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원내 정당의 중앙당사 압수수색 한 건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보수 시민단체인 '라이트 코리아'가 지난 2일 부정경선 의혹과 관련한 고발장을 제출할 때만 해도 검찰은 "당 내부적인 문제는 당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게 좋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랬던 검찰이 갑자기 적극 개입 쪽으로 태도를 바꾼 의도가 아무래도 석연찮다.
우선, 검찰의 압수수색은 강기갑 비대위가 못 박은 비례대표 사퇴 거부자들의 사퇴 시한을 불과 1시간 여 앞두고 실시됐다. 당이 자체적으로 풀어갈 수 있는 계기를 틀어막았다는 점에서 검찰의 개입은 사태 해결에 도움을 주기보다 악화, 증폭시키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살만하다.
또한 검찰이 당원명부 확보에 주력한 배경에 모종의 노림수가 깔려있다는 의심도 떨치기 힘들다. 이번 수사가 부정선거 사건에 그치지 않고 전교조 소속 당원 등 통합진보당원 전체에 대한 공안 수사로 확대할 가능성을 열어놓았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 신당권파와 구당권파가 한목소리로 검찰 수사를 '진보정당 와해 책동'으로 규정하고 강기갑 비대위원장이 "당원명부는 당의 심장"이라며 압수수색에 저항한 까닭이다.
보수언론의 집요한 공세로 인해 이번 사건의 본질인 당 내부의 민주주의 절차 문제가 '빨갱이 파동'으로 변질되고 있는 터에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다는 점에서 이런 우려는 더욱 짙어진다.
실제로 일제히 <주사파 국회 입성>이란 타이틀을 달고 통합진보당에 퍼붓는 보수언론의 공세는 '구당권파=주사파=체제부정 세력=적출 대상'이라는 논리 흐름을 가파르게 전개하고 있다. 지난해 8월 국정원이 터트린 '왕재산 사건'의 수사기록까지 들먹인 이들 신문에 따르면 구 당권파는 북한의 꼭두각시나 다름없고, 북한의 계획된 시나리오에 의해 진보통합과 야권연대가 이뤄진 듯 묘사된다.
하지만 보수 언론의 논리는 모두 추론과 비약에 불과하다. 이들이 구 당권파를 주사파로 규정한 근거는 그들이 NL(민족해방)계 운동권 출신이라는 과거 행적에 머문다. 구 당권파를 체제 부정세력이라고 단정할만한 근거도 당연히 없다. 이석기 당선자가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이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과의 통합 논의를 가장 먼저 제기했다고 한 발언은 마치 그가 북한 지령의 충실한 이행자 노릇을 한 것처럼 부풀려졌다. 또한 고작 5명이 체제전복을 꾀했다는 내용의 '왕재산 사건'은 초기부터 무리한 수사 논란에 휘말렸으며, 지난 2월엔 법원이 '왕재산'이라는 반국가단체를 구성했다는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한 사건이다.
▲ 통합진보당 이석기 당선자 ⓒ연합뉴스 |
그러나 구 당권파의 패악과 보수언론의 색깔 공세, 검찰의 무리한 개입은 시시비비를 구분해 가려야 한다.
이번 사태를 당내 민주주의의 복원이라는 문제의 본질로 원위치 시키고 원내 제3당으로서의 자정 능력을 증명하는 시작은 구 당권파의 각성이다. 이석기, 김재연 당선자 등은 당장이라도 사퇴를 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론 통합진보당 사태를 매카시즘으로 증폭시키고 있는 보수 언론의 의도에 불온한 정치기획이 깔려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선거를 앞두고 검찰이 이를 공안 사건으로 몰아가려는 건 아닌지도 면밀히 지켜봐야 한다.
제정신 못 차리는 구당권파가 아무리 밉다고 대명천지에 일사천리로 자행되고 있는 '빨갱이 사냥'까지 박수치고 바라볼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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