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김태규 명리학 <61>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김태규 명리학 <61>

다가오는 동아시아의 시대(下)

저번 글에서 서구의 무제한적 팽창주의는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렵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서구의 쇠락이 바로 동아시아의 흥기로 이어진다는 논리적 필연성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오늘은 이 점에 대해 몇 가지 각도에서 얘기하고자 한다.

먼저 얘기할 것은 세계사적 이데올로기의 중심 이동이다. 1600년대에 시작한 서구의 흥기 과정에서 세계사의 핵심 이데올로기로 자리잡은 '진보와 발전'이 그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점과 이에 대체할 만한 새로운 이념으로서 조화와 공존이라는 동아시아적 관념의 새로운 부활이다.

현 지배 관념인 진보와 발전의 본질, 즉 무제한적 팽창이 어떤 한계를 지닌다는 사실을 최초로 직시한 사건은 1972년 로마 클럽이 발간한 '성장의 한계'라는 보고서였다. 이 보고서는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이 천연 자원에 대한 무제한의 갈취에 바탕하고 있다는 것을 최초로 세상에 알렸다.

이 보고서는 천연 자원에 대한 갈취만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타 문명과 문화에 대한 파괴도 동시에 자행되었다는 점을 도외시했다는 문제점이 있긴 하지만, 아무튼 팽창의 한계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특히 이 보고서가 출간된 1972년은 壬子년으로서 金을 본질로 하는 서구인들이 가장 맑은 눈과 정신을 발휘할 수 있었던 해였다. 최근 서구의 지성들은 어떤 타협책을 모색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최근 유행하는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개념이다.

하지만 현재의 자본주의적이고 시장주의적인 생산소비 방식은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것도 허구일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오늘날 고도의 소비 수준을 누리는 인구는 전 세계적으로 7억을 넘지 않는다. 미국과 일본, 서구와 몇몇 신흥 공업국-여기에는 우리도 포함된다-의 인구가 그렇다는 얘기다.

그런데 여기에 14억 중국 인구와 인도의 12억 인구가 가세할 경우, 그들이 생산해내는 상품과 용역을 흡수할 수 있는 시장은 있을 것이며, 동시에 그로 인한 자원 소모와 환경 파괴를 이 지구가 견뎌낼 수 있다고 생각되는가? 이런 방식으로만 나가면, 지속가능한 발전은커녕 끔찍한 재앙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날 소위 선진국과 그에 준하는 나라들은 환경 오염과 생태계의 파괴를 다른 저개발국들로 이전함으로써, 문제점을 해결한 듯 보이지만, 새롭게 26억의 인구가 선진 소비국의 패턴을 보인다면 그들은 또 어디로 오염과 환경 파괴를 수출할 수 있을까?

물론 새로운 기술과 과학이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대 경제학이 공기나 물과 같은 자원은 공짜(free goods)라는 전제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따라서 이제 진보와 발전이라는 관념은 더 이상 새로운 시대의 지도 이데올로기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하며, 조화와 공존이라는 새로운 지도 이념으로 대체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서구의 쇠락과 진보와 발전이라는 서구적 지배 이념의 쇠락은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동시에 조화와 균형을 원리로 삼는 중용의 이념과 상생과 상극을 통한 균형을 주장하는 음양 오행의 원리를 지닌 문명권은 이 지구상에 동아시아 지역밖에 없다. 필자는 바로 여기에서 동아시아가 새로운 시대의 중심권으로 부상할 것으로 확신하는 이유를 발견하고 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짚고 넘어갈 사항이 하나 있다. 흔히 우리들은 툭하면 식민사관의 악영향을 거론하고 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경계해야 할 것이 우리의 '빨리 빨리' 정신이라 본다. 이 빨리 빨리 정신은 우리 역사가 과거 100년 이상을 세계사적 변화에 뒤졌다고 느낀 나머지 생겨난 조급함이요, 진보와 발전이라는 낡은 이념의 끝물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시급하고 모든 것이 특단의 대책을 요구하는 세상이 어디 살 만한 세상인지 한 번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나아가서 이러한 졸속 정신이 우리 사회의 정신을 황폐하게 만드는 근본 이유이며, 우리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점들이 이 속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가. 이제 우리도 이만큼 이루었으면, 빨리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다지면서 미래를 향해 움직이는 것이 중요한 때가 된 것이다.

그러면 이어서 동아시아 지역이 새로운 시대의 중심권으로 부상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를 얘기하고자 한다.

이는 미국의 세계 제패가 가져온 부산물이기도 하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미국이 지구촌의 절대 강자로 부상하는 과정에서 과거 소련과 오늘날의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동아시아 지역에 설치한 핵심 전략 기지들이 있다.

그 중심축은 일본이고, 한국과 대만이 전진 기지인 것이다. 그리고 베트남을 미국은 또 하나의 전진기지로 만들려다가 실패하고 말았지만, 바로 이 지역, 미국이 세계 지배 전략의 일환으로 만든 전진기지와 전략기지들이 지난 1960년대 이래로 새로운 시대의 중심권으로 부상할 수 있는 역량을 꾸준히 키워왔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일본과 한국, 대만과 싱가포르, 동남아 등지의 나라들이 클 수 있었던 것은 결국 미국의 세계 전략이 가져온 결과라고 말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과거 냉전 체제하에서 미국의 보호 아래 산업을 발전시키고 미국 시장에 대한 수출을 통해 힘을 키워왔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물론 미국은 그들의 전략적 목적 때문에 이 지역을 성장시켜 왔지만, 그 부산물로 인해 이 지역은 새롭게 눈을 뜨면서 엄청난 탄력과 가능성을 가지게 된 셈이다.

이를 음양 오행으로 설명하면, 수생목(水生木)의 이치로서 癸水의 나라인 미국은 甲木의 나라인 우리와 베트남, 乙木의 나라인 일본과 대만을 본의든 본의 아니든 키워주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에 반해 미국은 서남 아시아 방면에서 참담한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미국이 범한 최대의 전략적 실수는 이스라엘을 통해 이슬람 문명권의 단합을 저지하려고 나선 것이다. 그 바람에 미국은 이란에서 실패했고 이라크에서도 실패하고 있는데, 이를 동아시아 지역과 비교하면 실로 극명한 대비가 아닐 수 없다. 이는 서남 아시아가 火土의 기운을 띄우고 있기에 미국으로서는 버거운 것이며, 특히 석유 자원이라는 현실적 이익 때문에 미국의 전략은 더더욱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돌아가서 동아시아 지역이 미국의 보호 아래 커왔다는 것은 일찍이 없었던 일이고, 인류사적으로도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과거 이 지역은 바다로부터의 새로운 교류나 영향이 미미했기에 중화제국의 변방으로 남아야 했으나 이제는 그 상황이 근본적으로 달라져 버린 것이다.

장차 우리가 북한과 통일을 이루고, 나아가서 일본과 서로간의 장점을 보완할 경우 엄청난 힘을 지니게 될 것이다. 우리의 강력한 도전 정신과 일본의 신중하고 치밀한 마인드가 상승 효과를 낼 경우, 새로운 시대의 중심권으로 부상하는 데 실로 조금의 모자람도 없다. 이는 갑목과 을목이 만나서 장단점을 보완하는 음양 오행의 이치에 해당된다. 이리하여 동아시아 지역은 미국의 패권이 가져다 부산물이긴 하지만, 그 이점을 최대한 누리는 지역이 된 것이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새로운 강자로서 중국을 지목하지만, 중화제국은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방대하고 우주적인 규모를 지니고 있어 오히려 그 점이 새로운 지구 문명의 중심으로 부상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얘기이다.

아울러 얘기해야 할 것은 새로운 시대의 중심 문명은 과거 서구식의 정복과 팽창 정신이 아니라, 조화와 공존이라는 상생(相生)의 틀 속에서 지도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새로운 동아시아적 연대는 과거 일본 제국주의가 제시한 대동아 공영권의 이념과는 궤를 달리한다는 점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음양 오행의 흐름을 통해 볼 때, 동아시아 연대는 궁극적으로 동남 아시아 지역과의 연결을 통해 더욱 빛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통합 과정은 앞으로 상당한 난관을 맞이할 것이며, 그것을 극복해나가는 길고도 먼 여정이 될 것이다. 특히 현실적으로 중화의 패권주의가 동남아 지역에 대한 개입을 멈추지 않을 것이기에 자칫 커다란 세력 다툼이나 전쟁으로 연결될 소지가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통합의 흐름은 상승의 정점까지 무려 300년에 걸치는 유장한 흐름이기에 이제 그 시간적 이정표를 살펴보기로 한다.

제 1기(1904 - 1963년까지의 60년) --동아시아의 각성
제 2기(1964 - 2023년까지의 60년) --통일 한국의 등장과 일본 문화의 성숙
제 3기(2024 - 2083년까지의 60년) --한국과 일본의 통합과 중화제국과의 갈등
제 4기(2084 - 2143년까지의 60년) --동아시아 연대의 달성
제 5기(2144 - 2203년까지의 60년) --전 지구 차원에서의 지도 세력으로 부상

이리하여 2200년대 초반, 동아시아 문명이 절정을 구가할 시점에, 서구 문명은 쇠락의 바닥에서 다시금 새로운 원리와 정신의 꽃을 피워내기 시작할 것이다.

지금까지 도래하고 있는 동아시아 시대에 대해 간략하게 전망해 보았다. 긴 시간 규모를 놓고 하는 얘기인 만큼, 필자의 이런 예측을 부질없는 백일몽이라 해도 좋고, 더러 웅대한 비젼이라고 칭찬해 주어도 좋다. 그런 것은 어디까지나 독자의 자유지만,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제 분명히 새로운 시대 이념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고, 오늘 우리들은 그런 변환기를 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시대는 서구가 남겨준 물의 정신(과학)과 동아시아가 지닌 불의 정신(문화)이 결합되어 새로운 생명 이념을 탄생할 것으로 믿어마지 않는다. 모든 생명체는 자람에 있어 물과 불의 양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것이기에.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