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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북한엔 제재, 파키스탄은 방치하는 이유는?

'북-파' 핵거래에 대한 미국의 이중잣대-NYT 보도

다음은 북한과 파키스탄간의 비밀핵거래에 관한 뉴욕타임스 24일자 기사('In North Korea and Pakistan, Deep Roots of Nuclear Barter')의 주요 내용이다.

이 신문의 데이비드 생거 기자가 지난 3주간 한국, 미국, 파키스탄의 전ㆍ현직 관리들과 전문가들을 인터뷰한 결과 작성된 이 기사는 지난 10월 중순 불거진 '북한 핵개발 재개 시인' 사태에 관한 가장 포괄적인 글이다.

기사에 따르면 북한과 파키스탄은 이미 지난 93년부터 핵협력을 모색해 왔으며 97-98년경 핵거래가 본격화됐다.
또 핵개발 재개의 결정적 증거가 잡힌 것은 올해 7월 미 첩보위성에 의해서였다. 파키스탄의 C-130 수송기가 북한의 한 공항에서 탄도미사일 부품을 싣는 장면이 포착됐다는 것이다.

이 신문은 그러나 북한과 파키스탄의 비밀 핵거래는 부시행정부에게 골치 아픈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파키스탄의 도움으로 우라늄농축을 추진하고 있는 북한에 대해서는 중유지원 중단 등의 제재조치를 가한 반면 북한의 도움으로 미사일 능력 향상을 꾀하고 있는 파키스탄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제재조치를 가하지 않는 이중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신문은 워싱턴과 서울 관리들의 말을 빌어 부시 행정부가 대파키스탄 제재에 나서지 못하는 것은 지난해 9.11사태 이후 파키스탄이 미국 주도의 대테러전쟁의 주요한 동맹국으로 나섰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심지어 미국 관리들은 파키스탄이 북한의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에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에 대해서도 언급을 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사는 이어 이번 핵위기의 해법은 외교적 방법 밖에 없음을 각국 관리들이 인정하고 있다면서 북한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파키스탄에 대해서는 은밀하게 외교적 해결 방식을 추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편집자


***'뿌리깊은 북한과 파키스탄의 핵거래'/NYT, 24일자**

지난 7월 미 정보기관들은 파키스탄의 수송기 한 대가 북한의 한 공항에 착륙하여 비밀리에 북한의 가장 중요한 수출품인 대륙간 탄도미사일의 부품들을 싣는 것을 추적했다.

미국의 첩보위성이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작업은 대담한 짓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을 설명한 첩보담당자들은 이런 수송행위 자체가 미국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파키스탄의 그 항공기는 미제 C-130수송기였던 것이다.

그 수송기는 부시 대통령에게 작년에 알카에다의 테러분자들을 토벌하는 데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말했던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 휘하의 군부대 소속이었으며, 부시 행정부가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불량국가로 낙인찍었던 파키스탄을 새로운 우방국이라고 치켜세우는 것은 바로 파키스탄이 테러소탕에 협력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미국과 파키스탄간의 새로운 협력관계가 맺어진 뒤에도 수차례에 걸쳐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조용히 파키스탄의 항공기들이 북한과 치명적인 거래를 행하는 것을 주시했다. 첩보기관들은 아직도 이 거래의 전모를 밝혀내지는 못했는데 그러나 북한이 무샤라프 장군에게 인도의 모든 전략적인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는 핵 무기를 제조하는데 필요한 미사일 부품을 제공한 것만은 분명하다.

이렇게 완전히 맞아떨어진 이해관계로 파키스탄은 북한에게 많은 가스원심분리기 설계기술과 최근의 핵무기 프로젝트에 필요한 고농축 우라늄 생산에 필요한 기계들의 상당부분을 제공하였는데, 이 핵무기 계획은 한국과 일본, 그리고 동북아시아에 주둔중인 10만명의 미군들을 위협에 처하게 할 의도를 가진 것이였다.

미 CIA는 미 의회에 보고하기를 금년 여름에 발각된 북한의 우라늄농축프로그램은 2-3년 내에 핵무기를 만드는데 충분한 물질을 생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에 CIA는 북한이 아마도 원자력발전소에서 핵무기 한 두 개를 만드는데 충분한 양의 플루토늄을 추출하였을 것으로 추정했는데, 그 프로그램은 1994년에 미국과 대립하면서 중단됐다.

그러나 CIA는 세계에서 가장 빈곤하고 가장 고립된 국가인 북한이 어떻게 이런 우라늄 무기를 어떻게 생산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지난 3주동안 워싱턴, 파키스탄 그리고 한국의 수도 서울의 당국자들과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에 의하면 북한과 파키스탄의 관계는 미국과 미국의 아시아우방국들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뿌리가 깊고 위험한 수준으로 보인다.

이런 사실들은 미국과 무샤라프 정부와의 불편한 협력관계의 본질에 대해 골치 아픈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당국자들과 전문가들은 무샤라프가 탈레반을 축출하고 알카에다 지도부를 소탕하는 데 미국 편을 들어준 다음에도 파키스탄의 비밀스런 핵 연구소는 북한과의 비밀스런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불안정한 이슬람국가와 실패한 공산주의 국가가 서로 상대방이 가진 전문기술을 필요로 하는 동반자 관계인 것이다.

월등한 인도의 군사력에 맞서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있는 파키스탄은 수년동안 미국이 주도하는 제재를 받아왔으므로 북한으로 기운 것이다. 북한 역시 러시아와 중국으로부터 점점 소원해지면서 자국내에서 얼마든지 공급할 수 있는 몇 안돼는 물자중의 하나인 우라늄을 이용한 핵무기 개발에 성공한 파키스탄을 흉내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북한에 대해서는 지난 두 달 동안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라고 엄청난 외교적 압력을 취하고 중유공급도 중단했지만 파키스탄이나 다른 국가들의 역할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결코 거론하지 않았다.

미국과 한국의 당국자들은 익명을 전제로 이러한 이유를 부시 행정부가 알카에다를 찾는 일 특히 오사마 빈 라덴이 아직 살아서 아마도 파키스탄 땅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에서 파키스탄의 협조가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연방법은 핵확산을 범한 국가들에게 가혹한 경제제재를 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러한 경제제재 조치를 발동하지 않았다. 반대로 국가안보를 이유로 이러한 제재조치의 발동을 유예한다는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미국은 지난 1998년 파키스탄이 행한 일련의 핵실험에 대해 제재조치를 부과했으나 부시대통령은 지난 해 이를 해제하였다.

백악관 당국자들은 비밀 분류된 정보가 노출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북한 핵개발과 관련한) 파키스탄의 역할에 대한 논평을 거부했다. 다만 그들은 무샤라프 장군이 당초 북한과의 관련설을 부인하고 난 뒤에 콜린 파월 국무장관에게 앞으로는 그런 일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답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무샤라프 장군은 '그런 교류는 이제 일어나지 않을 것을 400% 확실하게 약속한다'고 말했다"고 파월 장관은 지난달 말에 열린 브리핑에서 말했다. 지난달에 북한이 시인한 핵문제에 파키스탄이 얼마나 공헌했는지에 대한 끈질긴 질문공세에 파월 장관은 웃으면서 "우리는 과거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보관계자들은 워싱턴이 7월에 미사일 수송문제를 항의한 이후 북한과 파키스탄의 교류증거를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 사건조차도 C-130수송기가 북한의 미사일 관련 부품을 실은 것은 확실하지만 파키스탄측의 핵 관련 자재들을 실어왔는지는 분명치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미국과 아시아의 당국자들은 파키스탄이 북한과의 관계를 단절했다고는 믿지 않으며, 무샤라프 장군이 그 거래를 통제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정보보고서를 검토한 한 미국의 관리에 의하면, 전면적인 우라늄 농축을 개시하기 위한 북한의 대대적 추진노력은 여기저기에서 파키스탄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그들은 파키스탄이 공급을 중단한다 하더라도 북한이 이런 노력을 중단할지는 의심스럽다고 보고 있다.

"김정일의 시각에서 볼 때 북한과 이라크의 차이점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북한과 오랜 접촉을 해온 경험이 있는 한 미국당국자는 "사담은 핵무기가 없다. 그에게 무엇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라"고 대답했다.

파키스탄이 북한과 관계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그들은 1993년에 결정적으로 밀착되었는데 미국이 북한에게 영변의 거대한 핵시설을 개방하라고 강요했기 때문이었다. 영변시설은 쓰고 난 핵연료에서 폭탄을 제조할 수 있는 공장이 틀림없었다.

지금 이라크에서 핵사찰팀을 이끌고 있는 한스 블릭스가 이끄는 핵사찰단의 입국을 그 당시 북한이 거부했을 때 빌 클린턴은 유엔에 제재조치를 요구했고 미 국방부는 만약 북한이 핵연료봉을 제거하고 플루토늄 핵폭탄을 만들기 시작할 경우에 그 공장을 공격하기 위한 비상계획안을 작성했다.

그런 대결상황에서 당시 파키스탄의 부토 총리는 북한의 수도 평양에 도착하였다. 그때는 12월말로 매우 추운 날씨였으나 북한 정부는 잘 훈련된 수만명의 시민들을 동원하여 길거리에서 부토 수상을 환영했다. 국빈만찬에서 부토여사는 미국이 파키스탄과 북한에 부과한 제재조치에 대해 불평하였다.

"파키스탄은 핵확산금지에 가입해 있다"고 그녀는 그 당시 발표된 성명서에서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국가들은 "핵기술을 평화적인 목적으로 경제와 사회발전을 위해 획득하고 개발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부토여사 일행은 북한의 노동미사일 계획과 함께 떠났었다고 전, 현직 파키스탄 관리들이 밝혔다.

파키스탄 군부는 오랫동안 노동미사일계획을 탐내왔는데 1998년 4월 드디어 파키스탄은 노동형 미사일을 가우리라는 이름으로 실험에 성공했다. 가우리 미사일의 사거리 1천마일은 파키스탄의 핵탄두를 싣고 인도의 대부분 지역을 사정거리에 들 수 있게 됐다.

파키스탄의 한 전직 고위관리는 인터뷰에서 부토정부는 비밀 계좌를 통해 이 비밀 미사일프로그램에 "상당한 금액"을 북한에 지불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다른 사건들이 개입했다.

부토여사의 북한 방문 후 몇 달이 지나서 클린턴 행정부와 북한은 영변의 모든 핵 활동을 동결하기로 합의했으며, 국제사찰단들은 아직도 년중 영변지역에 머물고 있다.

그 대신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들은 북한에 계속해서 연료를 공급해주면서 마침내 북한내 전력생산을 위한 2기의 경수원자로를 제공하기로 하였다. 그것은 전기가 부족한 북한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며, 밤에 촬영한 위성사진에 의하면 전기가 휘황찬란한 한국에 비해 북한은 캄캄한 암흑세계와 같다.

그러나 3년 이내에 김정일은 그러한 합의에 불만이 커지면서 핵발전소가 제공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졌다. 김정일은 원자력발전소에 필요한 핵심부품의 제공에 앞서 국제원자력기구의 광범위한 사찰의 착수를 거부하였다.

미국 정보기관은 1997년 혹은 98년에 김정일은 탐지당하지 않고 원자탄을 만들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고 이제 결론지었다. 김정일은 그 해답의 일부를, 이란ㆍ예멘ㆍ시리아ㆍ이집트 등과 함께 북한의 미사일 부품의 고정고객인 파키스탄에서 찾게 되었다고 미국의 군사당국자들은 말했다.

네덜란드에서 가스 원심분리기 설계도를 훔쳤던 파키스탄의 핵폭탄의 아버지인 칸(A. Q. Khan) 박사는 여러번 북한을 방문했었다. 이 방문은 언제나 비밀리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여러 가지 사안들이 이제 분명해졌다. 파키스탄은 북한에 지불할 경화가 바닥이 나고 있으며 북한 역시 마찬가지로 어려운 상황이다. 북한은 핵무기 없이는 궁극적으로 경제적으로 막강한 한국에 흡수되거나 혹은 미국의 군사력에 붕괴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1997년 혹은 1998년에 김정일과 군당국은 고농축우라늄을 이용한 원자탄을 개발하기로 결정하였는데 고농축우라늄 과정은 느리고 힘들지만 숨기기가 비교적 쉽기 때문이다.

그들은 간혈적으로 워싱턴당국과 관계개선을 위한 회담을 하면서 핵개발을 계속했다. 클린턴 행정부 말기에 북한은 올브라이트 국무장관과 협상을 하면서 북한의 미사일수출을 제한하는 조건으로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해제하고 미국의 테러지원국가 명단에서 북한을 삭제하며 양국간 외교관계 수립을 위한 회담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 협상을 성공하지 못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심지어 임기말 마지막 방문국으로 북한선정을 고려하기도 했었지만 북한이 진정한 양보를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우려하는 보좌관들에 의해 좌절되었다. 과거 수주 동안의 핵관련 자백으로 인해 이들 보좌관들이 클린턴을 곤혹스러웠을 상황에서 구해준 것으로 생각된다.

"유감스럽게도 북한은 변하지 않았다"고 이 방면에 오랜 경험을 지닌 한 서방당국자가 말했다. "핵카드가 무엇보다도 큰 힘을 발휘한다고 믿고 있는 그들은 결코 핵을 포기할 수 없었다."

한편, 미국 정보기관들은 북한이 핵프로그램을 다시 시작하고 있는 중이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1998년에 인공위성들은 거대한 지하 공간을 잡아냈는데 CIA는 이것을 김정일이 두 번째 플루토늄 재처리 공장을 짓는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그들은 잘못 짚었던 것이다 : 미국 관리들이 그 의혹장소를 확인한 결과, 그 지역은 단지 거대한 인공 동굴이었으며 핵관련 장비도 없었으며, 분명한 목적이 드러나지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지하주차장"이라고 한 미국의 정보당국자가 그 당시 농담으로 말했다.

그러나 비밀 농축우라늄프로젝트설은 계속 나돌았다. CIA와 테네시주에 있는 오크리지 국립연구소(the Oak Ridge National Laboratory)는 그 장소를 분석했지만 확정적인 결론을 맺지 못했다.

그러나 힌트들은 있었다. 6번에 걸친 인도의 지하핵실험에 대응조치를 취한 파키스탄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던 1998년 5월에 북한을 방문한 한 서방외교관은 한 이상한 광경을 기억해 냈다. "나는 그 당시 북한 외무성에 있었다"고 그 외교관은 지난 주에 회상했다. 우리 회의가 시작된 지 약 10분이 지나 우리가 상대했던 북한 외교관은 갑자기 큰 미소를 지으면서 파키스탄의 핵실험을 가리켰다. 그들은 모두 고무되어 있었다.

"별다른 제재없이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가난한 국가의 모델이 여기에 있다"

클린턴 행정부가 파키스탄-북한 유착설을 제기했을 때, 당시 부토여사 후임자였던 나와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는 그러한 사실을 부인했다. 무샤라프 장군이 샤리프 정부를 전복시키고 부시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에 한국의 정보기관들은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에 필요한 부품을 사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를 잡았다.

한국정보기관들은 이 정보를 워싱턴에 넘겼다고 한국과 미국의 당국자들이 밝혔다. 그것은 파키스탄에서 사용됐던 가스원심분리기술과 수상하게도 비슷하게 보였다. "내 추측은 파키스탄이 북한에게 유일하게 이용 가능한 동반자였다는 것이다"고 이홍구 전 한국 총리이자 전 통일부장관은 말했다.

파키스탄의 핵프로그램과 관련이 없는 이슬라마바드 퀘이드 이 아잠(Quaid-e-Azam) 대학의 물리학교수인 나야(A. H. Nayya)는 동의하기를 "파키스탄이 청사진을 주었을 가능성이 분명하다. '여기 있다. 너희들 스스로 만들어라'"

미국의 압력으로 칸박사는 파키스탄의 핵프로그램의 운영일선에서 손을 떼게 되었고 핵기술관련 "대통령 자문"으로 임명되었다.

서울의 정부기관에서 일하는 핵전문가들은 북한의 비밀 핵프로그램에 대한 공개적으로 글을 쓰거나 의혹제기를 하지 못하도록 미묘한 압력을 받았다고 말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유산인 대북한 포용정책인 "햇볕정책"과 한국에 대한 투자촉진을 망치지 않을까 우려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금년 여름 CIA는 북한(의 핵개발)이 연구단계에서 생산단계로 옮겼다고 결론 내렸다. CIA는 이 증거를 콘돌리자 라이스 안보담당보좌관에게 가져갔고, 그녀는 모든 미국 정보기관들에게 검토를 요청했다.

통상 그러한 요청은 상반되는 해석을 낳기 마련이다. 그 대신 미 정보기관들은 일치된 의견을 제출했다. '북한프로그램은 잘 진행되고 있으며 중단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8월에 일본과 한국에 새로운 증거를 제시하기 위해 고위관료들을 보낸 뒤에, 북한에게도 따지기로 결정하였다. 10월 4일에 제임스 켈리 동아태담당 국무부 차관보는 북한을 방문하여 북한당국자들에게 미국은 북한이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가졌다고 말했다.

"우리는 북한의 비밀행위가 다 들통났다고 말해주려 했다"고 한 고위당국자가 말했다.

북한은 처음에 그러한 주장을 부인했지만 다음날에, 밤새 자기들끼리 토론했다고 하면서, 그들이 비밀 핵무기 프로그램을 계속하고 있었다고 시인했다고 여러 당국자들이 말했다.

"우리는 핵무기를 필요로 한다"고 북한의 고위 외무성관리인 강석주가 말하면서 이 프로그램은 부시 행정부의 적대정책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켈리 차관보는 그 핵프로그램은 부시가 택사스 주지사로 있던 적어도 4년 전에 시작했다고 응수했다. 켈리 차관보는 한 북한당국자가 핵관련 대화는 무가치했으며 "우리는 칼에는 칼로 맞서겠다"고 말한 뒤에 떠났다.

그 이후, 그 북한당국자는 더 용의주도했다. 그들은 핵확산 금지조약에 서명했으며 한국과 한반도 비핵화유지 협약에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공개적으로 핵무기를 가질 권리에 대해 주장했다.

부시 행정부는 어울리지 않게 자제했다. 부시 대통령은 중유공급중단을 이끌었고, 11월 15일에 미국은 북한을 침공할 의사가 없다고 발표했다. 부시의 보좌관들은 이것이 김정일로 하여금 오랫동안 바라던 정권안보보장을 해주는 동시에 핵프로그램을 끝낼 체면을 세워주기 위한 것이기를 희망했다.

부시의 보좌관들은 북한을 다루는 방법은 이라크와는 달리 경제적인 취약성을 잘 이용하여 당근을 제공하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데, 이는 클린턴 행정부가 쓰던 전략이다. 서울의 당국자들도 그 방법이 이번에도 먹혀들 것으로 믿고 있다.

"북한은 갈수록 더욱 우리 한국과 서방국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는 1994년의 위기당시 보다 더 심하다"고 1994년 당시 외무장관이었던 한승주 전 장관이 말했다.

그러나 현실은 당국자들이 인정했듯이 부시 행정부가 북한에 대해 외교적 해법밖에는 다른 선택의 방법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김정일은 1만1천문의 대포를 비무장 지대 지하에 가지고 있는데 모두 서울을 겨냥하고 있다. 전쟁초기에 수십만 명이 죽을 것이라고 군당국자들이 말한다.

"이에 대한 전략은 북한에게 공개적으로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며 마찬가지로 파키스탄에게도 똑같이 이야기하는 것이다. 사적으로 그리고 조용하게"라고 한 미국인 당국자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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