경험’에 대한 고백을 소개했다. 연예인이 이 술을 처음 마셨을 때의 ‘첫 경험’을 성경험을 연상케 하는 이중의미(double entendre)의 표현으로 ‘고백’하는 인터뷰 형식을 빌린 광고였다. 1983년 11월 호에 실린 이 패러디 광고가 전하는 폴웰 목사의 ‘첫 경험’이란 술 취한 상태에서 자신의 어머니와 뒷간에서 가졌던 성 경험을 말하는 것이었다. ‘도덕적 다수’(Moral Majority)의 지도자를 자처하는 폴웰 목사는 사생활 침해(invasion of privacy), 명예훼손(libel), 그리고 고의적으로 가한 심리적 압박(intentional infliction of emotional distress)을 이유로 즉각 소송을 제기했고, 지방법원에서 이 광고로 인한 심리적 압박 부분이 인정돼 승소했다. 사실 폴웰이 주장한 세가지 불법행위 가운데 한가지만 인정됐다는 것은 래리 플린트의 승리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가 있었으나, 당시 발행부수가 3백만에 가까웠던 ‘허슬러’지의 번창으로 기고만장해 있던 플린트가 이 판결에도 불복하여 결국 사건이 연방 대법원으로까지 간 것이다.

1996년에 나온 밀로스 포먼 감독의 전기영화 ‘래리 플린트’(The People vs. Larry Flynt)는 표현의 자유를 앞세운 플린트의 법정 투쟁을 기둥 삼아, 여성의 성적 물건화의 첨병이었던 이 사람의 생애를 사뭇 연민 어린 시선으로 다룬다. 영화는 그의 반사회적이고 파멸적인 도발행위들을 애교로 받아들이라고 한다. 우디 해럴슨이 제법 멋지게 소화해 내는 영화 속의 래리 플린트는 아내(Althea, 코트니 러브 분)를 가슴 아플 정도로 사랑하는 로맨티시스트며, 제도권을 암시하는 얼굴 없는 괴한의 총탄에 반신불구가 된 희생양이며, 소위 주류라 하는 무리들의 위선과 불의에 온몸으로 저항하는 제도권 밖의 외로운 투사이다.

‘에드 우드’(Ed Wood · 1994)의 시나리오 팀인 스캇 알렉산더와 래리 카라쥬스키가 함께 쓴 시나리오는 실제 인물 래리 플린트의 불쾌하고 흉악한 면들을 익히 알고 있는 관객이라 할지라도 그에 대한 동정을 갖지 않기가 힘들 정도로 주인공을 능숙한 솜씨로 미화시키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쓸쓸하게 홀로 침대에 누운 채 죽은 아내의 옛 모습을 비디오로 보며 “우리 이겼어…날 위해 스트립 쇼를 해 주렴(We won…Strip for me, baby)” 이라고 목쉰 소리로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는 플린트의 모습은 그를 비극적 영웅으로 승화시켜 준다.

그럼에도 영화는 제작자인 올리버 스톤의 작품답게, 그 정치적 메시지의 핵심은 놓치지 않는다. 설사 래리 플린트를 미화했다 하더라도, 영화는 잘 짜여진 각본을 통해 이 포르노의 제왕이 얼마나 사회로부터 경멸의 대상이었는지를 그의 입장에서 보게 함으로써 그 메시지를 개인의 차원에서 받아들이도록 유도한다. 그리하여 예고된 클라이맥스인 대법원 판결에 도달했을 때, 관객은 이 사람의 ‘희생’을 통해 표현의 자유가 진일보 했다는 것에 자연스레 공감하게 된다. “수정헌법 제1조가 나 같은 쓰레기(scumbag)를 보호해 준다면, 당신들 모두를 보호해줄 것이다”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If the First Amendment will protect a scumbag like me, it will protect all of you.”)

래리 플린트라는 타락한 인간의 드라마와 표현의 자유라는 사회적 명제는 이 영화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만나기에, 말미에서 포먼 감독이 플린트의 변호사(에드워드 노튼 분)의 입을 빌어 슬쩍 끼워 넣는 대법원 판결문의 발췌부분은 그 속보이는 교훈적인 의도와 인위적인 느낌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용서가 된다. (고로 나도 여기에서 인위적으로 한번 읊어 본다.)

"At the heart of the First Amendment is the recognition of the fundamental importance of the free flow of ideas. Freedom to speak one’s mind is not only an aspect of individual liberty, but essential to the quest for truth and the vitality of society as a whole. In the world of debate about public affairs, many things done with motives that are less than admirable are nonetheless protected by the First Amendment."

"수정헌법 제1조의 핵심에는 사고의 자유로운 교류의 근본적인 중요성에 대한 인지가 있다. 개인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는 개인의 자유의 양상일뿐 아니라, 진실의 추구와 사회 전체의 활력에 있어서 불가결한 것이다. 공공문제에 대한 토론의 장에서, 좋지 못한 동기에서 비롯된 많은 행위들도 수정헌법 제1조의 보호를 받는다."

명망 있는 목사를 근친상간하는 인간 쓰레기로 묘사한, 그것도 포르노 잡지에 실린 추악한 패러디를 놓고, 당시에도 보수성향이 강했던 미국의 연방대법원은 ‘진실의 추구’와 ‘사회 전체의 활력’을 위하여 이같이 가해자의 손을 들어 주었다. 그것도 만장일치로 말이다. 미국의 무시 못할 저력은 이런 데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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