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언론노조 KBS본부 차기 정·부위원장에 '반(反)정연주' 기치를 내걸었던 후보가 당선돼 파란이 일고 있다. 정연주 KBS사장으로서는 지난해 4월 취임이래 최대 위기에 봉착한 셈이며, 그 후폭풍이 KBS를 넘어서 언론계 전반으로 파급될 전망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反정연주' 기치 후보, 3백여표 차로 당선**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김영삼)는 4일 새벽, 2일과 3일 이틀 동안 본사와 지역국에서 각각 10대 정·부위원장 선거를 실시한 결과 기호4번으로 출마한 진종철·허종환 후보가 모두 1천9백66표(53.2%)를 얻어 1천6백32표를 획득한 기호2번 김용덕·류해남 후보를 3백34표차로 따돌리고 정·부위원장에 선출됐다고 발표했다.
KBS본부는 앞서 지난 11월23일 모두 4개 팀이 출마한 정·부위원장 선거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나오지 않음에 따라 가장 많은 득표수를 얻은 기호4번 후보와 기호2번 후보팀을 대상으로 2차 결선투표를 치렀다. 이번 선거과정에서 기호4번 후보는 결선투표를 앞두고 KBS 내부 게시판에 사측의 구조조정 문건을 폭로해 결선투표일이 연기되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이번 KBS본부 정·부위원장 결선투표는 애초 '박빙'이 예상됐으나 개표 초반부터 기호4번 후보측이 1백여표 차이를 보이며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기호2번 후보측은 후반 들어 역전의 기회를 노리기도 했으나 결국 표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반정연주 전술과 '구조조정 문건' 폭로가 승리요인**
KBS에서는 이번 선거 결과와 관련, 정연주 사장이 추진해온 '내부개혁' 노선에 따라 통폐합 대상으로 지목되며 고용 불안감을 느껴온 지역국 조합원들과, '대팀제' 도입 뒤 기자·PD 직군에 비해 상대적인 박탈감이 컸던 행정직들이 기호4번 후보측에 대거 몰표를 행사했기 때문으로 풀이하고 있다.
진종철·허종환 정·부위원장 당선자는 실제로 선거운동 초반부터 KBS 내부 일각의 반(反)정연주 정서를 집중공략했다. 진 후보측은 '사생결단, 당당한 노조, 행복한 조합원'을 기치로 내걸고 선거운동 기간내내 정 사장과의 '진검승부' 등을 강조해 왔다.
진 후보측은 주요 선거공약으로도 △사장 추천위원회 제도화 △팀제 보완 및 개선 △전문가 제도의 전면쇄신 △민주적 방송법 개정과 노동악법 개악저지 △방송위원회 위원 및 KBS 이사 선임제도 개선 △2001년 이후 입사자 및 왜곡된 임금체계 개선 △특정 직급의 7직급 임기내 전환, 6·7직급 승진제도 전면개선 △조합비 20% 인하 △1년뒤 위원장 신임평가 실시 △지역국 현업인력 우선 충원 △프로그램 지역할당제 시행 등을 제시했다.
진 후보측은 이를 자연스럽게 기호2번 후보측에 대한 '네거티브' 전술로 연결지었다. 진 후보측은 기호2번 후보측이 내부개혁을 지지했던 현 KBS본부 집행부의 노선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고, 특히 선거운동 막판에 내부 게시판에 <인력운용 방안>이라는 출처불명의 사측 구조조정 문건을 폭로한 것이 사내의 고용 불안 정서를 자극하면서 결정적 승인이 됐다는 게 지배적 관측이다.
문제의 문건은 지난 2000년 박권상 사장 시절 미국의 컨설팅그룹 아더 앤더슨에 용역을 줘 작성했던 것으로, KBS가 단행해야 할 감원 및 지역국 통폐합 등 구조조정 내용 등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측은 이와 관련 "컨설팅 내용은 박 사장 시절 실현되기 힘들다는 판단으로 용도폐기된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막판 선거에 결정적 변수로 작용한 것이다.
***정연주 사장 취임후 최대위기**
이번 선거결과를 놓고 KBS 내부에서는 벌써부터 내년도 KBS 노사관계가 간단치 않을 것으로 보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한 관계자는 "진 후보측은 선거공약에서도 밝혔듯이 1년 뒤 신임평가를 받기로 했기 때문에 당장 내년 초부터 회사측의 기존 내부개혁 방향에 대해 전방위적인 공격에 나설 것이 예상된다"며 "그렇게 될 경우 안팎에서 강한 개혁을 요구받고 있는 KBS는 내부 혼란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특히 이번 선거결과는 그동안 몇몇 KBS 간부 등을 통해 표출됐던 '반정연주 정서'가 집단적으로 표출됐다는 점에서 정연주 사장측에게 커다란 타격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언론계에서는 이번 노조 선거 결과로 인해 지난해 4월 정연주 체제 출범후 최대 위기에 봉착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또다른 관계자는 "가장 염려스러운 것은 선거결과에서도 보여지듯 구성원들의 직종간, 지역간 정서 차이가 너무 확연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라며 "당장 KBS기자협회와 PD협회 소속 일부 구성원들이 이번 선거결과를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이며 반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노조 양분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KBS 내부분열을 우려했다.
KBS본부 정·부위원장 선거결과는 언론운동 진영 전반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전국언론노조의 경우 KBS본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해 만약 차기 KBS본부 집행부가 현 언론노조 집행부와 이견을 보이며 다른 노선을 표방할 경우 내년 2월 초에 있을 전국언론노조연맹·전국언론노조 위원장 선거는 물론 언론 현업단체들의 기존 언론개혁 노선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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