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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배, 왜 이렇게 정신적 고통을 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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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배, 왜 이렇게 정신적 고통을 주십니까"

[현장] 권영길 농성에 의원들 '곤혹', 국회 비정규직 "저희때문에..."

"......"

옥외 단식농성 5일째, 소회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은 한동안 벙거지 모자를 만지작거릴 뿐 말이 없다. 겨울 오후의 햇볕은 꽤 따가웠지만 얼굴이 벌겋게 익었다고 당원들이 쥐어준 모자를 쓸 수는 없는 노릇. 한참을 그렇게 허공을 응시하다 한 답은 "글쎄...무감각하다고나 할까"였다. 허탈하게 웃는 목소리는 쉬어있었다.

권 의원은 "정부 장-차관과 다르게 의원들은 (농성에) 굉장히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 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식농성을 계속할 수 밖에 없는 게 제일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농성 5일째, 나날이 난처해지는 의원들**

실제로 지난달 30일 허성관 행자부장관의 어이없는 '다이어트 농담'에 권 의원과 민노당이 격노하면서, 의원들의 처신은 더욱 난처해졌다. 국회 본청에 갈 때마다 입구에 앉아있는 권 의원과 마주쳐야 하는데, 모른 척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매번 인사하기도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특히 운동권 출신 초선의원들의 심적 부담감이 커 보였다. 한 운동권출신 열린우리당 초선의원은 "난 아예 마음 편하게 뒷문으로 다닌다. 의원회관까지 시간이 걸려도 그게 낫더라"고 말했다가, 동료의원으로부터 "나는 들어올 때 나갈 때 매번 (농성장에) 앉았다 일어났다 한다. 신경 좀 쓰여도 그렇게 하시라"는 따가운 '충고'를 듣기도 했다.

실제 권 의원을 찾아오는 의원들과 정부 각료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다. 이해찬 총리는 "여기 지날 때마다 보통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라고 겸연쩍어 했고, 천정배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는 매일같이 인사하며 "왜 이렇게 정신적 고통을 주십니까"라는 말을 던지고 갔다.

그런가 하면 "아침 문안인사 드립니다"라고 큰 소리로 인사를 하고 지나가 웃음을 자아내거나, 아예 같이 자리잡고 앉아 이런저런 소식을 전해주는 의원들도 있다.

열린우리당 임종인 의원은 2일 이라크 현지조사단 결과보고 브리핑후, 곧바로 농성장을 찾아 1시간가량 이라크 현지상황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갔고, 재야 출신의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은 "한나라당이 농성에 통 관심이 없다"며 즉석에서 "논평 좀 내라"고 대변인실에 전화를 거는 성의(?)를 보이기도 했다.

국방연구소 출신의 한나라당 송영선 의원도 "색깔은 다르지만 존경한다. 사석에선 오빠라고 부른다"고 말했고, 김덕규 국회 부의장은 "여의도 바람이 아주 무서운 바람"이라며 권영길 의원의 옷매무새를 매만져주기도 했다.

의원들 모두가 평소 '국회의 신사'로 불리며 여야 정파를 떠나 신망이 두터운 권 의원의 농성에 커다란 심적 부담감을 느끼는 기색이 역력했다.

***국회 비정규직-공무원노조, "저희들 때문에..."**

하지만 '국회 사람들' 가운데 권 의원 농성을 가장 안쓰러워 하는 이들은 국회내 비정규직 노동자와 공무원노조 관계자들로 보였다.

농성장을 찾아 "저희들 때문에..."라고 송구스런 표정을 짓던 공무원 노조 국회본부 관계자들은 오히려 권영길 의원으로부터 "기 죽으면 안돼!"라는 질책성 격려를 들어야 했다.

하루종일 권 의원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국회 경비요원들의 마음은 특히 편치 않아 보였다.

한 경비 간부는 취침을 위해 밤 12시부터 새벽 5시반까지 텐트를 치는 옆에 와서 "찬 데서 자다가 입이 돌아간 적이 있으니 춥지 않게 해야 한다"고 몸조심을 신신당부했다. 그는 하루 종일 찬 바닥위에 앉아 있는 권 의원이 안쓰러운듯 "좀 주물러 드리겠다"고 해 옆에서 만류하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농성 첫날 권 의원의 무릎을 겨우 가리던 작은 담요가 여러 사람이 함께 덮는 커다란 방한침낭으로 바뀐 사이, '민주주의를 지키겠습니다'라고 쓴 현수막 간이벽 뒤에는 이런저런 물품들이 가득했다.

의원들이 "농성자리 한번 정말 잘 잡았다"며 인사를 건네오지만, 어정쩡한 정부 태도를 볼 때 주말에도 국회 앞을 지켜야 될 게 확실한 권 의원에게는 씁쓸한 농담 이상이 될 수 없어 보였다.

"진보정당 팔자에 평생의 화두는 '소외'인 것 같다"는 한 민노당 관계자의 씁쓸한 읊조림처럼, 소수야당인 민노당이 원내에서 느끼는 소외감은 나날이 깊어가는 듯 하다. 하지만 한 겨울, 거대 국회의사당을 등지고 앉아 있는 권 의원의 존재는 국회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케 하는 압력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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