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충분히 예견된 일이지만 일본의 대국답지 못한 움직임이 또 다시 벌어지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살아있는 구시대의 망령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가 도지사로 재직중인 도쿄도 교육위원회가 2005년 봄에 개교하는 도립 중·고 일관학교에서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새역모)’ 이 출판한 중학교 역사교과서를 사용하도록 결정한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과 중국 양국에서 맹렬한 비난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필자는 물론 이와 같은 양국의 반응에 대해 전적으로 공감하며 지지하는 바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이번을 계기로 한국의 대일관련 보도자세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자고 제언하고 싶다. 왜곡된 역사교과서에 대한 한국측 보도에서 필자는 일본관련 보도에 관한 한 어김없이 나타나는 한국 언론매체 특유의 획일적 사고와 이를 통한 우리 국민들의 우민화 조장을 또다시 느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후소샤(扶桑社) 역사교과서와 관련한 한국과 중국 양국에서의 보도태도를 살펴본다.
먼저 새역모 교과서에 대한 중국의 대표적 언론기관의 보도. 관영 신화통신은 이 교과서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며 “일본 각계의 민간단체와 2005년 봄부터 사용하게 될 해당학교의 학생 및 학부모가 이에 대해 격렬히 항의하고 있다”고 일본 사회내의 비난동향에 대해서도 비교적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도 “황국사관을 선전ㆍ찬양(宣揚)하며 전쟁만행을 은폐ㆍ왜곡하고 있는 문제의 새역모 교과서에 대해 일본의 26개 사회단체에서도 격렬히 항의하고 있다”고 언급, 터무니없는 역사날조에 대한 일본내의 반발과 분노에 대해 적지 않은 비중으로 보도하고 있다.
이와 같이 중국의 언론 매체는 비단 “일본 우익 정치인들과 역사학자들의 음모(<차이나 데일리>紙 표현)”에 대한 보도 외에 이들 집단의 망행(亡行)에 대한 일본사회의 반응에 대해서도 비교적 균형있게 보도, 망령집단에 의한 작태가 결코 일본인 모두의 열렬한 지지 속에 이뤄지는 행위가 아님을 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중국인들은 일본 정계와 일반 일본 국민들 사이의 시각차에 대해 치우치지 않은 태도를 견지하며 그들 나름대로의 다양한 대처방법을 강구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언론보도는 과연 어떤가. 한국의 일간지들은 대체적으로 “이번 도쿄도 교육위원회 결정은 국수주의 경향이 최근 몇 년 사이에 급격히 두드러지고 있는 일본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며 “일본의 각 학교들이 이 교과서를 채택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전하고 있다. 또 한 신문의 사설에서는 “왜곡된 교과서가 채택되었으니 이는 일본의 수준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논조는 여타 신문매체에서 거의 대동소이하다.
이에 반해 새역모 교과서에 대한 일본 국내의 반대동향에 대한 보도는 거의 다루지 않거나 혹은 말미에 잠깐 언급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일본열도 전체가 또다시 하나가 되어 군국주의, 우경화를 향해 치닫는 듯한 인식을 지니기 쉽게 된다.
여기서 한번 2001년 당시의 새역모 상황을 떠올려 보자. 그때도 한국 언론은 마치 일본의 각급 학교들이 잇달아 새역모 교과서를 채택할 듯 호들갑을 떨며 망령집단의 움직임에 대해서만 앞다퉈 보도하였으나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도쿄도의 공립양호학교 몇 곳만 제외하고는 이 교과서는 일본 전국의 542개 교육구에서 철저히 외면된 채 채택율이 0,03% 정도에 불과하지 않았던가.
일본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중국의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있는 중국인 교수는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고전을 인용하며 “내정 간섭이라 둘러댈 수 있는 위와 같은 사안에 대해서는 외부로부터의 압력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일본인들과 다각적으로 협조, 궁극적으로는 일본인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한심한 영도자들을 계도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일본의 침묵하는 다수, 건전한 양식들의 존재와 활동에 대해서도 잘 알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사회주의’ 국가 중국의 비교적 균형잡힌 보도의 이면에는 바로 이와 같은 지식인들의 충고도 적지 않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중국도 이러하거늘 다원화된 자유민주주의를 자처하는 우리 한국의 보도자세는 정말 유감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의 언론매체는 과연 언제까지 한 면만을 가지고 전체인 양 꾸미며 자신들의 결론으로 국민을 유도하려 하는가? 다양한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독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는 가운데 자신만의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언론의 참된 역할이 아니었던가?
일본에도 건전한 양식은 있다. 대다수를 점하고 있는 이들 일본의 양식은 침묵 속에 사태를 우려하며 예의주시하고 있는 중이다. 원래가 닫힌 사회인 사회주의 국가 중국도 이 점을 잘 고려하고 있질 않은가. 하물며 다양한 이견과 견해가 공존하는 열린 사회이어야 할 한국사회가 중국보다도 더욱 닫힌 보도 속에 갇혀 있음은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 한다는 말인가.
“우리나라의 보도를 보면 일본에 관한 한 마치 대통령부터 온 국민 한명 한명에 이르기까지 한가지 획일적 시각만을 갖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가” (일본에서 강의중인 한 한국인 정치학자의 말).
한국이 처한 국제적 상황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우선 한국 언론매체의 보도자세가 바뀌어야 하다. 언제까지고 일본을 을씨년스런 우경화의 바람이 싸늘한 이웃이라는 이미지 속에 가둬두려 해선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대해 특정방향으로 유도하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겠다면 이제는 식상한 ‘때리고 씹기식’ 보도자세보다는 함께 공조하며 협력할 수 있는 일본의 양식들에 대해서도 더욱 많은 비중을 두며 이들과의 다각적인 협조방법 등을 유도하는 것은 어떨까.
일본을 보도하는 언론매체 종사자 스스로 자문해보길 정중히 권한다. 내가 전하려는 일본은 사실 내 속의 일본은 아닌지. 나는 과연 일본에 대해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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