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콜린 파월 국무장관과 북한의 백남순 외무부장이 31일 브루나이 반다르 세리 베가완에서 개막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무장관 회의장에서 15분간의 짧은 비공식 접촉을 가졌다.
파월 장관과 백 외무부장의 이날 접촉은 서해교전이후 최초의 북-미 접촉이라는 점에서 북-미대화 복원의 신호탄이 될지 여부가 주목된다. 또한 이날 회담은 지난 2000년 10월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이래 1년 9개월만에 최초로 재개된 고위급 회담이며, 부시정권 출범후 최초의 고위급 접촉이기도 해 의미를 더 하고 있다.
이날 접촉은 특히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이 30일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이라크와는 달리 북한과 이란에 대해서는 `정권 교체'를 시도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 데 이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회담결과에 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
ARF 개막직전 가진 15분간의 회동에서 미국은 지난해 6월 천명한대로 북미대화에 관한 기본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월 장관은 이날 회동에서 "앞으로 미-북 대화가 이뤄지면 대량살상무기 비확산문제, 제네바 기본합의 이행문제, 재래식 군비감축문제 등을 협의하겠다"는 부시 대통령의 뜻을 전달했다. 파월장관은 이같은 백 외무부장과의 회동사실 및 대화내용을 ARF 전체회의에서 참석국 대표들에게 설명했다.
리처드 바우처 미 국무부 대변인도 이날 파월 장관과 백 외무부장간 비공식 회동 사실을 공식 발표하고 "후속 회담이나 방문 등의 문제에 대해 우리는 지난 25일 북한이 발표한 성명을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바우처 대변인은 "파월 장관은 북한이 최근 발표한 성명을 주목하며 (부시 대통령의) 정책을 재확인했고, 장래의 어떠한 회담에서도 우리는 (대량살상무기) 비확산 문제와 제네바 기본합의 상호 이행을 포함한 다양한 문제들을 강조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북한의 백 외무부장은 회담에 앞서 이날 아침 브루나이 오키드가든 호텔에서 열린 탕자쉬앤(唐家璇) 중국 외교부장과의 조찬회담에 앞서 오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항상 (대화) 준비가 돼 있다"며 고 밝혔다. 그는 "상대방이 요구하면 응할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영국의 로이터통신은 이날 회동소식을 전하며 "미국의 다수 정부관계자들은 앞으로 대응과 관련, 연기된 방북파견단 문제를 포함해 양국간 현안에 대해 북한이 여태까지 발표한 성명들을 기초로 결론을 낼 것"이라고 보도함으로써 서해교전후 연기됐던 미국측 방북단의 북한 방문이 다시 재개될 수 있을 것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외교가에서는 그러나 이번 북-미회동이 그동안 경색됐던 양국관계를 한 순간에 개선시키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외교전문가는 "최근 미국정부가 이라크와의 전쟁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는 상황에서 동시에 여러 적을 상대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북한과 이란에 대한 정권전복 의지가 없음을 천명한 것으로 보인다"며 "따라서 북-미대화는 일단 재개되긴 해도 곧바로 가시적 성과를 거두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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