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은 삶의 기술이다.
동아시아의 지나간 어두운 시절, 한 시인은 ‘밤’을 ‘아시아의 미학’이라 불렀다.
어쩌면 선(禪)의 요체가 밤에, 그 처절한 절망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매 선객(禪客, 참선하는 나그네)은 피는 꽃이 아니라 지는 꽃을 더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
저 위대한 선객이자 동시에 위대한, 위대한 전투적 애국자인 서산(西山) 큰 스님의 그 서러운 원력(願力, 비는 마음의 힘)에 가득 찬 게송이 다음과 같은 두 구절로 시작됨을 꼬옥 기억해두자.
‘꽃이 지는데 절집은 오래 닫혀있어
봄을 찾는 나그네 돌아갈 길 모른다’
(花落僧長閉 春尋客不歸)
아!
꽃은 지는데,
내 마음 꽃처럼 떨어져 절망의 그늘에 파묻히는데 마지막 구원의 길인 절집마저 문을 닫았다. 그러매 봄을 찾아 방황하는 나그네 돌아가 안식할 마지막 ‘출구없음(No Exit)'!
그러나 젊은 벗들이여!
비록 돌아갈 길 없다해도 절망을 미학처럼 익숙하게 대면하자! 그리고 스스로 언젠가는 꽃처럼 덧없이 덧없이 떨어져 사라질 것 또한 마음에 깊이깊이 새겨 안아두자!
왜나하면 마지막 출구인 무문관(無門關), 그 굴 속에 들어가 세상과의 인연을 끊어버린 선객의 무심한 옷자락에마저도 구름이, 저 허무한 꽃구름이 스며드는 걸 막을 길이 없기에.
서산 스님의 그 다음 구절이 ‘雲濕坐禪衣’로 끝남을 텅 빈 마음으로 쓸쓸하게 바라보라.
그러니 분명
절망은 삶의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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