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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등에 탄 북한, 문제는 대외관계 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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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호랑이 등에 탄 북한, 문제는 대외관계 개선"

<전문가 진단> 북한의 경제관리 개혁을 어떻게 볼 것인가?

북한이 이딜초 단행한 물가ㆍ임금 현실화 등 일련의 경제개혁 조치에 대해 국내외의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제한된 정보로 인해 이번 조치가 시장경제로의 진입을 위한 획기적 개혁인지, 계획경제 틀 내에서의 개선책인지에 대해서는 북한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하지만 북한경제 변화의 진정한 시발점이 될 것이라는 데에는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다.

프레시안은 이번 조치의 의미와 전망을 알아보기 위해 북한경제 전문가의 글을 싣는다. 필자는 이번 조치가 계획경제 틀내에서의 개선책이기는 하지만 일단 이번 개혁이 현실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할 경우 자연발생적인 확산효과에 의해 시장개혁으로까지 진전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이번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공급능력, 즉 생산력의 확대가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서는 대미, 대남관계의 개선이 선결요건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필자 김연철 교수는 지난 96년 성균관대에서 북한경제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삼성경제연구소 북한연구팀 수석연구원(1997-2002년)을 거쳐 지난 4월부터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편집자

***호랑이 등에 올라 타기**

화이트(Gordon White)는 현실 사회주의에서의 시장개혁을 '호랑이 등에 올라타기'로 비유한 바 있다. 호랑이 등에 올라타는 것은 선택할 수 있지만, 일단 호랑이가 달리기 시작하면, 내리고 싶어도 내릴 수 없다. 시장개혁도 마찬가지다. 계획경제에서 시장 메카니즘의 도입은 자연발생적인 확산효과가 있다. 부분 개혁조치는 연관 분야에 파급효과를 미치면서, 시장개혁으로 진화하는 경향이 있다.

북한은 호랑이 등에 올라탔는가?

중국식 개혁의 초기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단지 계획개선정책의 연장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정책변화의 시행초기라 정보가 부족하고, 과장 혹은 폄하하기 위한 외부평가자의 정치적 의도가 있어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북한의 정책 변화 수준을 '현실사회주의' 개혁역사와 비교하여 정확하게 위치지울 수 있는 사회주의 연구수준도 빈약하다. 늘 그래왔듯이 북한의 실체적 변화와 무관하게, 단지 기대감을 대상으로 '허공에 주먹질'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북한의 이번 정책변화는 의미 있는 제도적 변화이며, 과거의 계획개선정책과 질적으로 다르다. 또 향후 상당한 파급효과가 예상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북한은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 다만 아직은 호랑이가 달리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내릴 수 있다. 내릴 것인가? 아니면 호랑이가 달리기를 시작하도록 할 것인가? 이제 본격적인 북한 당국의 고민은 시작되었다. 문제는 하염없이 고민을 하도록 호랑이가 기다려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분권화, 가격 현실화, 그리고 화폐임금제**

무엇이 변했는가? 북한은 이번 조치를 경제관리 개선이라고 부른다.

첫째, 계획의 분권화이다. 계획 작성에서 전략적 중요성을 가진 지표는 국가계획위원에서 계획하지만, 나머지는 해당 기관 기업소에서 하도록 했다. 가격제정에서도 지방공업 생산품(주로 소비재)은 공장자체로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자재공급체계에서도 자재용 물자교류를 일부 허용했다.

둘째, 시장 신호를 반영한 가격현실화이다. 쌀 가격이 기준가격이다. 과거에 북한은 쌀 1kg를 80전에 수매하여 8전으로 공급했다. 이번에는 40원으로 수매해서 44원으로 판매한다. 어느 정도 암시장의 가격을 반영한 것이다. 임금도 현실화되었다. 생산노동자들의 경우 110원이던 기본임금이 2000원으로 인상되었다. 탄광노동자들의 경우에는 6000원까지 인상되었다. 전기ㆍ연료ㆍ교통비도 현실화되었다.

셋째, 현물임금제에서 화폐임금제로 전환했다. 과거 배급제는 일종의 현물임금 방식이었다. 국가가 재정 보조금으로 수매가격보다 낮은 배급가격을 책정한 것이다. 현물임금 방식은 기업의 생산비용 계산을 어렵게 했다. 당연히 기업의 이윤계산은 불가능해지고, 엄격한 독립채산제를 적용하기 어려워진다. 북한이 식량 및 소비품의 가격을 현실화하고, 판매제를 채택한 것은 임금지급 방식이 현물임금에서 화폐임금으로 전환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왜 북한은 경제 관리 개혁을 채택했는가? 이번 조치는 1990년대 중반 이후의 경제위기가 가져온 현실적 변화를 북한 당국이 수용한 것이다. 1994년부터 시작된 경제위기는 이후 식량난과 공장 가동률 하락으로 배급제 및 소비품 공급체계를 마비시켰다. 국영 상점이나 협동상점에 상품이 없고, 배급량이 줄고 배급간격도 지켜지지 않았다.

국가유통망의 공백을 대체한 것이 암시장이다. 암시장에서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된다. 국정가격과 암시장가격은 물론 엄청난 격차를 보였다. 노동자들은 한달 월급으로 쌀 1Kg도 살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공장에 출근할 이유가 사라졌다. 농민과 농업관리들은 될 수 있으면 식량을 암시장으로 유출함으로써 국가의 공급능력을 약화시켰다.

북한 당국이 가격 및 임금을 현실화한 것은 바로 암시장과 국가공급부문의 격차를 완화하기 위한 것이다. 동시에 각종 가격보조금을 철폐한 것은 재정적자를 완화하기 위한 것이다.

***잠정개혁의 한계**

북한 정책 변화의 초점은 계획경제와 암시장경제라는 이중경제체제의 격차를 좁히기 위한 것이다. 시장가격을 반영한 가격현실화를 통해, 임금과 가격의 균형을 행정적으로 조정한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공급능력이다. 식량과 소비재의 공급이 정상화된다면, 임금현실화로 노동자의 노동의욕은 증가하고, 암시장의 비중은 수요부족으로 감소할 것이다. 생산재의 공급 역시 정상화된다면, 공장들은 보다 강화된 독립채산제의 원칙에서 이윤증대를 위해 생산에 주력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북한의 식량수급 상황으로 보아 국가의 공급능력은 한계가 있다. 지방공업을 비롯한 소비품 공급능력도 단시간내에 정상화되기 어렵다. 식량과 소비품의 공급이 차질을 빚게 되면, 암시장은 다시금 활성화된다. 초과수요로 암시장에서의 가격은 다시금 폭등할 것이다. 공급부족 상황에서 암시장 가격이 폭등하면, 임금은 의미를 상실한다.

생산 영역 마찬가지다. 현재 북한 공장의 원자재 및 중간재의 공급부족을 고려할 때, 공장 가동률이 단시간에 정상화될지 의문이다. 이미 생산 비용(임금, 및 원자재 구입 가격)은 대폭 인상되었다. 공장가동률이 정상화되어 초과이윤을 확보한다면, 재투자와 임금 보너스를 지급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인상된 임금 수준조차도 충족시킬 수 없다.

주거비용과 생활비용이 현실화된 상황에서 공급불안정이 지속될 경우, 도시주민들의 생활은 이번 조치 시행 이전보다 훨씬 어려워질 수도 있다.

그러면 북한 당국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적인 과제는 외부공급 확보다. 식량이나 소비품에 대한 외부공급이 확보되어야 경제안정화 조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공급확보는 한계가 있다. 공급이 부족할 경우, 어쩔 수 없이 국가 가격제정국이 조정하는 행정가격의 탄력성을 제고해야 한다. (행정)가격이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신호를 반영하지 못할 경우, 다시금 소비재 유통망의 주도권은 암시장으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만성적인 재정적자로 과거처럼 식량과 핵심 소비품의 가격안정을 위해 가격보조금 정책을 재도입하기도 어렵다. 신축적인 가격정책(생산가격 및 요소가격)을 통해 암시장에서의 상품유통을 공적 영역으로 흡수해야 하는 것이다.

나아가 가격정책의 개혁과, 금융(통화가치 안정과 환율 현실화)및 재정개혁(조세제도)도 필요하다. 공장내에서는 인센티브 제도의 개선이 요구될 것이다. 적극적인 차등 임금제가 불가피하다. 노동자들의 소득격차로 집단주의 의식의 약화와 개인주의 논리가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중국식과 다른 북한식 개혁 유형**

북한의 경제관리 개선은 계획개선도 아니며, 시장개혁도 아니다. 일종의 경제안정화를 위한 일시적인 잠정 개혁이다. 북한의 개혁은 향후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이와 관련된 주된 관심사는 북한의 중국식 개혁모델의 수용이다. 여기서 중국식 모델에 대한 개념정의가 필요하다. 중국식 모델은 넓은 의미로 소련이나 동유럽의 급진적 체제전환과 대비되는 점진적 시장개혁과정을 총칭할 수 있다. 그러나 좁은 의미의 중국식 경제개혁개방 모델은 중국의 개혁조건과 개혁전략을 지칭한다.

필자는 북한의 경제개혁을 전망하는 데 있어 넓은 의미의 중국식 모델은 가능할지 몰라도, 좁은 의미의 중국식 경제개혁 모델은 적용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우선적으로 북한과 중국은 경제개혁의 초기조건이 다르다.

첫째, 북한은 중국의 등소평 체제처럼 점진적 경제개혁 과정을 주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개혁 리더쉽이 부재하다.

둘째로 거시경제적 환경도 다르다. 경제개혁 초기 비국영 부문의 역할이나 분권화 정도는 분명 중국과 북한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북한의 경제위기 이후 암시장의 확산은 주목할 만하지만, 중국의 비국영 부문의 규모나, 역사적 경험(1960년대 초 유소기 개혁당시의 농가생산 책임제 등)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셋째로 국제시장과의 구조적 연계성이 다르다. 1970년대 후반 중국 경제개혁초기의 국제환경과 북한이 처한 상황은 다르다. 대외적 환경은 개혁 개방에 필요한 자본조달과 관련되어 있다. 외자유치나 수출 확대 등을 위해서는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등이 완화되고 개별 국가의 공적 차관 및 국제금융기구의 개발기금 등이 투자될 수 있는 환경이 요구되고 있다. 중국이 내수시장을 효과적인 매력으로 활용하면서 자본을 조달하고, 수출산업 육성을 통해 국제시장경제에 참여할 수 있었다면, 현재 북한의 국제환경은 분명 중국과 다르다. 여전히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로 자본조달과 수출에 애로를 겪고 있다.

한편 외부 투자가가 평가할 수 있는 시장가치적 측면에서도 중국과 북한은 다르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구매력을 갖고 있는 잠재적 거대시장이다. 개방 초기, 제도적 미흡과 금융체제의 불안, 그리고 정치적 위험도에도 불구하고, 외국 기업들이 적극 진출한 것은 중국의 내수시장 진출에 대한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북한은 내수시장이 작고(인구 2300만) 투자환경도 상대적으로 불안정하다.

북한체제의 특수성을 고려한다면, 북한의 개혁 순서와 방법 역시 특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점에서 쿠바 사례가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미국의 경제제재가 존재하고, 전통적 리더쉽에 의해 개혁이 시도되고 있으며, 외국인 투자자의 관심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지역이라는 공통성이 있다.

다른 한편, 1950년대와 1960년대 동유럽에서 다양하게 시도되었던 경제개혁 실험들도 상황의 차이는 있지만, 많은 시사점을 줄 것이다. 북한의 개혁 유형을 평가하고, 전망하기 위해서는 중국식 개혁만이 아니라, 보다 많은 '현실사회주의' 국가의 개혁경험이 참조될 필요가 있다.

***북한의 개혁과 남북관계**

북한의 정책변화는 공존공영의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북한이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경제정책을 변화시킨다면, 남북경협이 활성화될 수 있는 계기도 마련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북한이 변화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한반도의 긴장이 유지되면, 북한은 산업정책 조정에 제약을 받는다. 군수공업을 위해 중공업 우선 노선을 계속적으로 추진해야 하기 때문이다. 투자의 우선 순위가 변화하지 않는 이상, 소비재 생산의 정상화나 외부지향적 경제정책은 한계가 있다. 나아가 앞서 강조했지만, 일정한 외부 공급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정책변화를 지속하기도 힘들다.

그런 점에서 8월에 예정되어 있는 남북 장관급 회담은 중요하다. 북한이 남북대화에 나서는 이유가 반드시 경제문제 때문은 아닐 것이다. 부시행정부의 대북강경정책으로 북미 관계의 진전이 불투명하고 김대중 정권의 임기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남북관계의 일정한 진전은 불가피하다. 오랜 모색 끝에 실천해 들어간 경제정책변화가 성공하기 위해서도 남한의 도움이 필요하다.

우리가 북한의 변화를 말할 때, 놓치고 있는 부분은 남한의 선택에 따라 변화의 수준과 속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방적인 북한의 변화를 요구하기 전에, 변화를 위한 환경을 어떻게 조성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모색해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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