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17일 정상회담 후 국교정상화를 위한 노력지속 등을 천명한 공동선언에 서명했다고 교도(共同)통신이 보도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날 평양에서 2차례에 걸쳐 열린 북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인 납치사건에 대해 "(납치문제는) 참으로 불행한 일로서 솔직히 사과하고 싶다. 관계자는 처벌했으며 앞으로 절대로 이런 일은 없을 것"이라며 사죄와 재발방지 의지를 밝혔다. 납치문제와 관련,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11명 가운데 4명이 생존해 있고 6명은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나머지 1명의 생사 여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생존자 4명에 대해 일본으로의 일시귀국을 허용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측은 11명의 납치 피해자 가운데 87년 대한항공기 폭파범 김현희의 일본어 선생으로 알려진 다쿠치 하에코(한국명 이은혜), 83년 유학중 실종됐던 아리모토 게이코(당시 23세), 중학교 1학년생으로 실종됐던 요코타 메구미 등 6명이 병과 재해로 사망했다고 확인했다.
이에 앞서 야스오 일본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일본인 납치 문제와 관련 "북한측이 일본인 납치 피해자들에 대한 일부 정보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납치문제에 대해 사죄와 동시에 재발방지를 약속함으로써 북일 수교정상화의 중대한 걸림돌 하나가 제거된 것으로 평가된다.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 그동안 일본이 납치 피해자의 안부 관련 정보 제공과 가족 면회, 당사자 일본 귀국 등 3단계 요구 사항을 내걸었으나 북한은 납치 문제는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17일 오전 11시 13분부터 오후 12시 5분까지, 오후 2시 4분에서 3시 34분까지 두 차례에 걸쳐 이뤄진 이날 정상회담에는 고이즈미 총리를 비롯한 일본측의 아베 신조(安部晋三) 관방 부장관, 다카노 도시유키(高野紀元) 외무성 외무심의관, 다나카 히토시(田中均)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 등 6명이 참석했으며, 북한측에서는 김 위원장과 강석주 제1 외무부상, 통역 등 3명만이 배석했다.
통상 정상회담에는 양측 참석자 수를 맞춰 자리를 잡는 게 관행이라 이날 일본측이 통역을 포함해 6명이 참석한 반면 북한측이 3명만 배석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는 평가가 많다. 일본 언론들은 김 위원장이 강석주 부상만을 참석시킨 것을 두고 북한이 이번 회담을 외무성 주도로 이끌어가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에 앞서 김정일 위원장은 정상회담이 열린 백화원 초대소를 방문해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방북을 환영한다며 "조일(朝日)관계의 새역사를 창조하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평양에 오시게 됐는데 기쁘다기보다도 주최측에서는 대단히 미안한 감도 듭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또 "'가깝고도 먼나라'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평양을 방문해 준 것에 대해 대단히 고맙게 생각한다"며 "'먼나라'라는 말은 20세기 낡은 유물이 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고 덧붙여 회담 성공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김 위원장이 먼저 "반갑습니다"라고 환영인사를 건네자 "초대해 줘서 감사합니다"라고 간단하게 화답했는데 다소 긴장한 태도를 보였다.
한편 노동신문이 17일자 1면 오른쪽 하단 구석에 3단 크기로 고이즈미 총리의 약력을 사진과 함께 소개한 것에 대해 일본기자들은 몹시 섭섭해 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 기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한에 왔을 때는 1면 톱이었다"며 "아프리카 국가의 정상이 방문해도 이 정도는 보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회담은 양측이 실무형 회담임을 의식한 탓인지 공식 환영행사도 열리지 않았으며 외국 정상 방문시 의례적으로 걸리는 국기도 보이지 않았다. 현지 취재기자들은 다만 순안공항에서 평양으로 다니는 차량들이 전혀 보이지 않아 통제됐다는 인상을 줬다고 전했다. 북일정상회담을 취재중인 외신기자는 한국기자 3명을 포함해 모두 1백20여명으로 고려호텔에 설치된 프레스센터에서 취재활동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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