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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전쟁위기 94년보다 훨씬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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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반도 전쟁위기 94년보다 훨씬 높다"

코넬대 서재정 교수, "현재 미 군사력 사상 최강"

주한미군의 후방 재배치 등으로 한반도의 미 군사력 약화를 우려하는 국내의 일반적 시각과는 반대로 미국은 지난 1994년 이후 한반도 주변의 군사력을 지속적으로 증강, 현재 한반도 주변의 미 군사력은 당시보다 현저히 강화됐으며 이에 따라 한반도의 전쟁 위기는 그 어느때보다도 심각하다는 분석이 제기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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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주변 미 군사력 94년보다 훨씬 강력**

재미 안보전문가인 서재정 교수(코넬대 정치학과)는 지난 14일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이 주최한 '위기 속 남북관계, 언론보도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없는가' 세미나에서 발표한 '부시 독트린과 일극체제 속의 민족언론' 발제문을 통해 미국은 1994년부터 지속적으로 한반도 및 주변지역의 미 군사력을 강화해 왔다면서 "여기에 부시 독트린의 핵심인 선제공격과 핵 공격 가능성을 추가하면 한반도에서의 전쟁 가능성은 1994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밝혔다.

서 교수는 제네바합의가 체결된 1994년 가을 미 의회가 주한미군 강화를 위해 2억5천만 달러 추가 지출을 승인한 사실을 예로 들면서 미국은 클린턴 행정부 때부터 북한에 대한 포용과 봉쇄 정책을 동시에 진행해 왔으며 부시 행정부의 차이점은 봉쇄 쪽에 훨씬 더 큰 비중을 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무기 사전배치ㆍ신속기동훈련으로 지상군 증강 없이 미 군사력 강화**

미국은 유사시 동원할 수 있는 중장비 무기체제들을 한반도 및 주변지역에 증강 배치하는 한편 이 무기체제들을 신속하게 활용할 수 있는 '신속전개훈련'을 통해 한반도 주변지역의 미 군사력을 강화시켜 왔다고 서 교수는 밝혔다. 이는 주로 미 지상군의 이동에만 관심을 기울여 온 국내 언론 등의 시각과는 전혀 다른 접근 방법이다.

서 교수에 따르면 한반도 주변의 미 군사력 강화에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북과의 핵위기가 점증되던 1993년 말 수행된 '주한미군 준비상태 검토'였다. 여기서 당시 게리 럭 주한미군 사령관은 "현 군사력은 북의 위협에 대처하기에 부족"하다고 결론을 내리고 군사력 증강을 공식적으로 요청하였다. 이에 따라 미 국방부는 M1A1 탱크 120대, 패트리어트 미사일, 아파치 헬리콥터 등을 즉각 증파하는 등 주한미군의 화력을 강화하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즉 현장에 배치되어 있는 미군의 수는 변화시키지 않되 유사시 가동될 군사력을 실질적으로 강화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주한미군은 1996년 구형정찰기 OV-10 Mahawk를 Airborne Reconnaissance Low Aircraft로 대체하고 1977년에는 주한미군과 한국군에 정찰정보를 실시간에 전송할 수 있는 위성통신장치 도입하는 등 정보/정찰력을 강화해 왔다. 또 한편으로는 패트리어트 미사일 등을 주한미군 주변에 배치하여 북의 보복공격에 대한 방위력을 증강하고, 북의 장거리포를 초기에 무력화하는 데 유용한 다연장포 등을 추가 도입하여 주한미군의 화력을 강화했다.

***94년 북핵위기 이후 미ㆍ일 군사협력 대폭 강화**

미국은 또 1996년 가을 1개 여단 무장에 필요한 탱크와 장갑차, 통신장비 등을 한국 수역에 사전배치 (pre-position)하기에 이른다. 한편 1994년부터 미군은 신속전개훈련 (RSOI: Reception, Staging, Onward Movement, and Integration into the Combat Force)을 시작한다. 이 군사훈련은 경무장한 군인들을 신속히 이동배치하여 이미 사전에 전개되어 있던 중무장 무기체제들과 결합을 시킨다는 새로운 개념을 이 군사훈련에서 시험하는 것이다. 군사적으로는 이미 '고물'이 된 팀스피리트를 중단하고 기동성을 중시하는 신병참전술을 훈련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서 교수는 "한미연합사 휘하에 "잠정여단 전투팀" (Interim Brigade Combat Team)이 신설된 것도 미군의 전반적 신속전개군화 과정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서 교수는 또 94년 이후 미ㆍ일간의 군사협력 강화도 한반도 유사사태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1994년 미국이 북에 대한 공격을 심각하게 고려하는 과정에서 일본이 여러 가지 면에서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에 1995년부터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구체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들, 97년의 미일 신방위가이드라인이나 최근의 유사법제 제정 등이 취해졌다는 것이다.

***한국군 현대화, '자주국방' 으로 보기 어려워**

한편 서 교수는 한국군 현대화 계획과 관련, "양대전쟁전략에 따라 주한미군과 한반도 주변의 미 군사력이 지난 1993년부터 꾸준히 강화되어 왔다면 한국군은 한미군사동맹의 하위 파트너로서 국지적인 임무 수행능력을 강화해 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패트리어트 PAC-3를 도입할 것으로 보이는 SAM-X 미사일 사업, 이지스급 구축함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KDX III 구축함 사업, AWACS 도입 등을 축으로 하는 중기군사력 강화사업은 미사일 방어체제 구축을 위한 계획이라는 인상이 짙다"면서 "이러한 한국군 현대화 사업은 자주국방으로 가기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과는 달리 실제 내용적으로는 한국군이 미군의 하위체제로 더욱 깊이 통합되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서 교수는 특히 미국의 한반도 전쟁시나리오인 "작전계획 5027은 전쟁 초기부터 북한 영토의 종심을 공격한다는 공세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한반도 전쟁가능성 94년보다 훨씬 높아**

서 교수는 결론적으로 "여러 가지 준비상황으로 보아 미국은 내년이면 상황이 1994년과는 판이하게 다르게 될 것이라고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점이 한반도의 위기를 고조"시키는 요인이라면서 "여기에 부시 독트린의 핵심인 선제공격과 핵 공격 가능성을 추가하면 한반도에서의 전쟁 가능성은 1994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밝혔다.

즉 본토는 미사일방어로 보호하고, 주한미군은 후방배치로 북의 장거리포 사정거리 밖으로 빠지고, 후방에 있는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을 겨냥하는 중단거리 미사일은 패트리어트 PAC3로 보호한다는 방어계획이 실행에 들어가므로, 1994년과 같이 엄청난 미군 피해가능성 때문에 전쟁을 피할 필요는 없다는 판단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편 서 교수는 클린턴 행정부가 영변 폭격을 심각하게 고려했던 지난 94년 5월 19일 페리 당시 국방장관은 "개전 후 90일간 미군 사상자 5만2천명, 한국인 사상자 49만명, 엄청난 수의 북한군 및 민간인 사상자 발생, 그리고 군사비 610억달러" 라는 보고를 했고 엄청난 피해 규모에 놀란 클린턴 대통령은 그 다음날 외교적 해결방안으로 선회했지만 지금은 그 때와 사정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도 1994년보다 미국의 한반도 주변 군사력이 크게 강화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 부시 행정부 이후 본격적으로 추진해온 군사기술혁명으로 미군을 첨단무기로 무장시켰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첨단전쟁의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그러나 부시행정부가 북한을 선제공격할 정책과 군사력을 갖추고 있지만 이것이 실천에 옮겨질 지는 정치적 요소들의 복합적인 방정식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시 독트린이 제2의 한국전쟁으로 구현될지의 여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한반도 군사력의 균형,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력 균형, 미국 내의 정치력 균형 등 세 가지의 균형으로 압축될 수 있으며 이 삼자를 세밀하고 총체적으로 추적해야 한는 것이다.

***국내 언론 보도의 4가지 문제점**

한편 서 교수는 현 한반도위기와 관련한 국내언론의 보도에 대해 다음 4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첫째, 부시 행정부의 등장과 함께 불거진 전략논쟁을 놓친 것이며, 두번째 9-11 직후 부시행정부의 안보전략이 양대전쟁과 군사혁신 동시추구로 굳혀졌다는 사실을 놓쳤다는 점이다. 세 번째 부시 행정부의 안보정책에서 반확산정책이 갖는 중요성과 이 반확산정책이 한반도의 사활을 좌우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없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부시 행정부의 정책을 비판적으로 보도하는 기사들조차 한반도와 우리 민족을 중심에 놓는 시각을 결여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그는 첫번째 문제점에 대해 "부시 행정부 이전부터 있었던 양대전쟁론자와 군사혁신론자 사이의 논쟁이 가지는 의미와 이 논쟁의 결과가 한반도에 미칠 영향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 않았는가 하는 느낌이 있다. 이 논쟁을 중심으로 미국의 보수우익이 크게 갈라졌을 뿐만 아니라 미군 내부에서도 군사혁신을 지지하는 세력과 전통적인 양대전쟁전략을 지지하는 세력으로 분화되어 있었고, 이러한 논쟁이 봉합된 9-11 이후에도 분열은 계속 되고 있다. 미국 보수세력의 이러한 분열은 전술적인 제휴와 견제의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데 주목하며 섬세한 추적이 필요한 부분이라 하겠다."고 지적했다.

두 번째 문제에 대해서는 "클린턴 행정부의 양대전쟁전략이 부시 행정부에서는 win-hold-win으로 바뀌었다는 잘못된 인식이 상당히 광범위하게 유포되어 있는 바 이는 언론의 책임이 크다"면서 "아프간 전쟁과 이라크 전쟁 이후에는 양대전쟁전략의 내용과 실행방식이 변화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 이러한 변화의 내용과 방향성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세 번째 문제에 대해 "미국이 9-11 사태 이후 느끼는 안보불안감은 상당히 심각하며 이에 편승해 등장한 부시 독트린은 음모론 등으로 쉽게 설명될 수 없는 것"이라며 이에 대해 세심한 주의를 촉구했다. "현실적으로 미국의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요소는 테러리즘과 대량살상무기이고, 이 양자의 결합이 미국으로서는 가장 위험"하기 때문에 "부시 행정부가 추구하고 있는 반테러전쟁과 반확산정책은 미국으로서는 사활이 달린 정책"이며 따라서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언론의 주체적 시각의 결여와 관련해 서 교수는 "이 부분은 미사일방어와 관련한 보도에서 특히 두드러지지만 부시 독트린을 다루는 보도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미사일방어는 북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실제의 적은 중국이라는 주장이 그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이 양대전쟁전략과 반확산전략이라는 부시 독트린의 십자포화의 한 가운데에 있는 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전략들이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든지, 석유를 겨냥한 것이라든지 하는 의식이 유포되는 것은 우리 민족으로서는 불행이라는 것이다.

서 교수가 14일 발표한 발제문중 한반도 주변지역 미 군사력의 증강을 다룬 부분을 소개한다.

***부시 독트린과 일극세계체제 속에서의 민족언론(일부)/서재정 미 코넬대 교수**

***아시아ㆍ태평양 미 군사력 강화**

양대전쟁전략이 채택된 이후 한반도 주변의 미 군사력은 중동 주변의 군사력과 함께 서서히 강화되어 왔다. 한반도 주변의 미군사력 강화에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북과의 핵위기가 점증되던 1993년 말 수행된 '주한미군 준비상태 검토'였다. 여기서 당시 게리 럭 주한미군 사령관은 "현 군사력은 북의 위협에 대처하기에 부족"하다고 결론을 내리고 군사력 증강을 공식적으로 요청하였다. 이에 따라 미 국방부는 M1A1 탱크 120대, 패트리어트 미사일, 아파치 헬리콥터 등을 즉각 증파하는 등 주한미군의 화력을 강화하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즉 현장에 배치되어 있는 미군의 수는 변화시키지 않되 유사시 가동될 군사력을 실질적으로 강화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제네바에서 북한의 핵시설을 동결하는 대신 경수로를 제공한다는 합의가 서명되던 1994년 가을 미 의회는 주한미군 강화를 위해 2억5천만 달러를 '추가' 지출을 승인한다는 모순적인 조치를 취한다. 대화와 협상은 하더라도 군사력 사용이라는 가능성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이후 주한미군은 1996년 구형정찰기 OV-10 Mahawk를 Airborne Reconnaissance Low Aircraft로 대체하고 1977년에는 주한미군과 한국군에 정찰정보를 실시간에 전송할 수 있는 위성통신장치 도입하는 등 정보/정찰력을 강화해 왔다. 또 한편으로는 패트리어트 미사일 등을 주한미군 주변에 배치하여 북의 보복공격에 대한 방위력을 증강하고, 북의 장거리포를 초기에 무력화하는 데 유용한 다연장포 등을 추가 도입하여 주한미군의 화력을 강화했다.

걸프전이 끝난 직후 미군은 '사막의 방패'와 '사막의 태풍' 작전 등에서 병참이 병목현상을 일으킨 주요 요인이었다고 판단하고 '이동성 요구사항 연구'(Mobility Requirement Study)를 실시했다. 일단 군사력을 집중해 놓은 다음에는 손쉽게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군사력을 집중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 과정에서 온갖 문제점들이 노정되었다는 반성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 연구 보고서는 군사력을 이동하고 집중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은 양대전쟁전략을 이행하는 데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고 인정하고 중장비를 필요지역에 사전 배치해 놓을 필요성 지적했다. 중장비를 중동과 한반도 등 필요지역 인근에 사전 배치해 놓으면 유사시 경무장된 군인들만 필요지역으로 수송하면 되므로 군사력 이동배치 시간을 엄청나게 줄일 수 있다는 제안이었다.

이러한 제안에 따라 미군은 인도양에 중장비 무기체제들을 사전 배치한 데 이어 1996년 가을에는 1개 여단 무장에 필요한 탱크와 장갑차, 통신장비 등을 한국 수역에 사전배치 (pre-position)하기에 이른다. 대개 군사력을 평가할 때 군인수와 부대의 배치상황만을 고려하기 때문에 이러한 중무장 사전배치는 군사력의 강화로 인식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한반도에서도 인근에 배치된 미군의 수가 크게 늘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군사력에 변화가 없다고 판단을 할 수 있으나 미국은 이러한 방식으로 유사시 동원할 수 있는 화력을 1996년부터 강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중장비가 사전 배치되기 이전인 1994년부터 미군이 신속전개훈련 (RSOI: Reception, Staging, Onward Movement, and Integration into the Combat Force)을 시작된 것은 이러한 병참전술의 변화에 따른 것이었다. 팀스피리트 훈련이 중단되는 것과 동시에 시작된 이 군사훈련은 경무장한 군인들을 신속히 이동배치하여 이미 사전에 전개되어 있던 중무장 무기체제들과 결합을 시킨다는 새로운 개념을 이 군사훈련에서 시험하는 것이다. 올 2003년 한미합동훈련에서 오끼나와에 배치되어 있는 미해병이 24시간만에 한국에 파견되는 것도 이러한 병참의 신속화과정과 맞물려 있고, 신속배치의 강화로 전투지역에서의 군사화력을 강화한다는 목적은 착착 이행되고 있다. 지난 1990년대초 미국은 북한과의 협상에서 문제로 제기된 팀스피리트를 포기하여 핵문제를 둔 협상에서 북의 양보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지만, 군사적으로는 이미 '고물'이 된 팀스피리트를 중단하고 기동성을 중시하는 신병참전술을 훈련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한미연합사 휘하에 "잠정여단 전투팀" (Interim Brigade Combat Team)이 신설된 것도 미군의 전반적 신속전개군화 과정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주한미군은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위험부담만 가중시키는 기지들은 연합토지관리계획을 통해서 정리하고 미사일방어와 신속전개군에 필수적인 오산기지 등으로 군사력을 재정비하고 있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은 제2사단 병력을 한강이남으로 이전하고 용산에 있는 미8군사령부를 이전하는 것으로 완결될 것이다. 주한미군의 강남 이전은 현재 북의 장거리포 사정권 안에 있는 미군기지를 사정권 밖으로 빼기 위한 것으로 이전이 완료되면 미군은 북의 장거리포나 미사일 보복에 우려할 필요 없이 작전을 수행할 수 있게 될 것이며 1993년경부터 시작한 양대전쟁전략 이행준비가 이로써 완결된다.

이와 동시에 미국은 현재 일본 사세보 기지에 배치되어 있는 강습양륙부대의 공격능력과 방호능력을 제고, 원정공격대를 신설한 방침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즉 기존의 부대에 이지스 구축함과 순양함 및 공격형 원자력 잠수함을 추가하여 필요할 경우 일본 영해 밖에 있는 적국 목표물에 대한 선제공격을 구비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혹시 있을지 모르는 북한의 대륙간 탄도미사일 공격 가능성에도 대비하는 주도면밀함을 보이고 있어, 2004년 초반이면 알래스카 등지의 미사일방어체제가 가동되기 시작할 것이다. 알드리지 미 국방부 부장관은 이러한 미사일방어체제는 북한에서 발사한 미사일을 격추할 수 있는 가능성이 90%가 넘는다고 2003년 봄 미 의회 청문회에서 장담한 바 있다.

미사일방어체제가 실제로 이 같은 성능을 발휘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문이 있으나 중요한 점은 미군 최고위층이 이 같은 확신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러 가지 준비상황으로 보아 미국은 내년이면 상황이 1994년과는 판이하게 다르게 될 것이라고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점이 한반도의 위기를 고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본토는 미사일방어로 보호하고, 주한미군은 후방배치로 북의 장거리포 사정거리 밖으로 빠지고, 후방에 있는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을 겨냥하는 중단거리 미사일은 패트리어트 PAC3로 보호한다는 방어계획이 실행에 들어가므로, 1994년과 같이 엄청난 미군 피해가능성 때문에 전쟁을 피할 필요는 없다는 판단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부시 독트린의 핵심인 선제공격과 핵 공격 가능성을 추가하면 한반도에서의 전쟁 가능성은 1994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한국군 현대화**

양대전쟁전략에 따라 주한미군과 한반도 주변의 미 군사력이 지난 1993년부터 꾸준히 강화되어 왔다면 한국군은 한미군사동맹의 하위 파트너로서 국지적인 임무 수행능력을 강화해 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우선은 한국군 작전계획의 골간이 되는 한미연합사의 작전계획 5027은 양대전쟁전략의 한반도 적용판이라는 점이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작전계획 5027의 연원은 1980년대 초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전쟁 초기부터 북한 영토의 종심을 공격한다는 공세적 성격은 부시 행정부의 예방전쟁 독트린 밑에서 탄력을 부여받고 있다.

이러한 공세적 작전계획에 따라 공격적 군사력 또한 강화되고 있다. 제공권 장악에 결정적 기여를 할 F-16을 도입하고, 공대지 공격에 가담할 수 있는 F-15를 도입하기로 결정한 것이 그 반증이다. 또 한국군은 미국의 최신식 전차 M1-A1과 유사한 K1-A1 전차로 무장이 되어 있고 러시아의 최신식 전차인 T80u까지 도입한 상태에서, 1950년대형 구식 전차로 무장된 북의 기갑병력에 대응해야 한다는 구실로 아파치 헬기를 도입하기로 하기도 했다. 아파치 헬기의 기동성을 볼 때 이러한 군사력이 단순히 북의 공세를 저지하는 소극적 방어뿐만 아니라 작전계획 5017에 따른 '공세적 방어'와 맞물려 있다고 보인다.

또 한편으로는 Hawk 800XP 10기 도입하고 있고 군사위성 도입 계획이 있는 등 정보력 강화를 위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미사일방어도 말만 안 할 뿐이지 내용적으로는 이미 추진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특히 패트리어트 PAC-3를 도입할 것으로 보이는 SAM-X 미사일 사업, 이지스급 구축함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KDX III 구축함 사업, AWACS 도입 등을 축으로 하는 중기군사력 강화사업은 미사일 방어체제 구축을 위한 계획이라는 인상이 짙다. 이러한 한국군 현대화 사업은 자주국방으로 가기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과는 달리 실제 내용적으로는 한국군이 미군의 하위체제로 더욱 깊이 통합되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한국군이 추진하고 있는 이러한 사업들은 미국의 양대전쟁전략이라는 큰 그림을 이루는 조각그림들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일본군사력 강화와 미일 군사력 통합**

최근 들어 탄력을 받고 추진되고 있는 일본의 '보통국가화'도 역시 미국의 양대전쟁전략이라는 큰 틀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지난 1993년 Bottom-Up-Review에서 양대전쟁전략이 정식화된 이래 미국과 일본은 상호협력 아래 이 전략을 이행하기 위한 조치들을 취해왔다. 특히 1994년 미국이 북에 대한 공격을 심각하게 고려하는 과정에서 일본이 여러 가지 면에서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에 1995년부터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구체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들이 취해진다. 양대전쟁전략에 따라 미국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수행할 경우 일본은 후방기지로써 여러 가지 지원을 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법체제도 재정비되어야 하고 실질적인 군사력도 준비가 되어야 한다고 깨달은 것이다.

우선은 미국은 1995년 동아시아 전략 보고서 (EASR)에서 양대전쟁전략의 동아시아 이행 전술을 구체화하며 미군 10만을 아시아 태평양지역에 주둔시키고 핵우산과 기존 동맹 중시할 것임을 천명했다. 곧 이어 일본은 1995년 11월 "국방계획대강"을 채택하고 일본 군사력이 적절한 기여를 할 필요성을 인정한다며 미국의 양대전쟁전략에 화답을 했다. 이어 1996년에는 미일 신안보선언을 발표, 미일동맹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안정적 환경"을 유지하는데 긴요하다며 일본이 양대전쟁전략의 이행에 긴요한 역할을 할 것임을 천명했다.

이러한 공동선언과 함께 일본은 1996년 전시지원 협정을 조인하여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질 경우 미군의 후방지원을 할 법적인 근거를 만드는 등 구체적인 조치들을 취했다. 1997년에는 방위 가이드라인을 개정하면서 "일본 주위의 지역에 개입"한다는 방침을 공식화했다. 신가이드라인은 한반도와 대만 등 주변 지역에서 분쟁이 발생할 경우 일본이 미군의 후방지원을 담당할 것임을 정식화한 것이다. 이러한 조치들을 촉발시킨 것은 1994년의 북핵위기였다는 점을 상기하면 '주변 지역'이 명시된 것이 당연하다 하겠다. 이어 1999년 5월에는 주변지역에서 유사사태가 발생하고 미군이 개입하는 경우 일본이 미군을 지원하기 위한 절차와 범위를 규정한 주변사태법, 자위대가 재외일본인 구출작업 도중 일본인 및 외국인의 생명과 신변보호를 위해 불가피할 경우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자위대법 개정안 등을 참의원에서 가결시켰다.

2001년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 반테러특별조치법을 제정, 미군의 후방지원뿐만 아니라 국제연합의 비준 없이 일본국회의 사후승인 만으로 자위대를 해외에 파견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주변지역' 이외의 타국영토에서 '준 군사작전'을 수행하는 것까지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이에 따라 일본은 2001년 11월 아프가니스탄 전쟁때 2차대전 이후 처음으로 전투해역에 자위대 함정들을 파견했다. 2003년 초에는 이라크 전쟁에 미국과의 공동작전을 위해 최신 이지스함을 걸프만에 배치하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은 2003년 유사법제를 제정하면서 최고조에 이른다. 이와 함께 2003년판 방위백서에서는 "방위청 사무차관이 장관을 도와 사무를 감독하며, 기본방침 책정에 대해 장관을 보좌하는 방위참사관을 둔다"는 '관료우위' 관련 기술이 삭제됐다. 지금까지 방위청 관료조직인 '내국'이 육해공 자위대의 '제복조'보다 우위라는 해석의 근거로 여겨졌던 이 부분이 삭제된 것은 자위대 안에서도 제복조의 권위가 확대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일본이 '보통국가'를 지향하는 일련의 조치들을 일사천리로 취한 것은 국내 정치적인 이유도 있을 것이고 북한의 '가시적 위협'도 국민을 설득하는 데 기여를 했을 것이지만, 미국이 헌법개정 가능성까지 포함한 집단 자위권을 일본에 강력히 요구했다는 '외압'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1994년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고 양대전쟁전략의 한반도 이행을 확실히 하기 위해 일본을 강력히 견인했고, 일본은 이에 편승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부시 행정부는 이미 2000년 10월 리차드 아미티지 현 국방부 부장관이 주도해 펴낸 보고서에서 주장한 조치들을 하나씩 이행하고 있는 셈이다. 아미티지 보고서는 "국방분야의 미일협력에서 개편된 가이드라인은 최종목표가 아닌 최초 출발점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며 동맹관계의 제약이 되고 있는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 금지가 수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시아 담당 차관보의 특별보좌관인 데이비드 애시는 2001년 6월 '일본은 극동의 영국이 될 수 있는가'라는 보고서에서 일본이 지역과 국제안보문제에서 더 크고 긍정적이며 가시적인 역할을 하도록 일본을 격려하여 미일 정치군사협력의 위상을 '극동의 영국'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현실화되고 있는 부시 행정부의 대일정책을 함축하고 있다.

일본은 이미 내용적으로도 미국과 함께 미사일 방어체제 공동연구를 하고 있고, 군사력 장거리 투사능력을 확보하고 있는 중이다.

***한미일 군사력 통합**

양대전쟁전략에 따라 한미일 삼국이 군사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과 동시에 삼국 군사력의 유기적 통합도 진행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Keen Sword합동군사훈련을 한미간에는 Foal Eagle 합동훈련을 따로따로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이 두 훈련이 거의 동시에 진행되므로 삼국군이 유기적으로 운용되는 훈련이 이뤄지는 것이다. 2003년 오키나와 주둔 미 해병이 신속전개훈련을 한 것도 주일미군이 한반도에 투입되는 과정을 원활하게 하는 작업의 일환이다. 이렇게 하여 미국의 양대전쟁전략은 한반도를 대상으로 하여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준비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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