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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진으론 끔찍한 현실 모른다”

김재명의 뉴욕통신 <11> 수잔 손탁의 이라크전쟁 비판

이라크전쟁의 참상은 보도사진과 TV 화면으로 전달된다. 그러나 싸움터에 갇힌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수잔 손탁(Susan Sontag)은 "사람들은 어디까지나 전쟁의 이미지를 볼 뿐, 전쟁을 직접 겪는 이들의 고통을 잘 모른다"라고 지적한다. 이를테면, 공습(空襲) 현장에서 들리는 폭음 소리는 TV 화면으로 전달되는 폭음보다 1천배나 된다는 얘기다.

<사진 1> 수잔 손탁 www.susansontag.com

'행동하는 지성' 손탁은 그 치열한 현실 비판의식으로 현대 미국을 대표하는 여성작가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9.11 사건 뒤 불어닥친 애국주의 바람을 타고 부시 미 대통령이 아프간전쟁을 일으켰던 2001년 10월, 손탁은 <뉴요커>(New Yorker)에 기고한 칼럼에서 "9.11 테러참사에 대해 함께 슬퍼 하지만, 그렇다고 (부시와) 함께 미련해지지는 말자"고 외쳤던 반전운동가다.

손탁은 <뉴요커>의 칼럼에서, 부시 행정부의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 캠페인은 "미국 시민들을 어린애 취급하는 거나 다름없다"(a campaign to infantilize the public)고 비판했다. 9.11 사건이 부시가 말하는 대로 '문명'이나 '자유' 또는 '자유세계'에 대한 '비겁한 공격'이 아니라, 특정동맹국과 관련한 특별한 행동(친 이스라엘정책) 때문에 자칭 초강대국(self-proclaimed superpower)인 미국이 공격당했다는 것이 그녀의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9.11 직후 양심적 지식인들조차 적어도 한동안은 부시에 대한 비판을 삼가고 침묵을 지켰던 터라, 그녀의 용기 있는 글에 대한 (긍정적/ 부정적) 반응은 컸다.

뉴욕 태생으로 올해 만 70세인 손탁은 지금껏 현실참여적인 연극ㆍ영화를 만들어 왔고, 그 자신 암환자로서 투병하면서 쓴 『은유로서의 병』(Illness as Metaphor, 1978년),『사진론』(On Photography, 2001년)을 비롯한 논픽션과 소설들을 발표해왔다.

보스니아내전이 한창이던 1993년, 손탁은 라도반 카라지치(전쟁범죄로 헤이그 국제전범재판소 수배중)의 세르비아 세력에 포위돼 포격을 받던 사라예보에서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의 『고도(Godot)를 기다리며』를 연극무대에 올렸다. 전쟁에 지친 사람들에게 '희망을 가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올해 2월에 손탁이 펴낸 신간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생각하며』(Regarding the Pain of Others)는 전쟁이 우리 인간의 현실 인식에 (특히 사진과 그림이란 이미지를 통해)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가를 살펴보고 있다. 지난 4월 5일(한국시간) 미 공영방송 PBS TV의 시사 프로그램 <지금>(Now) 진행자 빌 모이어스는 최근 미국의 이라크침공 사태를 비롯한 전쟁의 참상에 관한 그녀의 견해를 물어봤다. 아래는 그 요약이다. 필자

***"공습 현장의 실제 폭음은 TV보다 1천배"**

<사진 2> 자살폭탄 공격으로 사망한 하마스 대원의 장례식(팔레스타인 가자) 김재명

빌 모이어스(이하 모이어스)= 지금 이라크에서 한창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전쟁에 대한 당신의 견해를 듣고 싶다.
수잔 손탁(이하 손탁)= 나는 지금껏 보스니아내전을 비롯한 3개의 전쟁을 아주 가까이에서 보았다. 그래서 이즈음의 이라크전쟁은 내게 고통스런 현실을 떠올리도록 만든다. 보스니아 사라예보에서 3년을 보내는 동안 전쟁이 가져다 주는 공포를 기억하고 있기에, 전쟁은 나를 속이 떨리고 가슴 아프게 만든다. 위장마저 오그라든다. 지금 미군 공습으로 죽어가는 이라크 국민들도 그러할 것이다. 폭격 소리를 듣고 겁에 질려 지하 대피소로 달려가는 어린이들을 떠올려 보라. 고통스런 일이다. (그들이 현장에서 듣는 폭격 소리는) 우리가 TV 뉴스에서 듣는 것과는 다르다. 1천 배나 고음(高音)이다. 나는 전쟁영화를 보지 못한다. (전장터에 갇힌 병사들과 민간인들이 겪는 고통스런) 실제상황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모이어스= 수잔, 당신은 저널리스트로서 전쟁을 보도한 적은 없는가.
손탁= 전쟁보도를 목적으로 현장에 간 적은 없다. 전쟁이란 현실에 더 가까이 다가서는 것이 나의 의무라고 여겼기에 갔다. 전쟁이란 참으로 거대한 현실이다. 그렇다고 구경꾼으로 간 것은 아니다. 일을 했다. 보스니아내전 때 사라예보에 갔더니, 그곳 사람들이 나더러 뭘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타이프도 칠 줄 알고, 어린이들에게 영어도 가르칠 수 있고, 병원에서 간호보조원으로 일 할 수도 있고, 연극ㆍ영화를 연출할 수도 있다"고 했더니, 그렇다면 연극을 연출해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사진 3> 보스니아내전으로 파괴된 아파트와 자동차(사라예보) 김재명

모이어스= 한창 전쟁 중에 연극 공연을?
손탁= 우리 인간은 동물이 아니다. 방공호에 숨기만 하고, 식량과 물을 얻으려고 줄을 섰다가 폭격에 죽는 그런 부류의 인간이 돼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Godot)를 기다리며』를 연극무대에 올렸었다. 실제로 나는 몇 발자국 바로 앞에서 폭격이나 총알에 맞아 죽는 사람들을 아주 많이 봤다.(프레시안 애독자 여러분도 기억하듯, 사무엘 베케트의 이 작품은 1969년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고도'가 무엇을 뜻하느냐는 여러 해석이 있지만, 대체로 '희망' 또는 '자유'를 상징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보스니아내전 당시 끝 모르는 전쟁과 적에게 포위된 도시 속에서의 불안한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는 손탁이 연출한 그 연극 공연이 전쟁의 공포로부터 벗어나 한줄기 희망의 빛을 비춰 주었을 것이다: 필자).

모이어스= 독자들이 올해 초에 나온 당신의 새 책『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생각하며』(Regarding the Pain of Others)를 읽고 어떤 점에 대해 생각하길 바라는가.
손탁= 그 책은 전쟁이 우리 인간의 현실 인식에 (특히 사진과 그림이란 이미지를 통해)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가를 살펴본 것이다. 나의 독자들이 전쟁이란 얼마나 끔찍하고 심각한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길 바랄 뿐이다. 국가가 일으키는 전쟁이란 불가피한 것이 아니다. 가장 끔찍한 것은 전쟁이 우리 주변에서 늘 일어나는 일상적인 일이 돼버렸다는 점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전쟁문화(culture of war)라는 게 자리잡은 모습이다.

<사진 4> 아프간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거리에 구걸 나선 여인들(카불) 김재명

모이어스= 당신의 새 책에 나오는 끔찍한 이미지들을 보면 전쟁은 멈춰야 한다고 보는데,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못하다. 왜 전쟁이 멈추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손탁=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TV나 신문에서 전쟁이란 끔찍한 이미지를 보면, 전쟁을 미워하게 된다. 그러나 전쟁이 터져도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를 구경꾼이라 여긴다. 전쟁에 끼여들어 죽지도 않을 뿐더러, 남을 죽이지도 않기에 죄가 없다고 여긴다. "전쟁은 참으로 소름 끼치는 것이니까..."하며 TV 채널을 다른 데로 돌릴 뿐이다. 나는 아침마다 <뉴욕 타임스>를 열심히 본다. 이라크전쟁 관련기사들과 사진들을 본다. 겁에 질린 아이를 안고 있는 이라크 여인, 부서진 집들, 미국 병사들...그런 사진들을 날마다 보면서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여기 미국이란 요새(fortress) 안에 있고 그래서 안전하지만, 저들은 전쟁터에 있구나..." 문제는 전쟁의 끔찍한 이미지들이 전쟁을 멈추도록 만들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부시의 슬로건은 매우 음흉"**

모이어스= 당신은 2001년에 펴낸 『사진론』(On Photography)에서 "사진을 보고 (영향을 받아) 행동에 나서지 않는 한 사진은 무감각하다"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이라크전쟁 관련 사진들을 보고 우리가 뭘 해야 한다고 보는가.
손탁= 정치를 우리의 일상적인 삶 속에 끌어넣어야 한다고 본다. 지금 부시행정부는 "우리 미국 시민들의 의무는 부시의 전쟁을 지지하고 뭉쳐 일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내가 보기에 이는 매우 음흉한 슬로건(sinister slogan)이다.

<사진 5> 코소보전쟁으로 사망한 코소보해방군들의 무덤 김재명

모이어스= 현재 미국에는 애국주의(patriotism)가 여론의 큰 흐름인 양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손탁= 맞는 말이다. 그래서 애국자라면 부시 행정부를 따라가야 하는 것처럼 돼있다. 그러나 나 자신은 이라크전쟁을 지지하는 '애국자'들 못지 않게 '애국자'라고 여긴다. 내가 전쟁을 반대하는 것은 그만큼 미국을 아끼기 때문이다.

모이어스= 사진을 비롯한 강렬한 이미지들은 우리의 기억 속에 남기 마련이다. 수잔, 당신에겐 어떤 사진이 가장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가.
손탁=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5년에 찍은 나치 강제수용소 사진들이다. 당시 나는 12살의 소녀로서 그 폭력적인 사진들을 보고 대단한 충격을 받았다. "어머나, 어떻게 같은 인간끼리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가 있을까..." 자라면서 나는 우리 인간이 아주 사악한 짓을 저지를 수도 있는 게 현실이라는 걸 깨달았다. 우리는 이런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모이어스= 그런 사진들을 지금도 이 세상에서는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음을 일깨워준다는 얘기인가.
손탁= 맞다. 지금 이라크전쟁에서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사담 후세인이 끔찍한 독재자란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라크 국민들은 전쟁으로 엄청난 고통을 받고 있다. 지구촌의 많은 사람들도 (이라크전쟁 관련 사진들을 보고) 마음의 상처를 입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TV나 신문 등 활자매체에서 보는 전쟁의 이미지와 실제 전쟁상황 속에 갇힌 사람들이 겪는 고통 사이엔 큰 차이가 있다. 멀리 미국이란 요새(fortress) 안에 앉아 있는 우리는 이라크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 체험하지 못한다. 그래서 (보도사진이 주는 이미지만으로는) 그 실상이 어떠한지,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지, 제대로 상상하기 어렵다.

관련 링크 http://www.susansonta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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