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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편이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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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편이다 (1)

김시원의 뉴질랜드 이민일기 <33>

처음에 당연히 한국인 이민자끼리 모이는 교회를 찾아갔다. 한 두달 다니다 보니 역시 원래 내가 한국서 다니던 교단에 속한 교회를 다시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히 교회를 옮기려면 곧장 다른 한국 교회를 나갈 것이 아니라 키위 교회를 좀 다니다가 옮겨가야겠다고 결정을 했다. 교회를 옮기면 워낙 말들이 많다고 해서. 그래서 전화번호부를 뒤져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장로교회를 찾았다.

언덕 위에 자그마한 교회였다, 벽을 하얗게 칠한. 예배시간을 알리는 종도 뗑그렁거리면서 쳤다, 나중에 알고 보니 종소리 녹음한 것을 틀어놓는 것이었지만. 그런 외적인 매력보다는 예배를 드리면서 사람은 다르고 말은 달라도 또 찬송가 곡조는 달라도 우리가 한 하나님을 섬기는구나는 감격스러움이 있었다. 또 남편은 이런 평범한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선교사를 보내었구나 라고 느꼈다고 나중에 고백을 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잠시 거쳐가려고 했었는데, 그냥 우리 교회가 되어버렸다.

이제는 서양교회에 노인들만 모여 예배드린다고 들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로 은퇴한 지 한참 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예배를 드리러 왔다. 30대 후반인 우리가 한 주일도 빠지지 않고 꼬박 예배드리는 것을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신통하게 생각하고 그렇지 않아도 친절한 분들이 더욱 우리를 사랑하셨다. 그러나 사랑하는 것과 말이 술술 잘 통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거의 모든 교인들이 처음에는 친절하게 말을 걸었다. 어디서 왔느냐, 온 지 얼마나 되었느냐, 뉴질랜드에서 사는 것이 어떠냐, 좋으냐, 왜 이민오게 되었느냐, 등등. 그리고는 너희는 참 용감하다 우리는 남의 나라에 가서 사는 것을 꿈도 꿀 수 없는데 라는 말이 보통 붙여지는 말이었다. 물론 키위라 할지라도 거의 모두 이민 온 사람들인데, 우리가 언어가 다른 나라에 온 것을 감탄(?) 하는 말이었다.
이렇게 신상에 대한 보고가 끝나고 나면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어진다. 몇 년 살다 보니 서로에 대해서 알게 되고 또 이 나라의 뉴스에 대해서도 나눌 이야기가 있다 보니 대화의 폭이 차츰 넒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첫 만남에서 몇 마디 나눈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대화의 끝이 되고 말았다. 그 다음에는 헬로우나 굿 모닝 등 의례적인 인사에다 날씨에 대한 언급을 약간 보태기도 하고 아닐 때도 있고, 사실 나도 할 이야기가 없었고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면 내용도 모르겠고 가끔 알아 듣는다 해도 내가 끼어들만하다 싶어 머리 속으로 영작하는 동안 이미 그 이야기가 지나가버리면 김이 빠져 그나마도 노력을 하는 게 귀찮아졌다. 영어는 신통하게도(?) 들으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그냥 소음으로 지나가 버리고 나는 혼자서 딴 생각을 즐기면 된다. 그러나 때로는 내가 있든 말든 자기들끼리 신나게 이야기를 하면 소외감을 느끼고 나는 역시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리기가 어려웠는데.

연합성가대가 모여서 연습을 하기 시작할 거라고 함께 가겠느냐고 트루스 할머니가 물어보았다. 할머니는 알토음을 잘 못 잡는 다른 할머니들을 이끌어온 강력한 알토였다. 나도 어떤 때는 할머니에게 의존할 정도로 음감이 정확한데다 또 자신만만한 분이었다. 우리 교회는 상시 성가대는 없이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등 절기마다 모여 연습하고 성가를 불렀지만, 이 연합 성가 발표회를 위해서는 친절한 반주 할머니의 배려로 할머니 집에 모여 파트 별로 일단 곡조를 익혔다. 그 다음 지역별로 큰 교회에 모여 중간 연습을 하고 마지막으로 시내에 있는 한 성공회 성당 (꽤 오래된 고딕 건물로 유명하다)에 모여 음악회를 가지는 큰 행사였다.

지금까지 알토 중에서는 트루스 할머니만 연합성가대에 참석하셨다고 한다. 처음 지역별 연습하는 날 에릭 할아버지 차에 동승하여 가면서 이제는 내가 함께 가서 좋다고 하는 트루스의 할머니 말씀을 그냥 나를 배려하여 말하는 것이려니 했다. 교회에 그득 들어선 사람들 앞에서 지역 책임자가 파트별로 나누어 서라고 했다. 그 때부터 트루스 할머니는 내가 당신 곁에서 떨어질까봐 챙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발표회 장소에서 자리를 정할 때는 할머니와 내가 옆에 나란히 앉지 못하고 앞 뒤로 갈라서게 될까봐 신경을 쓰셨다. 이것은 내가 아시아인이어서 어색해 하고 소외감 느낄까봐 배려하는 이상이었다. 오히려 할머니가 낯선 사람들 틈에서 알고 있는 단 한사람을 놓칠까봐 염려하시는 느낌이었다.

근처에 앉은 다른 교회에서 온 알토가 음정이 틀리면 내 귀에다 대고 ‘저 사람들은 연습도 안 하고 왔나봐’ 라고 소근대며 흉도 보시고. 다른 키위들과 인사 나누려고 애쓰지도 않으시고 나하고만 붙어있는 것에 신경을 쓰셨다. 그리고 보니 나도 연습 도중 쉬는 시간에 다른 파트에 가 있는 우리 교회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만나는 게 무척 반가왔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교회마다 같이 온 사람들끼리 모여서 이야기하며 즐거워했다. 평소에 교회에서 일상적인 인사하고 나면 나는 별 할 이야기가 없던 것과는 완전히 딴 판으로 내 소속이 분명했다. 내가 내 편인 사람들과 함께 있는 그런 기분이 드니까, 또 성가연습이라는 공통된 화제가 있으니까, 나도 이야기가 술술 잘 나오고. 거기서 나는 한국에서 온 이민자로 다른 키위들과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교회 사람으로 우리 교회 아닌 사람들과 구별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어느 모임에를 가든지 원래 있던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친하게 이야기하는 것에 신경을 거의 쓰지 않는다. 내가 그 그룹 안에 들어갈 건지 그냥 건성으로 밖에 있다 올 건지만 정하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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