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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賢)을 숭상하지 않으면 다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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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賢)을 숭상하지 않으면 다툼이 없다”

신영복 고전강독 <88> 제8강 노자(老子)-8

2) 노자 예제(例題)-4

‘노자’ 제1장과 제2장을 설명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습니다. 지금부터는 해석상의 논란이나 자구(字句)중심의 독해보다는 우리가 ‘노자’로부터 읽어내야 하는 현대적 과제를 중심으로 읽기로 하겠습니다. 지금부터 읽어야 할 제3장은 마침 정치론(政治論)이기도 합니다.

不尙賢 使民不爭 不貴難得之貨 使民不爲盜
不見可欲 使民心不亂
是以聖人之治 虛其心 實其腹 弱其志 强其骨
常使民無知無欲 使夫智者不敢爲也
爲無爲 則無不治(제3장)

不貴難得之貨(불귀난득지화) : 얻기 어려운 물건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貨(화) : 穀, 또는 商品.
可欲(가욕) : 욕심낼 만한 것.
使夫智者不敢爲也(사부지자불감위야) : 지혜롭다 하는 자들로 하여금 감히 무엇을 저지르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爲無爲(위무위) : 無爲의 방식으로 행하다.

먼저 전체적인 의미부터 읽어보기로 하겠습니다.

“현명함을 숭상하지 않음으로써 백성들로 하여금 다투지 않게 하여야 하고, 구하기 어려운 물건을 귀하게 여기지 않음으로써 백성들이 도적질하지 않게 하여야 하며, 욕망을 자극하는 것을 보이지 않음으로써 백성들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성인의 정치는 그 마음을 비우게 하고, 그 배를 채우게 하며, 그 뜻을 약하게 하고, 그 뼈를 튼튼하게 하여야 한다.

언제나 백성들로 하여금 무지무욕(無知無欲)하게 하고, (스스로) 지혜롭다고 하는 자들로 하여금 감히 무엇을 저지르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

무위(無爲)의 방식으로 정치를 하면 다스려지지 못할 것이 없다.”

번역이 자연스럽지 못하지만 전체의 뜻은 짐작되리라 생각합니다.
노자 정치론입니다. 그가 지향하는 정치적 목표는 매우 순박하고 자연스러운 질서입니다.

우선 현(賢)을 숭상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현(賢)이란 무엇입니까? 지혜라도 좋고 지식이라도 좋습니다. 여러분이 습득하려고 하는 지식이나 지혜란 한 마디로 자연(自然)에 대한 2차적인 해석입니다.

자연에 대한 부분적 지식이거나 그 부분적 지식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당연히 자연으로부터 일정하게 괴리(乖離)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것을 숭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노자는 오직 농부만이 일찍 도를 따르게 된다고 합니다.(夫唯嗇 是以早服 59장)

그리고 구하기 어려운 물건인 화(貨)를 귀하게 여기지 않게 하라고 합니다. 화(貨)란 여기서 무엇을 의미합니까? 자기가 만들 수 있는 농산물(農産物)이 아니라 공산품(工産品)이라고 해야 합니다. 당시에는 공산품은 직접적 생산품이 아니고, 또 일차적인 필수품도 아니었다고 해야 합니다.

화(貨)란 경제학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상품(商品)입니다. 그 사용가치보다는 교환가치가 속성인 물건이 화(貨)입니다. 현(賢)이 2차적인 재구성이듯이 화(貨)도 자연산이거나 농산물이 아니라 2차 생산품인 공산품입니다.

노자의 이러한 주장은 마치 오늘날의 현실을 비판하는 것으로 들립니다. 구하기 어려운 화(貨)를 귀하게 여기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만 오늘날은 농산물에 비하여 공산품의 가격이 훨씬 비쌉니다. 사람이 만든 것보다 기계가 만든 것이 훨씬 더 비쌉니다.

네팔에서 느낀 것입니다만 수입 전자제품은 네팔 사람들로서는 감히 엄두를 낼 수 없는 고가(高價)인 반면에, 엄청난 수고가 담겨 있는 수공예품은 그 값이 거저나 다름없었습니다. 외국환율제도와 함께 시장가격 역시 고도의 수탈시스템이 아닐 수 없습니다.

노자가 물론 오늘날의 외환제도나 가격시스템을 전제로 이야기한 것일 리는 없지만 화(貨)의 가격이 등귀하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 것인가에 대하여는 분명한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언급되는 심(心)과 복(腹), 지(志)와 골(骨)의 대비에서도 이러한 관점이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복(腹)과 골(骨)을 강하게 하라는 것이지요. 심(心)과 지(志)는 버리고 복과 골을 튼튼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노자가 대비시키고 있는 심지(心志)와 복골(腹骨)이라는 두 그룹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위에서 보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복골 쪽이 훨씬 더 자연스럽습니다. 심지(心志)가 타율신경계(他律神經系)인 데 비하여 복골(腹骨)은 자율신경계(自律神經系)라는 것이지요. 不見可欲의 욕(欲)도 심지그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부구조(上部構造)보다는 하부구조(下部構造)를 튼튼히 하여야 한다는 것이 노자의 정치학입니다. 한 사회의 물적 토대를 튼튼히 하는 것. 이것이 정치의 근간입니다.

IMF사태 때 우리 사회의 허약한 토대가 여지없이 드러났습니다. 경제학 강의가 아니기 때문에 길게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만 IMF사태는 한마디로 자립적 토대가 허약하기 때문에 겪은 환란이었지요.

일제 식민지시대의 유산이면서 동시에 해방과 건국과정에서도 그대로 온존되고 그 후 3공 시절의 소위 산업화과정에서 그 허약성과 종속성이 급속하게 강화되고 구조화됩니다. IMF는 이처럼 허약한 체질에 그 원인이 있었지요. 복과 골이 튼튼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난 사태였습니다.

그러나 절망적인 것은 IMF극복 방식이 복과 골의 강화를 외면하고 임시 미봉책으로 일관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IMF 이후에 자주 듣고 있는 구조개혁이나 구조조정은 엄밀한 의미에서 구조개혁이나 구조조정이 아니지요. 토대의 개혁이 아니지요. 같은 돌에 두 번 세 번 넘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자는 백성들이 무지무욕(無知無欲)하게 해야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지무욕은 자본주의 경제체제 하에서는 불가능합니다.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무엇보다 욕망(慾望) 그 자체를 양산(量産)해내는 체제입니다. 욕망을 자극하고 갈증을 키우는 시스템이 바로 자본주의체제입니다.

수많은 화(貨)를 생산하고 그 화(貨)에 대한 욕구를 극대화하는 시스템이 자본주의입니다. 내 경우에도 무엇을 사지 않기가 그렇게 힘이 듭니다. 여간한 결심이 아니고서는 CF나 쇼우 윈도우 앞에서 무심하기가 어렵습니다. 순간순간 결의를 다져야하는 흡사 전쟁을 치르는 심정이 됩니다.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 사회, 상품생산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정서입니다. 지식사회라고 하여 예외는 아닙니다. 지식은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접속만 하면 되는 것으로 선전됩니다. 나는 그것이 지식상품의 CF라고 생각합니다.

지식도 상품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지식도 상품의 형태로 생산되고 유통됩니다. 언어도 상품이 아니었음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은 언어가 가장 마진이 높은 상품입니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는 지식도 정보도 상품의 형태로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상품 이외의 소통방식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요. 상품형태를 취하지 않는 것은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시장이 허용하지 않는 것은 설자리가 없는 것이지요. 모든 것이 상품화한 거대한 시장에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무지할 수도 없고 무욕할 수도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러한 현실의 구조를 깨닫는 것 그것이 노자의 재조명이라고 생각하지요.

노자는 또 지자(智者)들로 하여금 함부로 무엇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합니다. 지자들이 벌이는 일이 바람직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노자가 매우 부정적으로 보는 일들을 지자가 저지르고 있는 것이지요.

현(賢)을 숭상하고, 난득지화(難得之貨)를 귀하게 여기게 하고 욕망 그 자체를 생산해내고, 심지(心志)를 날카롭게 하는 등 작위적(作爲的)인 일을 벌이는 사람들이 지자(智者)들이지요. 자연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이지요.

노자는 바로 이러한 일련의 작위(作爲)를 경계하는 것입니다. 무리하게 하려는 자는 실패하게 마련이며 잡으려 하는 자는 잃어버린다는 것이 노자의 철학입니다.

자연의 법칙을 존중하는 무위(無爲)의 방식으로 대처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물을 옷처럼 덮어 기르면서도 주인 노릇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衣養萬物而不爲主 34장) 그렇게 할 때에 비로소 혼란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爲無爲 則無不治) 나아가서 천하는 무사(無事)로서 얻을 수 있으며(以無事取天下 57장), 감히 천하에 앞서지 않음으로써 천하를 다스린다(不敢爲天下先 故能成器長 67장)고 합니다.

이 장의 성인(聖人)이나 지자(智者)는 적절한 비유는 못됩니다만 오늘날 정치인에 해당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언가를 쟁취하려는 사람이며, 무언가를 하겠다고 공약하는 사람이지요. 자기가 아니면 안 된다고 나서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노자적(非老子的) 성향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향(靜香) 선생님은 해방 후 지금까지 단 한번도 투표하신 적이 없다고 실토하신 적이 있습니다. 투표하시지 않은 이유가 매우 특이합니다. 이유인즉 자기가 아니면 안 된다고 나서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찍어줄 마음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삼고초려를 하더라도 선뜻 나서지 않아야 옳다는 것이지요. 하물며 자기가 하겠다고 나서서 남을 낮추어 말하고 스스로를 높여서 말하는 사람을 찍어줄 생각이 없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지역의 어른이시고 자연히 사람들의 이목이 있기 때문에 투표일에는 투표소를 휘익 한바퀴 돌고 오신다는 것이었어요.

아마 노자에게 선거권이 있다고 하더라도 투표하러 가지 않으리라고 생각됩니다. 노자의 정치학이 이와 같습니다.

노자의 정치학이 그 표현에 있어서 절정에 달한 것이 바로 ‘생선 굽는’ 이야기입니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작은 생선 굽듯이 해야 한다.”(治大國若烹小鮮 60장)는 것이지요. 작은 생선을 구울 때 기다리지 못하고 이리저리 뒤집다가 부스러뜨리는 것이지요.

생선의 비유는 일상생활의 비근한 예를 들어서 친근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모습이나 소위 국가와 사회를 경영하는 방식을 반성할 수 있는 정문일침의 화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유가에서는 이 제3장을 근거로 하여 노자사상은 우민사상(愚民思想)이며 도피사상(逃避思想)이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무지(無知) 무욕(無欲) 그리고 무위(無爲)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위(無爲)는 무행(無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무위는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방법론입니다. 실천방법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목표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난세의 극복’(無不治)입니다. 따라서 이 장은 은둔(隱遁)과 피세(避世)를 피력한 것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적극의지의 표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세(改世)의 사상이라는 것이지요.

다만 그 방식이 유원하고 근본을 경영하는 일에 관하여 진술하고 있다는 점이 차이가 있다면 있을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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