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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조기 휘날리며

김명훈의 '영화, 영어, 그리고 미국' <16> ‘We Were Soldiers’

베트남 전쟁을 다룬 미국 영화 중 가장 최근작인 ‘We Were Soldiers’(2002)는 언뜻 보면 이념이 없는 영화처럼 보인다. ‘우리는 군인이었다’는 제목에서부터, 군인이라는 단어에 존엄성을 꾹꾹 눌러 담아 그 임무의 기능적 순수성만을 강조한다. 우리는 군인일 뿐, 국가의 부름에 응하여 최선을 다했을 뿐이므로, 이념 따위는 걸고 넘어지지 말라는 엄포 같기도 하다. “Fathers. Brothers. Husbands & Sons.”라는 미국용 포스터카피는 역사나 정치나 이념에는 관심이 없다는 선언으로, 아버지이고 동생이고 남편이고 아들인 이들 군인들의 휴먼스토리를 전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감독 랜돌 월레스는 1965년 11월 14일 벌어진 미군과 베트남 정규군 사이의 첫 대규모 전투를 지휘했던 할 무어 중령과 이때 전황을 취재했던 종군기자 조 갤러웨이가 공저한 ‘We Were Soldiers Once, and Young’이라는 책을 시나리오화 하면서, 이때 전장에 나간 병사들의 인간적인 요소들을 극도로 이상화 시켰다. 무어 중령(멜 깁슨 분)이 이끄는 병사들은 죽음의 계곡이라고도 불리는 이아 드랭(Ia Drang)계곡, 일명 LZ(landing zone) X-Ray에 투입되어, 무어 중령의 본보기를 따라 하나의 거대한 가족이 되어 서로를 위해 희생하며 싸운다. 미군 395 대 베트콩 2000이라는 숫자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미군 병사들은 군인정신과 단결심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장렬하게 싸운다. 전투에 임하는 그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고결함의 표본이며, 온몸이 피범벅이 되어 숨이 넘어가는 순간에도 “I’m happy I could die for my country,” 또는 “Tell my wife I love her!”라고 말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오로지 군인들의 숭고한 가족애, 전우애, 의리, 그리고 희생만이 강조되는 가운데 전쟁의 역사나 원인을 따지는 것은 무례한 짓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피부색이나 인종을 따지지 말고 서로를 위해 싸우라는 무어 중령의 힘찬 연설이나, 부인의 사진을 품은 인상 좋은 안경잡이 베트콩 병사가 서툴게 돌격하다가 사살되는 장면 등은 이런 역사적 맥락화(contextualization)의 시도를 견제하기에 충분하다.

병사들은 모두 각자의 단란한 가족의 일원이며, 영화는 그들을 집에서 애절하게 기다리고 있는 처자식들이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준다. 이 정도면 전쟁의 참혹한 현실을 그대로 전하고, 인종이나 적과 동지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의 보편적 가치관들을 수용하려는 영화의 자세를 거부할 이유가 없는 듯하다. 그런 견지에서, 이념이란 것은 중요하지 않은 잔혹한 전장의 리얼리즘의 차원에서, 이념과 국가를 초월한 보편적 휴먼드라마의 차원에서 이 영화를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싶은 심정이 생겨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 과연 이념이 없던가.

무어 중령은 사랑스런 부인(마델린 스토우)과 다섯 명의 천사 같은 아이들로 구성되어 있는 그림 같은 가족의 따뜻한 가장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의 부하들을 아버지처럼 돌보고 챙기는, 인간미가 넘치는 상사이다. 본론인 전쟁터의 살육에 돌입하기에 앞서 영화는 무어 중령의 이런 인간적 이미지들을 듬뿍 담아낸다. 전장에 불려나가기 전 갓 득녀한 잭 게이건 중위(크리스 클라인)와 함께 성당에서 기도하는 장면은 전쟁을 앞두고 모든 것을 신에게 맡기는 솔직함과 소박함을 그리는 따스한 풍경처럼 보인다. 그런데, 자세히 들어보면 그의 기도에는 독소조항이 들어있다.

Our Father, before we go into battle, every soldier among us will approach You each in his own way. Our enemies too, according to their own understanding, will ask for protection and for victory.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전장에 나가기 전에, 우리 중 각 병사는 모두 각자 나름대로 당신에게 나아갈 것입니다. 우리의 적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이해에 따라 보호와 승리를 구할 것입니다.)

얼핏 적을 같은 인간들로 생각하는 배려가 있어 보이지만,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그들 나름대로의 이해에 따라” 라는 문구가 풍기는 우월의식의 냄새는 차치하고라도, 적들이 구하는 보호와 승리(protection and victory)는 첫 문장에서와는 달리 당신(Your)이라는 소유격이 명시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구하는 대상이 사실상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기도는 적들은 같은 신을 섬기지 않음을 의도적으로 강조하고 있으며, 결국 적들은 헛것을 구한다는 뜻을 전하고 있다. 이것은 기도의 마무리 부분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Amen. And one more thing, dear Lord. About our enemies. Ignore their heathen prayers and help us blow those little bastards straight to hell. Amen again.
(아멘. 그리고 참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주여. 우리의 적에 대해 말입니다. 그들 이교도들의 기도를 무시하시고 저희가 그 쬐만한 새끼들을 지옥으로 곧바로 날려 보낼 수 있게끔 도와 주십시오. 또 아멘입니다.)

이 마지막 부분의 키워드는 ‘heathen’이다. 이 단어는 이방인(또는 이방인적: 명사로 쓰일 수도 있고 형용사로 쓰일 수도 있음)이라는 뜻도 있지만, 기독교 문화에서 불신자 또는 이교도를 미개인 내지는 야만인과 동일시하는 태도를 담은 여운이 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장면에서, 집에 돌아온 무어는 어린 딸을 재우려 하다가 “아빠, 전쟁이 뭐에요?”라고 묻는 딸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Well, it’s something that shouldn’t happen, but it does. And… it’s when some people… in another country or any country…try to take the lives of other people.
(글쎄…그건 일어나지 않아야 하지만 일어나는 일이야. 그리고…사람들이…다른 나라에서 아니면 어느 나라에서든…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뺏으려고 하는 거야.)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결정타는 그 다음에 있다.

And then soldiers like your Daddy have to… It’s my job to go over there and stop them.
(그렇게 되면 아빠 같은 군인들이…내 임무는 그들을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는 거야.)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한테 하는 얘기지만, 여기에는 경찰국가인 미국의 기본 자세가 들어있다. 미국은 사람들끼리 하는 싸움을 단지 말리는 입장일 뿐이라는 얘기다. 미국은 남을 해치려는 사람을 그러지 못하게 하는 정의로운 개입자임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장면에서 다시금 확인되는 것은 이 영화가 근대사를 왜곡한다는 단순한 사실보다는, 수많은 미국인들이 아직도 그 전쟁을 자아도취적 휴머니즘의 관점에서 보고 있다는 현실이다. 불과 2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지만, 미국의 자기 합리화는 아직도 건재함을 확인한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것은 역사적 기억상실증이 아니라, 미국인들의 의식 속에 배어있는 우월주의의 이념이다.

그 이념은 그들의 소박한 기도 속에, 그리고 아빠와 어린 딸의 대화 속에 숨어 있다. 그 이념의 핵심에는 우리는 선하며 모든 것을 선의의 차원에서 행한다, 그리고 신은 우리의 편이다 라는 믿음이 있다. 이것이 미국의 모든 행위를 정당화하는 사고의 근원이다. ‘We Were Soldiers’는 이념을 찾지 말라고 넌지시 경고하고 나서는, 은연 중에 이러한 이념을 드러내 보인다. 미국의 대통령이 ‘악의 축’을 운운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당연시되는 미국 고유의 권한 같은 것이며, 이 같은 권한의식은 일반 미국인들의 의식 속에 아주 아늑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결국 ‘We Were Soldiers’는 이념을 뛰어넘은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를 보여주는 듯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가치는 보편적 가치가 아님을 알게 된다. 적의 가치도 모두 수용하려는 것 같지만, 미국적인 가치의 테두리 안에 들어있지 않은 것들은 배제하거나, 또는 영화의 시적 허용(詩的許容ㆍpoetic license)을 동원하여 미국 중심의 보편적 가치를 씌우려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키보다도 높이 쌓인 베트콩 시체더미 부근에는 부러진 나무 위에 작은 성조기가 꽂혀 있고, 베트남 장교는 참담한 표정으로 그 성조기를 빼어 만지작거리다가, 미군에게 경의를 표하듯 다시 꽂아 놓는다. 형언을 불허할 베트남 장교의 속마음은 아랑곳없이, 성조기는 바람에 당당하게 나부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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