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허성관 행자부 장관의 '경찰대 부설 공안문제연구소의 감정업무 중단' 발언에 이어 25일 최기문 경찰청장이 기자간담회를 통해 "현재 시행령 변경 작업중이며 이르면 내년 초부터 감정업무가 중단될 것"이라고 밝힌 가운데, 26일 국회 행자위 소속 여야의원들이 전병룡 공안문제연구소장 등 증인 7명을 둘러싸고 설전을 벌였다.
***우리당 "현재 '반정부'적인 한나라당도 사찰할건가"**
열린우리당 최규식 의원은 "2003년 참여정부 초기, 경찰이 대통령의 인사하마평에 오른 서동만 상지대교수의 논문에 대한 사상검증을 공안문제연구소에 의뢰했다"며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추궁했다.
같은 당 강창일 의원도 "제가 4.3항쟁 연구소를 10여년 했는데, 이 중 강만길 교수의 역사저서등도 다 용공, 반정부 판정을 받았다"며 "용공좌익 판정 결과 중 수사에 활용되는 것이 5%에 불과하다는 것이 바로 용공이 남발됐다는 증거다. 지금 한나라당 의원들도 반정부적인데 지금 이분들도 사찰하려고 하냐."라고 따져물었다.
같은 당 노현송 의원은 "자꾸 '우리는 빨갱이 낙인 찍는 게 아니라, 문건 성향만 감정해줄 뿐 이적성 여부는 사법부가 판단한다'고 하는데 이 얼마나 무책임한 말이냐"며 "이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판정으로 인해 고통받는지에 대한 인식이 가볍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민노당 이영순 의원은 "연구소가 민주노동당의 당헌당규에 대해 10회도 넘게 감정했는데, 해마다 평가가 다르다"며 "이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으며 감정 연구원의 자격은 또 누가 평가할 수 있냐"고 지적했다.
***공안문제연구소 "공신력 훼손으로 감정업무 대신할 민간기구 필요"**
전병룡 공안문제연구소장은 "과거 판정표시에 쓰였던 '반정부' 표현은 부적절해 금년 6월 1일부터 없어졌으며 그동안 감정한 18만건도 사회과학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이견이 있을 수 있다"고 의원들의 '문제제기'를 인정하면서도 "자꾸 밀실검증이라고 하는데 우리도 법원의 참고자료로서 신뢰를 얻어야 하고 이념은 복잡한 문제이기때문에 석박사급 전문가가 신중을 기해 감정한다"고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전 소장은 의원들의 질타에 대해 "연구소는 의뢰에 대한 거부권한이 없어 평가를 다해줘야 한다"면서도 기무사가 의뢰한 조배숙 의원의 '성매매 입법발의안'에 대한 감정의뢰에 관해서는 "있을 수도 없는 의뢰라고 보고, 그런 것은 돌려보내기도 한다"고 말하는 등 상반된 진술을 했다.
전 소장은 "언론보도 등으로 공신력이 결정적으로 훼손돼 감정업무를 대신할 민간기구가 필요하다"며 "공안문제연구소는 감정업무외에도 대테러행위 감시, 통일시대를 대비한 사상적 혼란방지 프로그램 개발, 사이버 공간의 북한의 선전선동 파악 등 할 일이 많다. 만약 연구소를 없애려면 앞으로 보안수사요원을 6개월동안 집중적인 교육을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나라 "남북한은 현재 이념투쟁중인데, 변하긴 뭐가 변했나"**
한나라당 유기준 의원은 "용공성에 관한 전문성 지닌 연구소가 없어진다면 검경찰이 어디에 의뢰를 해야 하냐"고 말하고 이에 한나라당 이인기 의원도 "대학교수등이 자문해줄 수 있다고 하는데 지금 20대의 캠퍼스 문화에서 어느 교수가 소신껏 찬양고무판정을 내리겠냐"고 '공안문제연구소의 감정업무 유지'를 주장했다.
이 의원은 "저는 시대가 근본적으로 안 변화했다고 본다. 적화통일을 명시한 북한의 노동당 규약이 버젓이 있는데 뭐가 변했냐"며 "장관께서 성급하게 폐지하겠다고 했지만, 이는 북한의 대남연구소 폐지와 맞춰서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김충환 의원은 "지금 남북한은 이념투쟁중인데, 친북성향 사람들의 활동을 판단할 검증기관이 필요하다"며 "학자든 시민단체든 경찰의 보안기능을 약화시키는 세력이 있다고 보지 않나. 근데 연구소가 폐지된다면 대체기구가 있냐. 또 폐지여론에 대한 느낌을 말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전 소장은 "대체기구는 현재 없다"며 "세계 어떤 나라의 보안문서가 시중에 통째로 돌아다니냐. 현재 이념적 방어체계가 무너지고 있는데 연구소가 가장 약한 고리라서 공격당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공안문제연구소는 사상사찰과 통제의 건재를 보여주는 것"**
한상회 건국대 법대 교수는 감정업무 폐지 후 방향에 대해 "연구소의 감정서는 이미 수사전 단계부터 빨갱이로 낙인찍고 재판판결까지 연결되는데 중요판단자료가 된다"며 "보안 관련 판단은 법원이나 검사가 해야지 일정 기관이 그것도 숨어서 해줄 필요 없으며 대체기구도 무의미하다"고 주장했다.
이호중 한국외국어대 법대교수는 "이념이 무너지고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국민에게 같은 이념을 심어줌으로써 안보를 지키겠다는 것은 전체주의적 발상"이라며 "결국 글작성자를 분류하고 통제하는 정치사찰을 하겠다는 것인데, 결국 공안문제연구소의 존재 자체가 사상에 대한 사찰과 통제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보법이 폐지되면 공안문제연구소는 당연히 그와 함께 기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 대한 감정작업으로 법원의 판단에 중대한 영향을 미쳐온 공안문제연구소는 1988년에 설립됐다.
공안문제연구소의 사무는 대통령령으로 '경찰청과 그 소속기관 등 직제' 제24조 3항을 통해 ▲공산주의를 비롯한 좌익사상에 대한 연구 및 대응이론 개발 ▲국보법 위반사건에 관한 증거물의 감정 ▲기타 국가안전보장과 관련된 정치이념 및 그 대책연구에 관한 사항으로 규정되고 있으며, 경찰은 현재 이를 변경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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