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박승 총재의 '가벼운 언사'가 마침내 국정감사 도마 위에 올라 여야 구분없이 의원들의 융단폭격을 받았다. 한은 54년 역사상 초유의 일이다.
***우리당, "차라리 총재 '메세지 관리팀' 만들라" **
열린우리당 우제창 의원은 13일 한국은행 국정감사에서 "시장에 대한 중앙은행 총재의 카리스마는 신중함과 침묵에서 나온다"며 박 총재에게 "세심하고 신중한 처신"을 주문했다. 우 의원은 박 총재가 서울대 경제학과 21년 선배임을 의식한 탓인지 "감히 후배가 대선배께 충고 내지는 고언을 드려도 될지 모르겠다"며 주저하는듯 하다가, "총재님, 침묵은 금입니다"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박 총재는 콜금리 인하를 둘러싸고 이헌재 부총리와 갈등설을 낳은 발언에 대해 "기자들과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부담없이 한 얘기가 기사화됐다"고 해명했지만, 우 의원은 "기자들에게 말한 것은 어떤 자리에서든 간접적으로 시장에 말한 것"고 잘라 말했다.
같은 당 박영선 의원은 한 발 더 나아가 "중앙은행 총재의 메세지를 관리할 수 있는 태스크포스팀을 마련하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노골적 비아냥이었다.
이에 대해 박 총재는 "참고하겠다.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등과 비교해 말이 많다 해서 요새는 일체 언론에 노출되지 않으려 한다"고 답하고 넘어가려 했으나, 박 의원은 "일체 노출되지 않는 것도 문제가 있다. 필요할 때는 나와서 발언하는 타이밍 관리가 중요하다"며 태스크포스팀 마련을 거듭 촉구했다.
이에 박 총재는 "조심하려 하지만 최근에 기자들이 기사거리가 없다고 아우성을 치는 바람에 말을 해야할 지 안해야할 지 고민이다"고 계속해 해명을 거듭하자, 이를 지켜보던 김무성 재경위원장은 "총재님은 기자들 말을 너무 많이 들으면 안된다"고 '쓴소리'를 했다.
***한나라당, "박총재, 올 한해 경기전망 6번 바꿔" **
열린우리당이 주로 이헌재 재경부장관과의 '말싸움'을 문제삼은 데 반해, 야당 의원들은 그동안 냉탕과 온탕을 수없이 넘나든 '고무줄 경기전망'과 '정치성 발언'을 문제삼았다.
한나라당 임태희 의원은 "'미스터 낙관'으로 불리는 한은 총재의 입으로 하는 경기전망은 낙관론과 비관론 사이에 걸쳐 있는 '고무줄'"이라고 비판한 뒤, 2004년 한해 박 총재의 발언 변화를 표로 정리해 보도자료로 배포하며 박 총재의 '말 바꾸기'를 질타했다.
임 의원 자료에 따르면 박 총재는 2004년 한 해 동안 총 6회, 낙관에서 비관으로 또 비관에서 낙관으로 경기 전망을 바꿔왔다.
2003년말에는 "연간성장률을 5.2%로 전망하고 민간소비도 살아날 것"으로 올해 경기를 낙관하다, 올 3월에는 "경제성장률 4%대로 떨어질 수 있다"며 비관론으로 급선회했다. 그러다 지난 4월에는 다시 "최대 6% 성장이 가능하다"고 낙관론으로 돌아섰다가, 6월에는 "내수부진으로 체감 경기가 호전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대내외 불확실성 잠재한다"며 비관론으로 돌아섰다. 이러다 7월 중순에는 "우리 경제가 일본의 90년대 이후 장기침체와 닮아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에 임 의원은 "한은 총재가 성장률에 대해 말을 많이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비판하고, "한은 총재의 잦은 말 바꾸기는 중앙은행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지고 이런 상황에서는 통화정책 효과도 뚝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노동당 "사회문제 개입도 자제하라"**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중앙은행 총재는 경기예측 발언에도 신중해야 하지만 사회 문제 개입도 자제해야 한다"며 '노조 파업이 경제 성장률에 영향을 미친다'는 박 총재의 예전 발언을 문제삼기도 했다. 심 의원은 "파업과 성장률은 상관관계를 검증하기 어려운데 이런 발언을 중앙은행 총재가 하는 것은 스스로 중앙은행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박승 총재는 이날 지적받은 사항외에도 지난해 아파트투기 광풍이 전국을 휘몰아칠 때에는 "내가 사는 은평구 집값은 10년동안 변함이 없다"며 아파트투기를 강남만의 문제인양 축소했다가 호된 여론의 비판을 받는가 하면, 이라크 파병 논란이 한창일 때는 "파병에 찬성한다"는 정치성 발언을 해 여러 차례 비판의 도마위에 오른 바 있다.
국정감사장의 한은 사람들은 국정감사 포커스가 예기치 못하게 박총재의 '가벼운 언사'로 모아지자, 더없이 곤혹스러워 하는 표정이었다. 한은 54년 역사상 초유의 일이기 때문이다. 이날 국감은 한은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쉽게 잊혀지지 않을 성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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