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와 김덕룡 원내대표가 15일 회담을 갖고 국가보안법, 공정거래법 개정안 등 여야가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현안에 대한 논의를 벌였지만, 김 대표는 여당의 숫적 우위에 따른 법안 밀어붙이기를, 천 대표는 야당의 대안 없는 반대를 서로 강하게 비판하며 공개된 자리에서 이례적으로 치열한 설전을 벌였다.
최근 경색된 정국의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무색하게 두 여야대표와 수석부대표들은 시종일관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회담을 진행했고, 결국 이날 회담에선 민생문제를 최우선으로 처리한다는 원칙만을 확인했고 국보법 등 쟁점 현안에 대해선 서로의 이견만 확인했다.
***김 "국회분위기 전운 감돌아" vs 천 "국회에서 대화·토론하자"**
회담장에 천 대표보다 다소 늦게 도착한 김 대표가 사진을 위한 포즈를 취해달라는 기자들의 요청에 "열린우리당이 몸짓이 커지니 힘 한번 써보겠다는 충동을 느끼는 것 같아서 옆에 있으면 얻어 맞을까봐 겁난다"라고 뼈있는 농담을 건냈다.
이에 천 대표는 "칭찬과 대화는 많을수록 좋다"며 "정치라는 것이 대립하는 것처럼 보여도 벼랑 끝에서 타협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피해갔다.
그러나 김 대표는 "국회분위기는 여기저기 전운이 감돈다"며 작심한 듯 여당을 비판했다. 그는 "의회주의는 대화와 타협이다. 특히나 여당은 국가경영 관리자 입장에서 달라야 한다. 야당 때 주장했던 것도 달라져야 한다. 열린우리당은 집권당으로서 국가 경영을 관리하는 입장에서 만사를 튼튼하게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어 국보법과 관련해 "국보법이 민주주의 체제를 지켜온 법인데, 이런 것 때문에 폐지되면 불안하다"며 "국가존망과 관련된 것은 여야 합의로 해야지, 일방적인 숫자로 밀어붙여선 안된다"고 여당의 국보법 폐지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
이에 천 대표는 "구제적 법안은 상임위나 여야간에 당연히 이견이 있다. 이념도 다른데, 그래서 여야가 있는 것 아니냐"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현안은 국회에서 대화와 토론을 거쳐 해결해야 한다. 이런 원칙만 견지해도 국민에게 안정을 줄 수 있다"고 야당의 장외투쟁 방식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천 "대안있는 비판 해달라" vs 김 "시한 정하고 밀어붙여선 안돼"**
김 대표의 공세가 계속되자 천 대표도 반격에 나섰다.
천 대표는 "야당도 대안 있는 비판을 해주길 바란다"며 "친일법 개정안은 야당도 개정안을 내줬다. 그러면 국회에서 충분히 토론하고 심사가 가능하다. 우리는 23일 기존 법이 발효되기 전에 (개정안이) 통과돼야 한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지만, 야당이 대안을 마련해서 우리 방침을 얼마든지 늦출 수 있었다"고 말했다.
천 대표는 "대안 없이 단순히 반대하고 시간 끌기를 하는 것은 여당 입장에서 상당 부분 책임 있게 끌고 갈 수밖에 없다"고 경고성 발언을 했다.
이에 김 대표는 "시간을 정해놓고 밀어붙이기보다 충분히 토론하고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며 "통과시한을 못 박는 것은 앞으로 없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이 호루라기 불자 따라가고 있다" vs 천 "대안없이 무조건 반대하고 있다"**
김 대표는 정무위에서 여야가 대치중인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해 여당의 태도를 비판했다.
출자총액제도 유지, 계좌추적권 도입 등을 골자로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국회에 제출된 지 80여일이 지났지만 야당이 법 개정에 반대하며 버티자 여당은 이날 오후 정무위 전체회의에 개정안의 상정을 강행한다는 방침이다.
김 대표는 "열린우리당은 노 대통령이 호루라기를 불면 따라가는 꼴"이라고 노 대통령이 지난 5일 MBC <시사매거진2580>에 출연해 출차총액제한제도의 유지를 주장하자 열린우리당내 이견이 좁혀지는 모습을 비꼬았고, 천 대표는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의 확고한 당론이었다"라고 반박하는 등 시종 냉랭한 분위기 속에 격론을 벌였다.
김 대표는 "공정거래법이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일방적으로 소위를 통과시켜 오늘 전체회의에 올린다는 것이냐"며 "더구나 대표회담이 있는 것을 알고도 위원장이 단독으로 회의를 소집한 것은 너무하지 않은가"라고 비판했다.
이에 천 대표는 "바로 이런 점이 대안 없이 무조건 반대한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라고 반박하고 "공정거래법은 9월이 넘어가면 10월 국감이 있어 10월 하순이나 11월에 처리될 수밖에 없는데 미리 합리적인 개정안을 내면 논의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응수했다.
김 대표는 "정부안에 대한 비판도 넓은 의미의 대안"이라며 "개정안을 내야 대안이라는 고정적인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천 대표는 "지금 공정거래법에도 출자총액제도 완화-예외 규정 등이 다 있다. 우리는 당정협의를 거치며 당에서 상당한 내부토론을 했고, 국회나 전 사회가 엄청나게 토론을 했다. 정무위 소위도 몇 차례 열었다"고 야당의 주장을 반박했다.
천 대표는 "폐지에 가까운 개정이나 완전폐지가 야당의 대안이라고 생각하는데, 충분한 토론을 거쳤으면 합의를 시도하고 안되면 국회법상 표결하는 것"이라며 "그런데 단순히 야당이 지연시키려 하고 이때만 모면해도 된다는 느낌을 안주면 충분한 토론이 가능하다"고 비판했다.
이에 김 대표는 "오늘 회담이 있고 주요 의제가 공정거래법이라는 것도 다 알려졌는데, 어제 소위에서 열린우리당이 일방적으로 개정안을 통과시켰다"며 "열린우리당이 김희선(정무위원장) 당이냐. 특정 위원장 당도 아니지 않나"고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설전끝에 비공개로 계속된 회담에서도 여야 대표는 국보법 TV토론 개최 문제 등을 논의했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합의를 보지 못해 정무위 차원에서 처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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