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총선 결과 많게는 50여개 지역구에서 재선거를 치러야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학계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재선거 이전에 법정 선거기간 동안 각종 여론조사의 공표를 금지하고 있는 현행 선거법을 조속히 개정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정치권, 왜 국민의식 무시하나”**
총선미디어감시국민연대(미디어연대)가 22일 오후 국가인권위원회 회의실에서 개최한 ‘선거시기 여론조사 공표금지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은 한결같이 정치권의 각성을 촉구했다.
발제를 맡은 권혁남(전북대) 교수는 “현행 선거법 108조 1항은 엄연히 법정 선거기간 동안 여론조사 결과의 발표를 금지하고 있지만 이번 총선에서 보여지 듯 언론사들은 각종 다양한 방법으로 여론의 흐름을 보도했다”며 “결국 선거 때만 되면 현실에 맞지 않는 선거법으로 인해 모두가 ‘눈 가리고 아웅’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권 교수는 “총선 이전에 이미 이러한 문제점이 지적됐음에도 정치권이 선거법을 개정하지 않은 것은 스스로가 언론사와 여론조사기관에 강한 불신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며 “무엇보다도 여론조사 결과 발표가 국민들의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투표행위를 저해할 것이라고 판단하는 정치권의 전근대적인 인식이 가장 큰 문제점이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이와 관련해 “최근 외국의 선거여론조사 효과에 대한 연구들을 보면 대부분 여론조사가 선거에서 어떠한 유의미한 효과를 일으키지 않고 기껏해야 수용자가 이미 갖고 있는 의견을 보강해 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토론자로 참가한 이용성(한서대) 교수도 “국민들은 처음으로 도입된 1인 2표제에서 지지 후보와 정당을 구분해 ‘전략적 투표’를 할 정도로 성숙된 의식을 보여주었다”며 “따라서 이 문제는 정치권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시민단체와 언론사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개정을 촉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론조사 신뢰성, 시장에 맡기자”**
정치권이 언론사와 여론조사기관의 신뢰성에 의문을 갖고 있어 공표를 금지하고 있다면 오히려 보다 적극적으로 시장자율에 신뢰성 검증을 맡겨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박태경 MBC 보도제작국 차장은 “만약 일부에서 우려하는 대로 공표금지 조항이 삭제된 뒤 언론사와 여론조사기관이 특정한 목표를 갖고 여론조작을 노린다면 선거 결과에 따라 해당 언론사와 여론조사기관은 자연스럽게 시장 퇴출 상황을 맞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강택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장은 “법정 선거기간 중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사회적 합의 없이 쉽게 국민들의 알권리를 제약해온 관습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며 “우선 제약하려 들 것이 아니라 민주적인 원형을 먼저 시행해 보고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적절히 보완해 나가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사결과 공표 전면 허용” “단계적 접근” 이견**
한편 토론자들은 법정 선거 기간 동안에도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해야 한다는 데 의견일치를 봤으나 공표금지 기간을 언제로 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다소 이견을 보였다.
권혁남 교수는 “정치권에서 여론조사의 전면 공표에 부담을 갖고 있다면 1차적으로 투표일 2~3일 전으로 공표금지 기간을 축소한 뒤 그 결과를 지켜보고 나서 2단계로 전면 공표 허용으로 선거법을 개정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시했다.
반면 손석춘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은 “한국적 상황이라면 더욱 전면 공표를 허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손 위원은 “여론을 과점하고 있는 일부 신문들은 여론조사 결과가 공표되지 않는 동안 드러내지 않고 여론 조작을 하고 있다”며 “이미지선거, 감성 선거를 보완하기 위해서라도 여론조사 결과의 공표는 반드시 전면 허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는 “여론조사 결과 공표 금지는 언론사 등 알만 한 이들은 모두 여론의 흐름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오직 국민들에게만 정보 접근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태도”라고 전제한 뒤 “그러나 현행 여론조사는 오직 승자에게만 관심을 갖는 ‘경마식’ 조사여서 앞으로 보다 미시적이고 다양한 관심에 대한 여론조사로 바뀌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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