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순 MBC사장 내정자는 요즘 주위에서 "복도 참 많다"는 소리를 듣는다. 사장에 내정되자마자 연일 KBS에 뒤처져 왔던 평일 메인뉴스 시청률이 오랜만에 역전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MBC <뉴스데스크> 시청률은 방문진이 최 사장 내정을 발표했던 지난 22일 저녁 닐슨미디어리서치 집계 결과 21.7%를 기록, 경쟁상대인 KBS <뉴스9>을 1.5%포인트 차로 앞섰다. 전날만 해도 KBS에 2.1%포인트나 뒤지고 있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MBC '개혁호'의 출항은 시청자들의 눈길을 돌릴 만큼 큰 사건이었던 셈이다.
***'최문순 폭풍' 예고편에 언론계 초긴장**
최 사장 내정자는 방문진의 발표 직후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의 MBC 개혁방향에 대해 꽤 많은 구상을 내놨다. 그 가운데 △연공서열 파괴 △임금 10% 삭감 △대국 소팀제 신설 △지방계열사 광역화 등은 국내 방송계는 물론 언론계 전체를 뒤흔들 만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는 게 언론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임금 삭감 등은 다른 신문.방송사들도 그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 식으로 주저해온 사안이기 때문이다.
최 사장 내정자는 내친 김에 "지금 시점에서 신문·방송 겸업을 허용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해, 그동안 앞서 신문.방송 겸업을 주장해온 메이저 보수 신문사들마저 아연 긴장케 하고 있다. 방송사가 먼저 신문.방송 겸업을 치고 나올 경우 신문사들은 수세로 몰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보수성향의 메이저 신문사들의 경우 개혁적 성향의 마이너 신문사가 방송사와 손을 잡을 경우 메이저가 독식하다시피하고 있는 기존 신문시장 판도에 일대 격동이 생겨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는 분위기다.
***"개혁의 동력을 국민으로부터 얻어내야"**
최 사장 내정자가 이렇듯 큰 과제들을 초반부터 과감하게 노출시킨 이면에는 '개혁의 동력'을 국민들로부터 얻어내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MBC 한 관계자는 "측근들도 최 사장 내정자에게 국민들의 지지를 등에 업어야만 내부개혁은 물론 방송개혁 또한 이뤄진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이는 KBS가 정연주 사장 취임 이후 강한 개혁드라이브를 구사하다가 내부 반발에 부딪히면서 주춤거리게 되자, 도미노처럼 수신료 인상과 방송법 개정 국면에서 모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에서도 다시 한번 확인되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최 사장 내정자는 더군다나 노조 또한 성명을 통해 "최 사장 내정자가 두려워해야할 것은 오직 시민사회뿐"이라고 힘을 북돋아주고 있어, 조만간 전전대의 김중배 사장 시절보다 강한 개혁드라이브가 사내 안팎에서 펼쳐질 것임을 예고케 하고 있다.
***웃음 없어진 정연주 사장, "KBS 앞날 걱정"**
반면 요동치는 MBC의 모습을 보고 있는 KBS는 좌불안석이다.
KBS 관계자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른 방송사들 보기가 민망할 정도"라며 여유로운 분위기를 보였었다. 이는 드라마는 물론 시사·교양,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등 전 분야에서 압도적으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데 대한 KBS의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했다.
하지만 MBC의 '개혁' 선택을 전후해 KBS는 깊은 시름에 빠져 들고 있다. 일부 KBS 관계자들은 "단적으로 정연주 사장의 요즘 굳어진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다"는 말로 이를 설명했다.
한 관계자는 "정 사장은 얼마 전 사내 변화관리팀이 한국사회여론연구소에 의뢰해 전체 사원의 72%에 해당하는 3천7백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현재의 KBS 변화 방향에 대해 모두 62.2%가 '바람직하다'는 평가를 내리자 이에 크게 고무돼 있는 상태였다"며 "그러나 방송법 개정을 둘러싸고 정치권과 시민단체, 그리고 국민들이 등을 돌리기 시작하고 연초부터 추진하려던 수신료 인상마저 무산돼 가는 분위기를 보이자 이제는 특유의 여유로운 웃음마저 얼굴에서 사라졌다"고 귀띔했다.
또다른 한 관계자는 '반(反)정연주' 정서를 가진 노조 집행부의 등장도 갈 길이 먼 정연주 사장의 발목을 잡는 요소로 지목했다. 실제로 KBS 노사는 최근 열린 첫 노사협의회가 무산된 뒤 급속하게 냉각돼 가는 분위기다. 노조는 지난 17일 정 사장이 부산KBS에서 '사원과의 대화'를 개최하려 하자, 행사장 입구에서 저지시위를 벌여 이를 무산시키기도 했다.
정 사장은 당시 행사가 무산된 뒤 측근들과 저녁식사를 하면서 MBC 새 사장에 최문순씨가 내정될 것을 미리 예견하며, KBS의 앞날을 크게 걱정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관계자는 "정 사장은 술잔이 몇 번 돌자 MBC의 개혁을 화두로 꺼냈고, 만약 MBC가 강한 개혁드라이브를 구사하며 방송개혁을 선도할 경우 또다시 수동적인 방향으로 KBS의 개혁이 진행될 것을 크게 염려했다"며 "지금 시점에서 MBC의 개혁적인 행보는 분명 '부메랑'처럼 KBS로 돌아와 더 큰 파란을 일으킬 것이 자명함에도 이를 지켜만 봐야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MBC 최문순 사장내정자가 과연 앞으로 어떤 폭풍을 불러일으킬지는 아직 알 수 없다. KBS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 내부저항에 직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MBC는 이미 언론계의 폭풍핵으로 자리잡은 분위기다. 'MBC발 폭풍'이 언론계에 어떤 후폭풍을 몰아올지 예의주시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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