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미국의 대 독일 선전포고에 반대한 연방의회 의원은 상하원 합쳐 49명이었다. 이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다음 선거에서 탈락했다. 그중 하나가 최초의 여성 하원의원 재닛 랭킨(1880-1973)이었다. 랭킨은 이듬해 공화당의 상원의원 후보지명을 놓치고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랭킨은 1940년 선거에서 전쟁 반대를 공약으로 내걸고 다시 하원의원이 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대 일본 선전포고에 반대표를 던지고는 의회를 떠났다. 상ㆍ하원을 통틀어 유일한 반대표였다. 그가 다시 의사당 앞에 나타난 것은 1968년 1월. 87세의 랭킨을 따라 베트남전쟁 반대 시위에 나선 5천 명의 여성은 스스로를 ‘랭킨 부대(Janette Rankin Brigade)’라 불렀다.
사회가 일단 전쟁분위기에 빠지면 여론은 극단으로 달리게 되고 민주주의 원리는 위축되거나 심하면 마비된다. 이 분위기에 거스르는 정치인은 살아남지 못한다. 그래서 국가지도자가 독재를 강화하기 위해, 또는 실정을 은폐하기 위해 일부러 전쟁을 일으키려 드는 것은 아득한 옛날부터 있어 온 관행이다.
3권 분립이 된 근대국가에서 전쟁의 결정은 입법부가 맡는다. 전쟁상황은 행정부의 기능을 극대화하고 국론의 분열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입법부의 견제가 미약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 돌입하느냐 여부를 마지막으로 민주적 절차에 따라 판단하도록 하기 위해 선전포고 여부를 입법부에서 심의하는 것이다.
미국도 물론 선전포고의 권한이 의회에 있다. 그런데 미국은 2차대전 이후 숱하게 전쟁을 벌이면서 정식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을 벌인 일이 없다.
유엔 결의에 따라 출병하든지, 이런저런 방위조약에 의거해 병력을 동원하든지, 행정부의 재량권을 최대한 활용해 어떻게든 전쟁상황을 만들어 놓은 다음 군사행동에 대한 의회의 승인을 받는다. 이미 전쟁이 벌어져 병사들이 긴박한 처지에 놓여 있는 상황에서 승인을 반대한다는 것은 의원들에게 극히 어려운 일인 만큼, 이런 식의 승인은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냉전의 긴장상태로 인해 늘어난 행정부의 재량권이 베트남전쟁의 확전에 남용되는 데 불만을 품은 의회는 1973년 의회의 견제를 강화하는 ‘전쟁권법’을 의결했다. 닉슨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지만 압도적 찬성으로 재의결, 법안을 관철시켰다.
전쟁권법은 행정부의 재량권 남용 의혹이 있을 때 의회가 이를 심의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을 보장하는 법이다. 그러나 이 법의 실효성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 걸프전과 코소보 사태의 전개과정에서 느낀 소감이다. 행정부가 전쟁을 기정사실화하는 노력에 거대언론까지 동조하는 판국에는 의회가 견제의 기회를 잡기 어렵고, 의원 자신들도 사회의 전쟁분위기에 거스르는 정치적 모험을 회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1999년 5월 코소보 사태가 가열되어 있을 때 공화당의 톰 캠벨 하원의원이 전쟁권법에 의거해 사태의 포괄적 심의를 제안했다. 공화당 지도부에서까지 자제를 요청했지만 캠벨은 제안을 강행했다.
심의를 강요당한 하원은 모순된 결의를 끌어냈다. 유고슬라비아 폭격을 승인하지 않지만, 진행중인 폭격의 중지를 요구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국가와 국민이 직접적 위협을 받지 않는 상태라도, 전쟁이 일단 진행중일 때 의회의 견제력은 이렇게 미약해지는 것이다.
6.25 이후 대한민국은 베트남과 동티모르에 이어 세 번째 해외파병을 검토하고 있다. 동티모르의 경우는 유엔 평화유지군 참여였으므로 보편적 명분이 있었고, 실질적으로 전쟁도 아니었다. 지금 검토되는 이라크 파병은 유엔의 승인 없이 미국이 벌인 전쟁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베트남 참전과 같은 범주의 전쟁행위가 될 것이다.
공병대와 의무대에 국한한다고 하지만, 유엔이 주관하는 지원사업이 아니라 미군 중심의 작전에 편성되는 것이다. 후방근무라 하더라도 게릴라전의 피해, 그리고 영국군이 톡톡히 겪고 있는 미군의 오폭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미국을 편들어 이라크 침략을 돕는 행위이기 때문에 미국의 이라크 침략을 반대하는 국가들과 세계인들의 반감과 적대를 불러들이는 결과를 피할 수 없다.
전쟁을 편리하게 여기는 것은 행정부의 속성이다. 노 대통령 지지자들 중에도, 반대자들 중에도, 대통령의 파병 결정에는 겉보기와 다른 깊은 속셈이 있다고 믿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쓸데없는 기대요, 쓸데없는 의심이다. 행정부 책임자로서 대통령의 결정은 파병일 뿐, 더도 덜도 아니다. 5년의 임기 동안 최선의 임무 수행을 위해 내린 결정이다.
국회가 입법부로서 자기 역할을 수행할 차례다. 전쟁에 관해서는 최고의 결정권이 대통령 아닌 국회에 있다. 대통령이 행정부의 원만한 국정 수행을 위해 일차적 판단을 내렸다면, 국회는 이 파병이 대한민국의 국체와 위상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포함해 넓은 시야를 가지고 최종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
국회는 민의를 대변하는 기관이고 국회의원은 민의를 대변하는 대표자다. 국민의 압도적 반전 분위기 속에는 일시적 거품도 얼마간 있겠지만 최대한 정확하게 민의를 파악해 의결에 반영하는 것이 국회의원의 임무다. 대통령의 진의를 따지고 미국 눈치 살피기에 바빠 민의 살피기에 소홀한 의원들은 민의에 관계없이 그 자리를 얻었다고 믿는 모양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민의에 관계없이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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