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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2030" 목소리는 왜 실종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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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2030" 목소리는 왜 실종됐나?

[청년, 정치개혁을 말하다] '표품청' 시즌2를 시작할 때

우리는 확실히 들떠 있었다. 지난 19대 총선을 앞두고 언론들은 앞다투어 2030세대의 표심이 어디로 향하는지에 주목하며 갖가지 보도와 분석을 내놓았다. 시류가 그러하니, 정당들은 청년비례대표 자리를 두고 경쟁적으로 오디션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자신들이 청년을 진정으로 대표하는 정당임을 내세웠다. 심지어 청년당이 창당되기도 하였다. 서러움은 인제 그만, 드디어 청년이 직접 정치에 진출하는 세상이 온 것이다!

그것은 과거의 선거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변화였고, 이번에는 무언가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2011년 크게 대두되었다가 주춤해졌던 반값등록금 이슈의 흐름을 이어나가며, 선거를 통해서 청년들이 겪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사회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전망이 보이는 듯했다. 2012년이야말로 등록금과 청년실업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는 '거리와 광장의 목소리'가 정치의 영역에서 터져 나와, 실제로 변화를 만들어내야 하는 시기이다.

우리는 표를 품은 청년입니다!

ⓒ표를품은청년
그런 열기가 총선 기간 내내 청년들이 기획한 다양한 참여 활동들로 표출됐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표를 품은 청년(이하 표품청)'인데, 당시 인기 있던 드라마 이름을 재기 발랄하게 패러디한 것이다. 그것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줄 알았던 청년들이지만, 이제는 변화를 만들어 낼 힘을 손에 쥐고 있다는 선전포고였다. 또한, 표를 품은 유권자로서 당당히 목소리를 내고, 우리가 원하는 사회를 요구하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럴싸하게 써놓고 보니 취지는 거창해 보이지만, 실제로 진행된 표품청의 활동은 소소한 재미로 가득했다. 대학생, 청년들이 밀집해 있는 신촌 지역 대학가를 거점으로 추진된 기획이었고, 때문에 청년 이슈들 중에서도 등록금과 주거 문제를 중심으로 갖가지 활동이 진행됐다. 우선 가장 대표적인 것은 청년들이 오가는 거리에서 '달팽이 빵'을 직접 만들어 팔았던 것이다. 여기서 달팽이는 청년주거 문제의 마스코트가 된 상징물인데, '달팽이도 집이 있는데, 왜 우리 청년들은 집이 없을까'라는 푸념에서 착안한 것이다. 달팽이 빵 마차에서는 쉴 새 없이 달팽이 집을 짓자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달팽이 촉수 모양의 머리띠를 한 청년들이 반죽을 붓고 팥을 얹어 빵을 굽는다. "청년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달팽이 빵이 세 개 천원입니다!"라는 호객행위(?)가 이루어지고, 빵과 함께 표품청의 활동을 알리는 홍보물이 건네진다. 4월 11일에 꼭 투표하자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표를품은청년

ⓒ표를품은청년

그 밖에도 집에서 사용하던 접이형 침대를 손수 끌고 나와 유명 백화점 입구의 작은 공터에 자리를 잡고 파자마 차림의 청년이 잠을 자는 퍼포먼스도 진행됐다. 집값이 비싸 떠도는 청년들이 '자기 몸 뉘일 곳은 어디에 있을까'라는 물음을 던지는 내용이었다. 퍼포먼스 중간 중간에는 피켓을 들고 셔플댄스를 추기도 했다. 종종 지나가던 청년들과 고양이 탈을 쓰고 카페를 홍보하던 아르바이트생도 함께 스텝을 밟곤 했다.

3월 한 달 내내 숨 가쁘게 달려온 표품청의 마지막 행사는 총선 투표를 딱 일주일 앞둔 4월 4일 신촌 놀이터(창천 어린이 공원)에서 진행된 '표를 품은 청년, 신촌 페스티벌'이었다. 각종 공연과 함께 <친절한 미분양>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청년들과 김영경 서울시 명예부시장의 대화도 진행됐고, 청년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직접 듣는 순서, 그리고 각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자들을 초청하여 청년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를 확인하는 순서도 마련됐다.

ⓒ표를품은청년

표를 품은 청년? 알고 보니 사(死)표를 품은 청년

일주일이 흘렀고, 드디어 대망의 총선 투표일. 하루 종일 SNS에서는 투표인증샷이 유행처럼 번지며 그 자체로 즐거운 놀이문화가 됐다. 원래 선거를 축제에 비유하곤 하지 않는가? 그날 저녁, 표품청에 함께 한 이들은 한자리에 모였다. 한껏 들뜬 마음으로 개표방송을 보며 젊은이들답게(!) 술잔을 기울였다. 그간의 고된 활동을 마무리하며 오늘 밤만은 탕진의 시간을 보내보고자 축배를 들려던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우리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결과에 마주했다. 탄식이 오가는 와중에 모여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어디선가 우스갯소리가 하나 들려온다. "우리, 알고 보니까 사표(死票)를 품은 청년이었나 봐."

선거 결과에 대한 정확한 분석의 문제는 일단 차치하고, 우리를 정말로 슬프게 하는 건 그것이 쓴웃음으로 흘려보내기엔 너무나도 가슴을 후비며 정곡을 찌르는 말이라는 점이다. 이번 총선에서만큼은 주인공이 될 줄 알았던 청년들이 또다시 정치의 무대 바깥으로 내몰리는 걸까? 결국 청년은 정당들의 선거 전략에 이용당하는 들러리일 수밖에 없을까? 개표결과를 보며 스쳐 간 우려는 곧 현실이 되었다. 총선 이후의 짧은 시간 동안 유난히 사건사고가 많기도 했지만, 19대 국회가 개원한 현재, 정치의 영역 그 어디에서도 청년의 목소리를 찾을 수가 없다. 투표 직전까지 그렇게도 절박하게 "2030!"을 외치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말로만 무성하던 '청년 정치'가 흔적도 없이 실종돼버린 것이다.

청년들의 표를 죽인 범인 중 하나는 선거제도

그렇다면 청년들의 표는 누가 죽인 것일까? 범인은 여럿 있겠지만, 우리가 지금 지목해야 할 것은 한국의 국회의원 선출방식이다. 선거제도 자체가 청년들의 표를 죽인 것이다.

한국의 국회의원 선출 제도는 지역구에서 가장 득표를 많이 한 후보가 당선되어 의석을 갖는 '소선거구 1위 대표제'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지역구에서는 당선된 후보자에게 간 표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표들은 사표가 된다. "Winner takes all" 즉, 승자독식 게임이다. 이 게임에서는 플레이어들이 목숨을 걸고 철저히 이기기 위한 전략을 취한다. 그리고 관전자들에게 '박빙의 대결구도'와 같은 매우 긴장감 있는 스펙터클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선거제도에서는 사실상 '청년'들의 표가 살아남을 공간이 매우 협소하다. 이유는 명확하다. 우선 청년들의 요구는 기본적으로 전국적인(전사회적인) 의제이기 때문에 지역구 선거의 이슈가 되기 힘들다. 선거의 이슈가 되지 못한다는 것은 후보자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는 것이며 정책이나 공약으로 다뤄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지역구 후보자들이 겉으로는 청년들의 지지를 호소할 수는 있어도, 실제로는 청년문제를 자연스럽게 등한시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런 이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국회는 어떠하겠는가? 게임의 룰이 그렇기 때문에 누가 플레이어가 되어도 큰 차이가 생기지 않는다.

부수적으로 다른 이유 한 가지를 더 들자면, 청년들은 주로 대학이나 직장을 중심으로 생활하기 때문에 활동지역과 거주지의 지역구가 분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각 지역에서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로 이주한 청년들은 주민등록상 거주지를 원(元)거주지로 남겨두기도 한다. 이런 조건에서는 자기 지역구 선거에 관심 자체를 갖기가 어렵다. 솔직히, 적지 않은 청년들에게 집은 잠만 자는 곳이지 않은가?

따라서 지역구 중심의 선거에서는 이 두 가지 이유가 서로를 강화하며 청년들의 표가 갈 곳을 잃게 된다.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길을 잃은 표가 결국 죽은 표가 되면, 목소리를 잃게 되고, 결국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않는다. 그리고 청년들을 대표하지 않는 정치가 청년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청년이 대표될 수 있는 정치, 비례대표제 확대로 가능하다!

그런데 이것이 청년들만의 문제일까? 그렇지 않다. 여성, 장애인, 노인, 성소수자, 비정규직, 영세 자영업자, 도시빈민, 철거민, 농민과 같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집단들은 모두 같은 상황에 처해있다. 지금의 제도에서는 이들이 품고 있던 표들은 모두 죽어버린다. 여기서 오해는 말아야 한다. 이 사회집단에 속하는 개개인들이 던진 표들 중에 살아남는 것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여성', '장애인', '노인', '성소수자', '비정규직', '영세 자영업자', '도시빈민', '철거민', '농민'으로서 행사된 표가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선거의 결과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집단이 대표되지 않는 정치가 탄생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선거의 비례대표성을 확대하는 것이다. 즉, 비례대표제를 통해 행사된 표가 실제 의석으로 반영되는 비율을 높이는 것이다. 여기서 이러한 '비례성'의 정치적 효과가 굉장히 중요하다. 비례대표제의 경우, 정당에 투표하는 형식이기 때문에 각 정당들은 가치와 이념, 강령과 정책을 중심으로 경쟁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사회의 크고 작은 목소리가 두루 반영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자연스럽게 각 사회집단을 잘 대표할 수 있다고 검증된 이들이 각 부문의 비례대표 정치인이 되어 국회에서 의정활동에 임할 것이다. 구체적인 '그들'의 정치적 대표자로서 말이다.

물론 현행제도 내에도 정당투표를 통한 비례대표제가 시행되고 있다. (없는 것보다는 낫다.) 그러나 그 비율이 너무 낮기 때문에 본래 가지고 있는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말하면, 지금 한국사회에 필요한, 그리고 청년들이 요구해야 할 정치개혁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비례대표제 확대이다.

'표를 품은 청년' 시즌2를 시작해야 할 때

이러한 취지로 현재 여러 청년단체들이 모여 'PR청년포럼'을 구성하고 비례대표제 확대 운동을 준비하고 있다. 죽을 수밖에 없었던 청년들의 표를 되살리기 위해 표를 품은 청년들이 모여 한국 사회의 정치, 그 자체를 바꾸려고 한다.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비례대표제 확대가 왜 필요한지, 어떻게 확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사회적 토론이 시작되어야 하며, 그것에 청년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길 바란다. 결국, 그것이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미래의 정치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표를 품은 청년' 시즌2, 청년 정치의 미래는 비례대표제 확대와 함께 열릴 것이다.

[취지문]

PR청년포럼은 PR포럼의 청년그룹으로서 한국 정치 발전을 위해 비례성이 높은 선거제도 개혁이 필수적이라는데 동의하는 개인, 청년단체, 시민사회단체, 언론사, 정당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PR포럼에서는 청년들이 다양성이 인정되는 속에 합의의 정치가 이루어지는 한국 사회를 만들기 위해 비례성, 다양성, 공정함이 보장될 수 있는 선거제도를 얼마나 열망하는지, 이를 위해 비례대표제 확대를 얼마나 고대하는지, 조금은 거칠지만 생생한 청년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열망을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기로 하였습니다. 정치의 해인 2012년에 비례대표제 확대가 우리 사회 주요한 사회적 아젠다로 자리매김하는데 청년들의 이 작은 몸짓들이 마중물이 되어주길 간절히 소망하며 '청년, 정치개혁을 말하다' 연재를 시작해봅니다.

PR청년포럼 홈페이지 바로가기 http://prforum.tistory.com

[청년, 정치개혁을 말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슈퍼스타K가 아니다

-구럼비 파괴되던 날, 나는 비례대표제를 고민했다
-이게 선거인가! 이게 사는 건가!
-그래서 결국 경제 민주화는 누가,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야권연대 '협박의 정치'를 끝내라
-국회의원 복지부터 스웨덴식으로 바꾸는 건 어떨까?
-통진당 사태는 선거제도의 슬픈 자화상
-국회의원 특권만 줄이면 좋은 정치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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