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이 7일 부동산 경기부양책을 명분으로 사실상의 '연기금 총동원령'을 내린 데 대해 야3당이 "정부가 국민의 곳간을 털려 하고 있다" "정부와 투기세력이 야합을 하려 하고 있다"고 신랄히 비판하고 나서, 과연 '한국형 뉴딜 정책'이 제대로 시행될 수 있을지 벌써부터 강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한나라 "수술 필요한데 회복주사만 놓고 있어" **
8일 상임운영위 회의에서 한나라당 이한구 정책위의장은 여권이 추진 중인 '뉴딜정책'에 대해 "국책사업이라면 미리 사업 내용 확정된 뒤 그 재원조달 고민해야 되는데 일을 거꾸로 하고 있다"며 "사업내용은 없고 돈쓰는 규모부터 정해 이 정도는 풀어야 경제가 살아난다는 식"이라고 비판했다.
이 의장은 "이미 국민연금 등 많은 연기금은 부실상태고 공기업도 빚투성이라서 매년 세금으로 출자를 하고 있다"며 "이런 연기금, 공기업 자금을 갖고 또 엉터리 사업하는 데 집어넣겠다는 것은 국민들의의 금고를 터는 행동이자 곳간을 터는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 의장은 또 "정권은 유한한 만큼 선량한 관리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야하는 데도 국민을 속이고 오만방자한 경제정책까지 도입하는 것은 정말 문제"라며 "이런 금고, 곳간 털기는 역사적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한나라당은 기금관리, 민자유치법 등 관련법의 심의와 연기금, 공기업 출자 관련 예산심의 철저히 강화해 '뉴딜정책' 추진을 총력 저지키로 했다.
전여옥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정부가 국민들의 알토란 같은 '최후의 비상금'을 경기부양판의 판돈으로 걸었다"며 "위험하기 그지없고 무책임하기 그지없다"고 비난했다. 그는 "지금은 근본적인 치료와 수술이 필요한 때로 급한 마음에 앞뒤 가리지 않고 최고급 영양제와 회복주사를 마구 놓는 식이어서는 안된다"며 "(정부의 뉴딜정책은) 혹독한 경기불황 때문에 열수 없는 국민들의 얄팍한 지갑을 세금고지서로 내밀어 아예 빈털터리로 만들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민노당 "한국판 뉴딜은 정부와 투기세력간 야합"**
민주노동당은 "정부의 한국형 뉴딜사업계획은 한마디로 정부와 투기세력간의 새로운 거래 행위일뿐"이라고 신랄히 비판했다.
민주노동당은 8일 논평을 통해 "뉴딜의 궁극적 목적은 이헌재 부총리가 스스럼없이 밝혔듯 경기 위축에 대비한 건설경기 활성화일 뿐"이라며 "이는 정부재정 투입과 함께 민간자본을 유인하여 새로운 투기처를 제공하고 국민의 복지와 직결된 연기금을 투기에 동원하려는 '새로운 거래(new deal)'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이선근 경제민주화운동본부장도 "한국형 뉴딜이 정부재정만 낭비하고 부동산 거품을 조성할뿐 아니라 그 혜택이 일부 대기업으로 귀결될 것"이라며 비판했다.
그는 "최근 감사원 결과에 따르면, SOC 민간투자사업은 그 동안 사업비 부풀리기, 운영수익보장, 담합에 의한 수의계약 형태의 사업자 선정 특혜의혹, 엉터리 사업계획(수요 과다 계상) 등으로 국민부담만 약 18조원(사업단계에서 10조원, 운영단계에서 8조원 추정)이 늘어났다"고 덧붙였다.
이 본부장은 "정부는 또 2006년부터 기업도시 건설 등을 통해 재벌의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는 대형 건설사업을 지속 추진할 예정"이라며 "이는 기업이 생산적으로 투자할 자금을 비생산적인 부동산 매입으로 돌리도록 각종 혜택을 부여함으로써 부동산 투기를 유발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현재 경제침체의 원인은 고용불안, 가계부채증가로 인한 신용불량자 증가와 소비 위축이기 때문에 경제 살리기의 중심은 가계부채 해소 등 서민경제 살리기에 있지 단기적인 투기부양에 있는 것이 아니"라며 "뉴딜형 종합투자계획을 중지하고 가계부채 해소 및 중소기업 살리기, 재벌의 비생산적 출자규제 등 실물경기 활성화에 전력하라"고 촉구했다.
***민주 "도로 건설로는 청년실업 해소 안돼"**
민주당도 이날 재경부, 정통부, 기획예산처 등 관련부처 관계자와 삼성경제연구소 김재윤 연구원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형 뉴딜정책,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경기부양책은 필요하지만 막대한 재원이 소요되는 만큼 세밀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토론회후 김효석 정책위의장은 기자회견을 갖고 "경기를 살리기 위해서는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통해 건설경기를 살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런 사업만으로는 가장 심각한 청년실업을 해소하고 국가경쟁력 효율성을 높이는데 미흡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위성 DMB, ITS (Inteligent Transport System)를 이용한 텔레메틱스, 성장동력사업에도 많은 일자리를 만들면서 미래의 먹고 살거리를 준비할 수 있고 이에 대한 투자가 훨씬 늘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의장은 "미국의 뉴딜정책은 8백50만명 실업자를 구제하고 경제활성화의 계기를 마련했지만 막대한 사업을 벌이는데 발생한 적자재정이 이후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해 다시 어려움에 빠졌다"며 "경제의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재정지출의 역할은 일시적으로 경제적 고통을 완화시켜주는 데는 효과가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판 뉴딜, 출발도 못하고 좌초될 수도**
이처럼 야3당이 강력반발하고 나섬에 따라 한국형 뉴딜을 실행하기 위해선 연내에 반드시 통과돼야 하는 핵심법률인 기금관리기본법과 민간투자법 등이 표류하면서 일각에서는 뉴딜 계획 자체가 무산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까지 낳고 있다.
기금관리기본법은 뉴딜적 투자의 핵심 재원인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기금들의 부동산, 주식투자 금지조항을 삭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민간투자법은 민간투자 대상을 학교, 공공청사, 임대주택 등으로 확대, 내수경기를 진작시키기 위한 제도로 범정부적으로 추진되는 뉴딜적 종합투자계획의 핵심 사항이지만 아직 심의조차 받지 못했다.
정부는 뉴딜과 관련, 4대 연금 가운데 이미 파산상태에 빠진 파산상태인 군인연금을 제외한 나머지 3대 연금이 6월 말 현재 1백36조원에 달하는 여유 재원을 활용해 각종 공공시설물 건설에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국민들의 노후 연금용으로 쌓아놓은 연기금 재원을 국책사업에 대거 동원할 경우 야당은 물론, 경실련등 시민단체들도 간과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어서 커다란 진통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아울러 국민연금 운용주체들도 7일 당-정-청 협의때 이같은 안이 발표되기 전까지 구체적 사전협의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크게 반발하는 분위기며, 연기금 관련노조들도 이를 묵과하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또한 보건복지부 등 연금 관련부처도 재경부와 건교부의 일방적 연기금 동원 움직임에 강력반발하는 등, 정부부처내 협조조차 미진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연기금 동원이 저지될 경우 정부의 경기부양책은 사실상 백지화되며, 이헌재 경제팀 경질 요구로 이어질 게 확실해 경기부양책이 도리어 경기혼란만 부채질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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