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에서는 지난 4.15총선 이후 새 국회가 구성되면서 사회정치 전반에 걸쳐 개혁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이들 개혁과제 중에 해외 교포들 특히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동참해온 분들의 지대한 관심은 국가보안법의 개폐문제이다. 이 법에 의해 유럽에서만 수 십 명의 민주통일인사들이 30년 내지 40년 긴 세월 자유롭게 고향에 가도 오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국에서 보안법의 개폐논의가 주로 법 이론과 인권 차원, 남북관계 문제와 관련된 정치상황논리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보안법의 개정 내지 대체입법보다 보안법을 완전 폐지해야 된다는 쪽으로 대중들의 동감이 확대되고 있어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파쇼통치는 파쇼악법이라는 법적인 수단 뿐 아니라 여기에 강력한 보안기관과 선전수단을 배합하여 국민을 파쇼통치에 자발적으로 순응하도록 사회문화 인간학적으로 심층의식을 조작하여 불구화시키는 것이다. 때문에 파쇼악법인 국가보안법도 사회문화 인간학적으로 사회역사발전에 얼마나 큰 악폐를 끼쳐 왔는가하는 각도에서 고찰해 보는 것도 의의가 있다고 생각된다.
국가보안법은 파시스트통치법의 일종에 속한다. 독일의 히틀러, 이태리의 무솔리니, 스페인의 프랑코, 일본의 도죠 등 파시스트독재정권은 한 독재자의 정치이념과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자국민과 식민지 민중을 한 길로 폭압적으로 몰아간다. 이 폭압적인 정치적 수단과 방법을 합리화하기 위한 법적 장치가 파쇼악법과 통치원리인 것이다. 파쇼악법들로서는 나치정권 때의 “뉴른베르그 법”, 국가보안법의 모법인 일제 때의 “치안유지법”, 이태리 파시즘의 통치원리인 “파시즘의 원리”(Dottrina del Fascismo), 스페인 프랑코 파쇼통치의 원리가 된 “민족조합주의 공격단”(Junta de Ofensiva Nacional Sindicalista, 약칭 J.O.N.S.)의 “16조 프로그람”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들 파쇼통치이념의 공통적인 특징은 “사회다윈주의“에 입각하여 사회적으로 가장 우수한 독재자가 한 핏줄로 된 민족국가를 형성하여 통치해야 되며, 민족국가는 개인과 어떤 사회단체에 비해 절대우위에 있고, 개인이익과 자유주의에 기초한 자본주의는 배척하여야 하며, 계급투쟁과 정파간의 투쟁을 일삼는 사회민주주의자와 사회주의자를 탄압하고 정당들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파쇼통치이념들은 비체계성과 비논리 때문에 이론과 실천, 이론과 현실에서 상치되어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예로 자본주의를 반대하면서 자본가들과 같이 경제를 운영하며 전쟁을 일으키거나, 계급타파와 민족성원의 복지를 주장하면서 이것을 주된 정치적 목표로 삼는 사회주의자들을 탄압한 것이다.
파쇼통치이념의 비체계성과 비논리는 설득력이 있을 수 없으며, 여기에 기초한 통치법과 공안기관의 물리적인 탄압만으로는 민족국가의 전국민을 하나의 ”협동체"로 만든다는 파쇼통치자들의 좌우명 실현은 불가능하게 된다. 때문에 파쇼통치자들은 인간의 문화정서를 정치화하여 사회 전반에 살육과 가장 고통스러운 인간조건의 상시적인 공포분위기에서 인간을 이성이 마비된 정신적인 노예로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인간은 비밀경찰인 게슈타포의 그림자만 봐도 놀라게 되고 사람들은 통치자에게 맹종하는 로봇으로 되고 만다. 파쇼통치자들이 인류역사에서 가장 무자비하게 그리고 공공연하게 유대인과 사회주의자를 대량 학살한 것은 사회문화인간학적 악랄한 정치행위였다고 할 수 있다.
국가보안법의 사회문화인간학적 부정적 작용은 유럽 파시스트악법보다 훨씬 내면적-심층적이며 사회전반을 을씨년한 긴 그림자로 휘감고 있다. 그 근거는 반세기 이상 세계의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없이 장기간 무소불위의 횡포성을 발휘했으며, 핏줄이 같은 자기 민족의 일부를 주적으로 하는 비정상성은 그만큼 더 큰 잔인성을 요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국가보안법이 자행한 가장 큰 사회역사적 재앙은 큰사람(大人)이 자라지 못하고 소인배(小人輩)만 무성하게 만드는 사회문화적 풍토를 만들어 낸 것이다.
소인배란 대충 무엇이겠는가.
소인배는 권위의식이 강해 자기보다 권력이나 재산이 많은 사람에게는 굴종하며 그 대신 자기보다 못한 대상에겐 무자비하게 굴종을 강요한다. 이런 굴종의식은 나라들 사이의 관계에서도 똑같이 작용한다. 현실에서 봐도 일본에 아부하던 사람들이 더 강한 미국이 나타나자 미국 똥이 우리나라 똥보다 낫다 한다. 한 나라에서 가장 큰 권위를 자랑하는 대통령을 “골목의 깡패”, “여관집의 부뚜막 강아지”라 해도 별로 거슬려 들리지 않는 상황이다. 이러한 풍토에선 어딜 가나 거목은 찾기 힘들고 잡목만 무성하게 마련이다. 심각한 현상은 세계 어느 곳에서보다 한국에서 하나님이나 부처님마저 소인배로 추락하고 만 것이다. 방방곡곡에 기도와 염불 잘하고 돈 잘 내면 천당이나 극락 갈 것이라고 야단인데 하나님이나 부처님이 그렇게 소심한 존재일까.
소인배들은 또한 “권위”있는 사람이 무어라 하면 쉽게 쏠린다. 맑스 책 읽지 말라 하면 막스 베버 책까지 멀리한다. 주체사상을 아는 사람을 불온시 하면 주체사상에 관한 책만 가지고 다녀도 친북 빨갱이요 위험인물로 취급해 버린다. 결과 어떤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가. 언젠가 대한항공의 여객기가 소련의 서부지역 어름이 두텁게 깔린 공군 비행장에 비상 착륙 당한 사건이 있었다. 그때 동승했던 외국 승객들은 살았다는 안도감으로 춤을 추며 흥겨워 하는데 “레드 컴플렉스”에 걸린 우리 나라 승객들은 소련 빨갱이들에게 혼날까봐 사색이 되어 한쪽에 웅크리고 앉아 여행사진들을 찢어 처리하는 데 골몰했다 한다. 흑백논리에 사로잡힌 소인배들은 살쾡이가 “너희들은 들쥐새끼”하면 그런가 하고 생각하고 만다.
큰 나라들에 둘러 쌓인 우리 나라는 무엇보다 “큰사람”이 많은 부자나라로 되어야만 어느 나라도 함부로 범접하지 못할 것이며 민족적 자주와 번영이 보장될 것이다.
“큰사람”이란 무엇이겠는가.
장자(莊子)식으로는 경계가 없는 무한한 경지(無竟)에서 노닐 줄 아는 대붕(大鵬)이나, 우리의 전통적인 시각으로는 장백산과 시베리아를 거침없이 넘나드는 백두산 호랑이가 인간세계에서는 큰사람이라 비유할 수 있겠다. 큰사람은 역사적 사회적 제한성을 면치 못한 사상과 이념에 얽매이지 않으며, 크고 힘센 나라라 해서 그 품에 안겨 안주하거나 작은 나라라 해서 무시하지 않고 구천(九天)에서 조감할 줄 아는 것이다.
정치, 경제, 군사, 문화예술, 체육 등 각 분야의 남북 인사들이 분야별로 자리를 같이하고 모든 문제를 솔직하게 내 놓고 민족적인 차원에서 협력해서 풀어 나갈 포부와 아량, 높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큰사람이 아니겠는가. “큰사람”들의 세계에 무슨 간첩이 필요하며 정부를 전복하려는 망나니가 생겨날 수 없는 일이다.
우리 민족은 고구려인의 대륙적인 기상을 가졌으며, 어느 민족 못지 않은 슬기와 열정을 가지고 있다. 우리 민족에겐 많은 “큰사람”을 배출할 수 있는 풍부한 잠재력이 내재되어 있음이 틀림없다. 이 내재적인 잠재력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기본장애요인부터 제거하는 것이 당연지사다. 이 기본장애요인은 국가보안법이라는 실체이며, 또한 이 실체의 독성은 사회전반에 확산되어 인간의 심층의식을 옥죄이는 잘 보이지 안는 그림자로 작용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을 철폐한다는 것은 실체를 없앤다는 데 의의가 있다. 그러나 폐지한 뒤 형법을 보완한다거나 대체입법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기회주의자나 소견이 좁은 소인배들의 발생에 불과하다. 왜 그런가. 사람들의 심층 속에 깊이 각인 된 보안법의 그림자는 실체의 폐지와 더불어 쉽게 살아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런데 대체입법을 만든다는 것은 그림자에게 실체를 대체하는 것으로 되어 그림자는 사라지기는커녕 더욱 힘을 얻게 될 것이 뻔하다.
“큰사람”이 번성할 새 우리 나라는 국가보안법의 완전 폐지가 전제로 될 것이다.
***필자 약력**
1936년 화순 출생. 연세대 철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정치철학 박사학위, 현 독한문화원(DKKI) 원장
70년 프랑크푸르트 한인회 회장, 73년 최종길 교수 사건 연루. 그 후 민주화, 통일 운동 참여, 2003년 9월 ‘해외민주화인사 모국방문단’의 일원으로 모국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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