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으로의 전향을 거부한 채 44년간 감옥에 수감됐던 한 비전향 장기수의 삶을 다룬 영화 ‘선택’의 촬영이 한창인 서대문독립공원(구 서대문형무소).
지난 89년 광주항쟁을 정면으로 다룬 ‘오! 꿈의 나라’ 각본과 제작을 맡았고 92년에는 어업종사자들의 노동환경을 다룬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를 연출했던 홍기선 감독은 자신의 세 번째 장편 영화인 ‘선택’촬영에 여념이 없다. 홍 감독은 '선택'이‘남자들 사이의 동지애에 대한 영화’라고 설명했다.
홍 감독은 지난 해 중견배우 J씨를 주연으로 한 독립영화로 이 영화의 촬영을 시작했으나 J씨의 인기가 갑자기 치솟고 제작비 마련에도 어려움이 생겨 네 장면만 찍고 촬영을 포기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현재는 영화사 ‘신씨네’의 투자와 영화진흥위원회의 기금으로 제작비를 마련해 옛 수도여고 자리를 중심으로 세트를 지어 40% 정도 촬영을 마친 상태다.
기자가 현장을 찾은 지난 28일 촬영한 장면은 사실감을 높이기 위해 당시 실제 교도소였던 서대문독립공원에서 찍는 군중 씬으로 유신시대의 강압적인 전향공작을 묘사한 것이었다.
주인공인 김선명 역을 맡아 영화 내내 푸른 수의를 입고 연기하는 연극배우 김중기씨(36)는 그 자신이 한때 양심수였던 ‘운동권’ 출신으로 전대협 남북청년학생회담 남측 대표단장을 지낸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다.
김씨는 자신이 배우가 된 이유를 ‘의식’만이 아닌 ‘감성’을 더한 운동가로 살기 위해서 선택한 길이었다고 설명했다.
연출자인 홍기선 감독과 주연배우 김중기, 안석환씨를 만나 작품내용과 선택과정 등에 대해 잠시 인터뷰하는 시간을 가졌다.
***"장기수들 사이의 동지애와 전향공작에 대한 반발이 비전향장기수 만들었다"**
프레시안: 영화 ‘선택’ 을 만든 계기는?
홍기선 감독: 소재에 대해서는 80년대 말에 신문에 장기수 이야기가 처음 소개될 때부터 ‘저런 소재가 분단을 가장 잘 이야기 한다’고 생각했다. 10년도 아니고 43년 10개월 동안 전향서 한 장 안 쓰고 버텼다는 것이 생소했고 가능한 일인지 개인적인 궁금증도 생겼다. 교도소 내 ‘특별사동’ 이라는 곳을 처음으로 영화 소재로 다룬다는 점도 끌렸다.
프레시안: 그 동안 영화제작이 기획단계에서 몇 차례 중단위기가 있었다고 들었다.
홍 감독: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펀딩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작가가 96년에 취재하고 시나리오 쓴 뒤 3년이 지난 후까지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었다. 제작이 구체적으로 가시화 된 지는 한 2년 정도 됐다. 올해 초 ‘신씨네'(영화사)와 함께 하며 상황이 풀렸다.
프레시안: 홍 감독은 준비하는 과정에서 김선명씨를 직접 만난 것으로 아는데 그 때 받은 느낌은 어땠나?
홍 감독: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김선명씨는 다른 인텔리출신의 장기수들과 다른 점이 있는데 노동자 출신이라는 것이다. 말도 어눌하고 무척 순박한 사람이다.
프레시안: 북쪽이 고향도 아닌 김선명씨가 전향을 거부한 이유나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홍 감독: 장기수들은 보통 사상과 이념보다는 동지애를 중요시 여기고 배반자가 될 수 없다는 생각에서 자신의 결정을 당연시 한다. 이 영화는 그런 의미에서 동지애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같은 상황이라면 솔직히 전향서를 쓸 거 같다.(웃음) 하지만 그 분들에게는 배반자가 되는 전향서를 쓰지 않는 게 쉽고 당연한 일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70년대에 특히 심하게 행해진 전향공작에 대한 반발도 있었던 것 같다. 강압에 굴복할 수 없다는 자존 같은 것 말이다.
프레시안: 김선명씨가 영화화 사실을 알고 있나?
홍 감독: 김선명씨는 이제 북한에 가신 상태라 연락이 안 된다. 그전부터 만날 때 마다 계속 만든다고 했으니 소식을 들으면 ‘이제 만드는구나’ 하시겠지.
프레시안: 분단이라는 아직 진행중인 역사를 다루는 부담은 없는지?
홍 감독: 사실 대중들이 잘 모르는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 부담이 된다. 또한 장기수 생활을 경험한 분들이 잘 설명을 하지 않는 부분도 많다. 그런 부분은 보편적인 호감을 얻을 수 있게 영화적인 방식으로 풀어갈 생각이다.
프레시안: 김선명씨 만큼이나 홍 감독도 이 문제를 영화화 하려는 고집이 센 것 같다.
홍 감독: 하다 보니 이렇게 만들게 됐다.(웃음)
홍 감독과의 인터뷰 중간 주연배우인 김중기씨는 "북에서는 소설의 소재로 삼아 창작된 작품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김선명 역 열연한 주연배우 김중기씨**
프레시안: 김중기씨는 배우생활 전에 학생운동도 했고 머리로 느끼던 문제를 연기로 몸으로 하면서 떠오른 점이 있는지?
김중기: 학교 다닐 때도 사실 머리로 많이 느낀 것은 없다.(웃음) 김선명씨는 나를 포함해서 우리 세대 학생운동 출신과 다른 점이 있다. 홍 감독도 말했지만 김선명씨는 노동자 출신이라 그분이 사회에서 가지게 된 사상은 생활을 통해 받아들인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바꾸기가 힘든 점도 있었을 것이다.
프레시안: 배우로서 연구한 김선명은 어떤 인물인가?
김중기: 내가 생각한 것과 김 선생의 생각은 물론 다르다. 하지만 한 인간이 감옥에서 자신의 선택에 의해 40년을 산다면 정말 마음이 맑고 욕심이 없는 단순한 인물일 것 같다. 그리고 동지애 외에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에 대한 자존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예를 들면 어떤 일을 했는데 자발적으로 반성할 기회나 틈도 없이 때리고 고문을 하며 반성을 강요하면 거기에 대한 반발로 자신의 존엄을 지기키 위한 최소한의 저항이 필요했을 것이다.
***오태식 작업반장역 안석환씨**
프레시안: 안석환씨는 배우로서 어떤 이유로 ‘선택’을 선택했는지?
안석환: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이 시대에 표현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고 여겼다. 문화인 그리고 영화인의 한 사람으로 의무감 같은 것이 생겼다. 김선명역을 하고 싶어 감독에게 조르기도 했다.(웃음)
악역을 잘 할수록 주인공의 캐릭터도 빛나는 만큼 열심히 하고 있다. 상업적으로는 앞으로 이런 영화가 잘돼야 독립·저예산영화들의 영역이 넓어질 것으로 본다. 스타시스템을 써야만 제작이 되는 현실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프레시안: 전향반장의 역할은 어떻게 보면 우리(남한)의 공감을 사는 유일한 인물일 수도 있는데?
안석환: 내가 맡은 ‘오태식’은 지금은 아마 극우·반공 단체의 임원이 되어 있을 인물이다. 태백산맥에서도 토벌대장으로 비슷한 역을 했었다. 이번에는 그때보다 좀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그리려고 한다. 이 인물은 국가안보, 국가관 같은 좁고 낡은 의미에만 갇혀 사는 사람이다. 인류나 미래에 대한 시각을 가진다거나 열린 생각이나 말을 하는 세상의 사람이 아니다.
프레시안: 실제 모델이 된 인물이 있는가?
안석환: 있다. 자기중심적이었고 ‘내 나라’만 생각한 인물이었다. 그 반토막의 생각으로 인해 ‘남의 일생’은 가볍게 여기는 삶을 산 것이 많은 문제를 만들었던 사람이다.
***영화의 실제인물 김선명은**
김선명씨는 2000년 9월 다른 62명의 비전향 장기수들과 함께 북한으로 송환된 인물로 6,25전쟁 중 월북하여 의용군으로 자원 입대했다가 51년 유엔군 포로가 되어 교도소에 수감됐다.
1995년 8월 15일 광복절 특사로 출소할 때까지 44년의 세월을 감옥의 담장 안에서 보내야 했다. 특히 그 중 39년은 감방 안에만 갇혀 있어야 했고 21년은 완전한 격리와 침묵 속에 0.5평 남짓한 독방에서 지냈다.
그가 감옥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자신의 사상과 행동을 뉘우치는 전향서를 한 장 작성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회유와 압박 속에서도 결국 전향서를 선택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출소 후 연좌제에 대한 피해의식으로 가족들조차 만나는 것을 꺼려 결국 연고도 없는 북한행을 택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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