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논리와 의지로 하겠다는 건지
먼저 묻자. 대통령 이명박은 투자자 국가 제소를 다룬 ISDS가 우리에게 나쁜 제도라고 믿는가?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무슨 논리와 의지로 이 사안을 가지고 미국과 재협상 한다고 약속하고 다니는가?
그 약속의 실현 여부를 떠나서, 먼저 이 협정의 내용에 문제가 있다고 절감해야 협상을 하든말든 할 게 아닌가? 민주당도 문제가 있긴 마찬가지다. 재협상 약속 문서로 받아오라, 하기 전에 대통령이 ISDS는 상당히 불평등한 조항이다, 라고 천명하게 하는 게 순서 아니었던가?
아무 문제가 없다고 믿고 있는 대통령이 재협상을 한다한들 어떤 원칙을 협상 실무자에게 지침으로 내릴 것이며, 얼마만한 강도를 가진 의지로 이걸 밀어붙인단 말인가? 이것도 없는 채로 재협상 운운은 기만이다.
할 의지도 없고, 내세울 논리도 없고, 그토록 절박하다면 당장에라도 해야 할 판인데 그렇지도 않으니 일단 통과시켜놓고 보자는 속셈이라고 비판해도 할 말 없는 게 아닌가?
우린 이미 이명박의 식언을 밥 먹듯이 경험해왔고, 일단 저질러놓고 뒷수숩 하지 않은 채로 우리사회의 망각에 기대어 정치를 해온 것도 숱하게 겪어온 터다. 그런데 왜 자길 믿지 않느냐고 한다. 믿지 않은 쪽이 책임인가, 믿을 수 없게 해놓은 쪽이 책임질 일인가?
한미 FTA 문제점 속속 드러나
한미 FTA의 문제되는 내용은 계속 폭로되고 있는 중이다.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면 알수록 이런 불평등한 협정을 어떤 면목으로 해놓았는지 기가 찰 일이다. 협정 내용도 내용이지만, 현재 미국이 비틀거리면서 자신들의 위기탈출을 위해 백방으로 타자를 희생시키며 자기 살길을 찾는 판에, 그 덫에 자진해서 걸려들자고?
미국은 지금 한국은 한미 FTA로, 일본은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TPP: Trans-Pacific (Stategic Economic) Partnership)으로 묶어 놓고 중국 포위 전략을 구사하려는 상황이다. 이런 틀에 갇혀버리면 우리는 동북아 정세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길에서는 점점 더 멀어질 뿐이다.
큰 틀이 변화하고 있는데 협정의 세세한 내용에까지 얽매일 여력도 없는 지경이다. 이 협정의 기본목적에 대한 파악만 분명해지면, 입장정리는 명료해진다. 미국과 중국, 일본과 함께 동아시아의 새로운 구도 재편성에 주도적으로 위치를 확보해야 하는데 이건 주도권 자체를 헌납하는 방식이 아닌가?
아무래도 이렇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일차적으로 한미 FTA 비준반대로 총력을 모아야 한다. 2차적으로는 최근 세계정세 전반에 걸친 대대적인 검토와 토론이 펼쳐져야 한다. 이걸 근간으로 해서 우리의 대전략의 대강을 체계적으로 세워야 한다. 셋째, 이렇게 한 결과를 가지고 우리 사회 전반의 논의를 심층적으로 확대시켜나가면서 이 나라의 진로를 모색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한미 FTA 통과가 시간이 급할 것 없고, 보다 충실한 대미 관계의 틀을 짜고 새로운 방식의 협정을 강구한다고 해서 밑질 것 하나 없다. 시간이 갈수록 한-미 FTA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쪽만이 시간이 급하다.
우리사회의 공적 이해와 그걸 펼쳐낼 수 있는 기회, 공간을 도처에서 제약하고 장악해 들어올 미국 자본의 한국 경제 구조조정기획이 관철되도록 하는 한-미 FTA는 무력화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공공성을 지켜내는 민주주의의 파괴를 겪게 될 것이다. 민주주의와 자본의 사적 이해는 언제나 충돌한다.
한미 FTA는 이 나라 민주주의의 장래가 달린 문제다. 민주주의는 그 어떤 국제적 조약으로도 제소 당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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