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가 자사 지면에 시사만평을 게재해온 조민성 화백에게 직무정지 조처를 내리면서 "탄핵 찬성 입장인 회사의 논조와 맞지 않는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빚고 있다.
***조 화백 "명백한 표현의 자유 박탈 행위"**
세계일보는 지난 7일자에 알림 글을 통해 "2면에 게재해온 만평을 내부 사정상 당분간 싣지 않는다"고 밝힌 뒤 후임자 물색에 나서 사실상 조화백을 경질했다.
이선호 세계일보 편집국장은 만평 중단을 사고 형태로 발표하기에 앞서, 6일 오후 2시30분 편집국 부국장 한 명을 배석시킨 가운데 조민성(국장석 차장) 화백을 불러 연재 중단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편집국장은 8일 본지와의 통화에서"이전부터 조 화백의 시사만평이 조악하고 난해하다는 내부 의견이 많았으나 마땅한 후임자가 없어 현재까지 연재를 계속해 온 것"이라며 "하지만 최근 내부 불만이 더욱 팽배해지고 있어 연재 중단을 통보했고 후임자에 대해선 현재 내부 검토중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조 화백은 "정치적인 의도를 감추려는 터무니없는 모략"이라고 반박했다.
조 화백은 "이 국장은 대통령 탄핵 다음날인 지난달 13일자에 국회 장례식을 표현하는 시사만평을 그려 출고하자 나중에 호출을 해 '회사 논조에 따라 갈 수 없느냐'는 말을 한 적이 있다"며 "얼마 전 이동한 편집인도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재단(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은 탄핵에 찬성하는 입장인데 왜 만평은 달리 가냐'고 따진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동한 편집인은 "조화백에게 재단의 입장을 전달한 적이 없으며, 다만 다른 부서로 옮길 수는 없는지에 대해 문의한 적은 있다"고 해명했다.
조 화백은 "이번 직무정지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탄압에 다름아니다"라며 "언론이기를 포기한 세계일보를 상대로 나홀로 투쟁도 불사하겠다"고 말했다.
***시사작가들 "보복인사 의혹 짙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각 신문사의 대다수 화백들도 반발하고 있다.
백무현 서울신문 화백은 "세계일보는 노조 창립 멤버 출신으로 98일간 파업으로 유명한 이른바 '세계사태'의 3인방 가운데 핵심인물이었던 조 화백을 못마땅하게 생각해 오다가 이번 기회에 보복 의사를 노골화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하며 "이는 언론사의 생명인 비판정신에 대한 도전행위이기도 하다"고 비판했다.
조 화백은 지난 95년 세계일보에 입사, 97년 세계일보 편집권 독립 투쟁 당시 노조창립을 주도하면서 만평화백으로서는 드물게 사무국장을 맡아 98일간 파업을 이끈 바 있다.
조 화백은 그 해 7월 회사측에 의해 해고됐다가 해고무효소송을 통해 2000년 원직복직 됐으며, 3년뒤인 지난해 10월부터 다시 시사만평을 그려왔다.
손문상(부산일보 화백) 전국시사만화작가회의 회장은 "조 화백에 대한 직무정지는 언론사에서 없어져야 할 구습이 또다시 부활한 참으로 경악스러운 사태"라며 "작가회의는 언론사이기를 포기한 세계일보를 상대로 조만간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강력히 대응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조 화백과의 일문일답이다.
***조 화백과의 일문일답**
- 회사측이 정치적인 의도로 직무정지를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대통령 탄핵 이후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이같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심지어 이선호 편집국장은 '다른 부서로 갈 수 없느냐'는 말까지 했다. 화백에게 다른 일이란 있을 수 없다. 당시 국장에게도 '나는 삽화가가 아니라 작가정신을 가진 시사만화가'라고 따졌다."
- 회사측은 화백 개인의 실력 문제를 이슈로 삼고 있다.
"어이가 없다. 국장은 이전에도 '사내 여론조사 결과 다수가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동안 그린 만평을 보여주며 그러한 것을 뽑아보라고 하자 아무런 답변도 하지 못했다. 이번 직무정지는 97년 파업 이후 와해돼 버린 노조를 홀로 지키고 있는 것에 대한 보복조처이자 대통령 탄핵을 찬성해 온 재단측의 편집권 간여 행위이다."
- 직무정지 뒤 어떻게 지내고 있나.
"출근을 해도 눈을 마주치려 하는 사람이 없다. 그만큼 회사 분위기가 살벌하다는 소리다. 말로만 들었던 군사독재 시절 편집국의 분위기를 보는 듯 하다. 다른 사람들을 좀 편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당분간 출근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다른 신문사에서도 이전에 화백과 회사간에 의견충돌이 빚어지면 온갖 회유와 협박을 통해 결국 회사를 그만두게 만드는 것을 봐왔다. 이런 전철을 밟지는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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