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의 양대 권위지로 꼽힌다. 1970년대 워싱턴포스트는 워터게이트 스캔들 특종보도로, 뉴욕타임스는 베트남전의 비밀을 담은 펜타곤페이퍼 폭로보도로 권력에 굴하지 않는 자유언론의 표상으로 군림해 왔다.
그러나 이번 이라크전쟁에 관한 두 신문의 보도 태도는 확연한 대비를 보인다. 뉴욕타임스가 지난 9일 사설과 칼럼 등을 통해 미국의 즉각 개전에 대한 반대입장을 명확히 한 반면, 워싱턴포스트는 이라크전쟁을 위한 부시 행정부의 나팔수로 전락했다는 따가운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20여년전 워싱턴포스트 에디터를 역임한 언론인 윌리엄 그라이더(Greider)는 최근 진보적 시사주간지 더 네이션(The Nation) 인터넷판에 실린 글을 통해 워싱턴포스트의 전쟁 선동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현재 네이션의 국내담당 기자로 활약하고 있는 그라이더는 '워싱턴포스트 전사들(Washington Post Warriors)' 제하의 이 글에서 이번 전쟁은 미국이 피할 수 없는 전쟁이 아니라 미국 스스로 선택한 전쟁이며, 미국의 언론매체 중에서도 워싱턴포스트가 단연 전쟁 선동에 앞장섰다고 지적하면서, 워싱턴포스트는 전쟁에 따른 대규모 유혈참화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최근 들어 독자들의 거센 비판에 직면한 워싱턴포스트가 반성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아직 진정한 반성은 아니라고 지적하면서 앞으로 반전운동에 보다 큰 관심을 기울일 것과 미국정부에 대한 비판정신을 회복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의 최근 상황은, 제아무리 권위 있는 언론이라 할지라도, 언론이 정치권력에 맹종하기만 할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될 것인지를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라 할 수 있다. 반면교사의 사례로 그라이더의 이 글을 소개한다. 편집자
***'워싱턴포스트 전사들(Washington Post Warriors)'**
한 세대 전 내가 워싱턴포스트에서 일하던 때, 우익진영 주변에선 우리를 종종 ‘포토맥강의 프라우다’(포토맥강은 워싱턴시를 흐르는 강이며 프라우다는 옛 소련 공산당 기관지로 워싱턴포스트가 미 정부의 기관지라는 의미: 역자)라고 불렀다. 당시 기자들은 그 말을 웃어넘기기도 했으나 불쾌해하기도 했다. 우리는 스스로를 미국 정부의 대변인으로는 생각하지 않았으며 정부도 워싱턴포스트를 그렇게 보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당시의 그 불명예스런 호칭이 근거 없는 것은 아니었다. 워싱턴은 미 연방정부에 생계를 의존하는 도시(company town)로 워싱턴포스트 기사를 통해 정부의 숨겨진 의도를 알아내려는 일단의 워싱턴판 크레믈린학(Kremlinologists) 연구자들이 있다. 이 신문이 진실을 보도하든 거짓을 보도하든 사실상 그 보도는 모든 사람들의 정치적 판단에 불가피하게 영향을 미친다. 베트남 전쟁 당시 린든 존슨 전 대통령은 워싱턴포스트의 주필(editorial page editor)에게 워싱턴포스트의 지원은 2개 사단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었다.
우파들이 연방정부를 장악하고, ‘워싱턴포스트 사단’이 다시 전쟁을 위해 배치된 지금 프라우다라는 비유는 아이러니칼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의 사설면들은 선제공격의 열기에 몰두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부시의 반복적인, 그리고 럼스펠드의 날 세운 발언들을 옹호하고 있다. 전투준비가 완료된 비평가들은 어머니의 카페트 위에서 양철 병정들을 갖고 노는 어린 아이들처럼 확신에 차서 지독한 공격을 퍼붓고 있다. 의견을 달리하는 목소리들은 조소당하고 있으며 머뭇거리는 동맹국들은 집중 포화를 맞고 있다.
그러나 워싱턴판 크레믈린학 연구자들은 또한 워싱턴포스트의 뉴스칼럼에서 어떤 애국적 순종을 목격하기도 한다. 이는 아마도 9.11 사태 이후 고조된 애국심 때문일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라크를 공격해야만 하는 사실적 근거의 검증은 제쳐두고 이라크 공격을 둘러싼 부시 행정부 내부의 사소한 권력투쟁에 관한 이야기를 기초로 보도하고 있다. 콜린 파월이 국방부 매파들의 행동을 연기시키고 부시 대통령을 설득시킬 수 있을 것인가? 럼스펠드는 CIA를 채찍질해 전선에 나서게 할 것인가? 인사이드 리포팅(권력핵심부에 의존한 이너서클에 대한 보도)의 문제점은 인사이더들이 맞닥뜨리지 싶지 않은 분명하고도 핵심적인 문제들을 비껴가기 쉽다는 것이다. 도대체 사담 후세인이 오사마 빈 라덴, 혹은 9.11과 정확하게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것인가? 대부분의 보도들은 이처럼 핵심적이며 현재 사태와 관련이 있는 문제들을 파헤치는 대신 (미국측의) 전쟁 계획과 사담의 많은 범죄들에 집중한다.
우리는 워싱턴이 이라크 전쟁에 대해 고안하고 있는 전격전 전략에 대한 수많은 보도를 읽고 있으나 이상한 생략들이 눈에 띈다. 최근 오사마 빈 라덴의 메시지가 담긴 테이프가 보도됐을 때 워싱턴포스트는 그가 사담을 '이단자'라고 비난한 부분은 무시했다. 또 빌 클린턴의 국무장관이었던 매들린 울브라이트나 앤서니 지니 예비역 장군같은 유명인사들의 전쟁 반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로 취급했다. 몇몇 인정할 만한 예외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메이저언론들은 전쟁을 향한 행렬에 끼어 끌려 가고 있다. 그중 워싱턴포스트는 단연 눈에 띌 만큼 매우 애국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언론, 그리고 겁먹은 민주당이 비판적 도전정신을 보여주지 못함으로써 대중들에 대한 여론조작은 훨씬 쉬워졌다. 끊임없는 반복적 주입을 통해 부시 대통령과 그의 팀은 대중선동(propaganda)의 엄청난 위업을 이루어냈다. 9.11이 촉발한 상처와 분노를 그 가해자(알 카에다)가 아닌 다른 적(이라크)에게 돌려 분풀이해야 한다고 많은 미국인들을 설득해낸 것이다. 뉴욕타임스와 CNN 뉴스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금 미국인들중 42%가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에 대한 공격은 사담 후세인의 소행이라고 믿고 있다. ABC 뉴스 여론조사 결과는 55%가 사담 후세인이 알카에다에 직접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사담 후세인이 9.11 테러의 원흉이므로 그를 잡으러 가자는 것이다. “9.11을 기억하라”는 외침은 이제 1898년 스페인과의 전쟁이나 1964년 베트남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한 선동과 같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지난 한 달 동안 워싱턴포스트의 보도는 나름대로 비판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선전선동의 허구를 깨뜨리기 시작했으며 각종 주장간의 모순점을 파헤치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이 훨씬 더 오래전에 시작됐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어쨌거나 많은 사람들이 이같은 나의 관측에 동의하고 있다. 아마도 편집간부들과 기자들은 워싱턴포스트 독자들을 포함한 공중(public)의, 예기치 못한 분노에 흔들리고 있는 것 같다. 반전시위에 대한 워싱턴포스트의 묵살과 왜곡, 그리고 폄하는 노도와도 같은 항의 이메일의 쇄도를 촉발시켰다. 한 편지는 “당신들의 협소한 보도는 전쟁에 반대하는 미국 주류사회의 사람들을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로 묘사하며 몰아세우고 있다”고 불평했다.
전 국제담당 에디터이자 현재 워싱턴포스트 옴부즈맨인 마이클 제틀러(Getler)는 편집진들에게 보내는 자신의 메모를 통해 많은 독자들의 불만에 동조했다. 국내외에서 수백만명이 전쟁 반대를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오고 있는 마당에, 한 칼럼니스트가 "세상 물정 모르는 좌익(irrelevant left)”이라고 조소한 것처럼, 이들을 무시하는 것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워싱턴포스트의 미디어비평가 하워드 커츠(Kurtz)는 언론들의 보도경향이 호전적이고 회의적인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중요한 것은 시기이다. 전쟁에 찬성할 것인지 반대할 것인지를 언론을 통해 전면적으로 토론해야 할 시기는 이미 오래 전에 지나갔다."
하지만 평소 고분고분한 태도를 취했던 커츠는 이 비판에서 자신의 고용주(워싱턴포스트)는 제외시켰다.
워싱턴포스트라는 신문 전체의 불안감은 지난 2월 27일자의 길고도 반(半)고백적인 사설을 통해 확인됐다. 포스트는 이 사설에서 분노한 전쟁 반대자들을 충분히 인정하는 듯 하면서도 다시 한번 전쟁을 정당화하려고 노력했다. 그 전에 비해 달라진 것은 오만한 확신이 상당 부분 누그러졌다는 점이다. 워싱턴포스트 논설진의 방어 논리의 핵심은 “이것 봐, 우리는 항상 이라크를 공격하고 사담 후세인을 축출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어. 그러니까 최소한 우리가 일관성을 유지했다는 점만큼은 인정을 해줘야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 사설은 아직도 부시의 궤변에 가까운 감정적 논리를 반복하고 있다. 세계는 위험한 곳이다, 따라서 후세인을 제거한다면 테러로부터 조금을 안전해졌다는 느낌을 갖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같은 주장의 생략과정에서 나타난 논리의 비약을 주목하라. 포스트의 편집간부들은 심지어 플로리다와 뉴욕, 워싱턴의 탄저균 편지 소동까지도 인용했다. 미 국내의 탄저균 편지까지 후세인을 비난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수많은 독자들은 마음이 편치 않다.
워싱턴포스트가 교묘한 핑계를 대고 자신의 책임을 피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전진 배치된 자신의 '사단'을 뒤로 후진시키기에도 너무 늦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번 전쟁을 부추겼다(It sold this war). 이 전쟁은 피할 수 없었던 전쟁이 아니라 미국이 선택한 전쟁이다. 만일 미국이 대량살상의 장본인이 된다면 워싱턴포스트는 유혈 참극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폭탄투하와 함께 반전운동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이 전쟁에 대한 그들의 반대는 갈수록 뉴스 보도의 주요한 일부분이 될 것이다. 기자들과 편집간부들에게는 아직도 어려운 질문을 던질 기회가 남아 있다. 또한 미국의 식민지배자가 이라크에 약속한 민주주의를 실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해도 충격을 받은 것처럼 굴 필요도 없다. 나는 전체로서의 미국인이 자신들의 순결함이 상처받았다는 느낌마저 잃어버리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다. 아마도 이번 전쟁을 벌인 전사들(정치지도자들)에 대한 언론매체들의 '애국적' 존경심도 상당 부분 감소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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