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선의 '입'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곳은 청와대 뿐만이 아니다. 최규선의 육성이 담긴 녹음테이프 내용이 처음 알려진 지난 7일 이 사실을 보도한 중앙 조선 동아와 '김대중 대통령 탈당' 등 구문을 1면 기사로 올린 여타 신문들은 확연히 구분됐다. 한마디로 조중동을 제외한 다른 신문들은 크게 한방 먹은 꼴이 됐다.
물론 최규선 녹음테이프를 보도한 조중동 사이에도 내용의 충실도에서는 큰 차이를 보였다. 자회사인 뉴스위크 한국판을 인용해 최규선의 녹음테이프를 보도한 중앙일보의 기사 내용이 가장 충실했던 데 비해 별도의 축약된 녹음테이프와 메모 등을 입수해 보도한 조선일보의 기사는 충실도가 다소 떨어졌다. 또 최규선 측근을 통해 녹음테이프의 존재와 그 요지만을 전해들은 것으로 알려진 동아일보의 보도내용은 세 신문중 가장 엉성한 편이었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최규선 녹음테이프를 보도한 세 신문이 현 정권과 첨예한 대립관계에 있는 조중동이어서 이번 보도가 최규선측의 고도의 언론플레이에 의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과연 이번 보도는 로비의 귀재 최규선의 언론플레이의 소산인가, 아니면 메이저 신문을 자처하는 조중동 세 신문의 취재력의 개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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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최규선 녹음테이프를 단독 보도한 뉴스위크 한국판 임도경 취재팀장은 8일 전화인터뷰를 통해 테이프 입수가 최규선측의 언론플레이에 의한 것은 결코 아니라며 녹음테이프는 최규선의 전기를 집필중인 작가 허모씨로부터 입수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뉴스위크 취재팀의 단독 보도 내용을 조선일보가 가로챘다며 강도높게 비판했다.
***뉴스위크 취재기자 "최규선씨가 준 것 아니다"**
임 팀장은 테이프 입수경위에 대해 "지난 1월부터 최씨의 전기를 집필중인 작가 허모씨와 출판관계로 개인적으로 잘 아는 사이다. 최규선 게이트가 터진 이후 관련 문제를 상의하다 (테이프의 존재를) 알게 됐다. 뉴스위크가 단독 보도한 최규선 테이프는 이런 개인적인 관계를 통해 입수하게 된 것이지, 최씨측에서 의도적으로 언론에 흘린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임 팀장은 "최규선씨는 오히려 지난 6일 저녁 7일자 중앙일보 초판이 나간 이후 테이프 내용이 보도된 사실을 알고 크게 화를 내며 테이프를 찾아오라고 하기도 했다. 최규선 캠프가 발칵 뒤집힌 것이다. 최씨는 테이프를 갖고 있다가 불리한 상황이 오면 기자회견을 열어 테이프 내용을 공개하려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최씨가 왜 테이프 공개를 늦추려 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임 팀장은 "최씨는 청와대 김모 비서관을 상당히 신뢰해 그를 최후의 대화창구로 남겨두고 싶어 했다. 최규선씨는 지금 시점에서 테이프가 나가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고 설명했다. 임 팀장은 최씨의 녹음테이프를 처음 입수한 시점은 일주일 전으로 그동안 기사화를 위한 준비를 해왔다고 밝혔다.
최씨 본인의 진술형 녹음테이프는 지난 달 14일 최씨가 선산이 있는 전남 영암으로 가던 도중 차안에서 80분간에 걸쳐 혼자 녹음한 것이다. 임 팀장은 일주일 전 최씨의 전기작가인 허씨로부터 녹음테이프를 받았다고 말했다. 임 팀장이 입수한 테이프는 모두 9개로 6개는 최씨의 자서전 집필을 위한 것이며, 김홍걸씨에 대한 협박과 김대중 대통령과의 관계 등 검찰조사를 앞둔 최씨의 주장이 담긴 진술은 80분 분량인 다른 3개의 테이프에 수록돼있다.
임 팀장은 최씨가 개인적 친분이나 중앙일보와의 관계를 고려해 테이프를 준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최씨와는 일면식도 없다. 작가와의 개인적 친분을 통해 입수한 것이지, 최씨측에서 의도적으로 흘린 것은 아니다. 내가 만일 다른 언론사에 있었다면 그 언론사에서 똑같이 보도했을 것이다. 최씨가 중앙일보와의 관계를 고려해 의도적으로 (뉴스위크는 중앙일보 자회사) 준 것은 분명히 아니다. 현재 다른 테이프의 공개여부를 검토중이다"고 답변했다.
***"조선일보가 특종 기사를 가로챘다"**
한편 임 팀장은 조선일보가 최씨의 이종사촌 이모씨로부터 50분짜리 편집된 테이프를 받고도 뉴스위크가 입수한 테이프 내용인 것처럼 '도둑질 보도'를 했다고 지적했다. 임 팀장은 "조선일보가 입수한 50분짜리 테이프는 마지막에 김홍걸씨에 대한 최씨의 협박부분이 들어있지 않았던 '김빠진 맥주' 였음에도 마치 조선일보 스스로 테이프 원본을 입수한 것처럼 녹취록 전문을 보도했다"고 비판했다.
임 팀장은 "조선일보의 보도태도는 언론의 상도의를 벗어난 것이다. 정말 중요한 부분은 녹음되지 않은 테이프를 갖고 마치 자신들이 입수한 내용인 것처럼 보도하는 것을 보고 정말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7일 중앙일보 보도가 나간 이후 방송 3사에서 녹음테이프를 달라고 했으나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해 방송에 나가는 것을 원치 않아 주지 않았는데 조선일보가 생색을 내며 테이프를 제공한 것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뉴스위크로부터 테이프 입수에 실패한 방송 3사는 결국 조선일보측에 도움을 요청해 테이프를 제공받고 7일자 메인뉴스에서 최규선 테이프 파문을 다루며 '녹음테이프 제공 조선일보'라고 명시했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입수해 방송3사에 제공한 테이프에는 임 팀장이 지적한 '김홍걸씨에 대한 협박 메시지'가 빠져있음이 확인됐다.
한 방송사 기자는 이와 관련 "조선일보가 제공한 테이프에는 김홍걸씨에 대한 협박부분이 들어있지 않아 육성으로 최씨의 테이프 공개의도를 다루려던 꼭지를 최씨의 육성없이 컴퓨터그래픽으로 처리했다"고 말했다.
현재 조선일보가 입수했다며 홈페이지에 올린 최규선씨의 녹음테이프는 '나라를 살려 주십시오(1분30초)' '대책회의와 밀항권유(4분18초)' '보험 들려고 홍걸이에게 돈줬다(2분03초)' '조지 소로스 초청(5분06초)' 등 4꼭지로 50분중 12분57초 분량이다. 조선일보가 입수한 테이프는 최규선씨의 이종사촌 이모씨가 검찰에 제출하기 위해 원래 80분짜리인 3개의 테이프를 50분짜리로 편집한 것이다.
***조선일보 "일부 내용 보충했다" 시인**
조선일보는 8일자 4면과 5면에 '본지 입수 최규선 육성테이프' 기사를 싣고 임 팀장이 지적한 김홍걸씨에 대한 협박부분이 포함된 것으로 보도했다.
조선일보측은 이에 대해 "7일자 보도는 애초 입수한 테이프와 이종사촌 이씨가 보낸 메모장, 그리고 최씨 측근 확인을 거쳐 이뤄졌으며 7일 뉴스위크로부터 김홍걸씨에 대한 최씨의 협박부분이 포함된 녹취록 전문을 받아 8일 기사에 참조했다. 50분짜리 테이프 입수경위와 시점은 밝히기 어렵다"고 해명했다. 뉴스위크로부터 제공받은 일부 녹취록 내용을 출처를 밝히지 않고 '본지입수'라고 보도했다는 지적을 시인한 것이다.
한편 최규선 게이트가 터진 이후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계열사인 뉴스위크 한국판이 최씨 단독인터뷰나 녹음테이프 폭로 등을 통해 여론을 주도하자 지난 4월 19일 구속된 최씨가 주위 측근 등을 이용해 고도의 언론플레이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최규선, 조선일보와 '단독인터뷰'하며 의도적 접근**
실제로 조선일보는 지난 4월 9일 기자회견을 연 뒤 조선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가졌고 4월 16일에는 조선일보에 전화를 걸어 30여분간 전화인터뷰를 갖기도 했다. 조선일보에 타 신문이나 방송과는 다른 차별대우를 한 것이다.
조선일보는 최씨와의 단독인터뷰를 4월 10일자 '최규선씨 "김홍걸씨에 9억원 줬다"'와 '최규선씨 주장 "홍걸씨돈 4억 갚아줬다"' 등 4꼭지에 걸쳐 자세하게 보도했고 17일에는 '최규선 인터뷰 "최 총경, 전부 밝히면 난 조직서 죽어"'라는 전화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조선일보의 한 간부는 이에 대해 "최규선씨와는 이미 오래 전부터 단독인터뷰를 갖는 등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이번에 입수한 50분짜리 녹음테이프도 최씨측에서 스스로 제공한 것이다"며 "조선일보가 최씨와 특별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현 정부와 조선일보가 대립각을 세우고 있으니까 먼저 접근해온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규선씨와의 인연은 사실 조선일보보다 중앙일보가 더 깊다. 중앙일보는 지난해 1월 8일 1면 '미국 부시 핵심측근 베이커 전 국무 인터뷰'와 5면 '제임스 베이커 특별인터뷰-북, 미사일 포기의지 보여줘야'라는 전면기사를 통해 당시 도쿄대 객원연구원이란 직함을 가졌던 최씨와 베이커 전 국무장관과의 대담을 보도했다.
<사진, 중앙일보 2001년 1월 8일자>
***중앙일보 최규선에 호의적 보도**
중앙일보는 당시 5면 기사에 베이커 전 국무장관과 최씨 사진을 나란히 세우고 두 사람의 약력까지 소개하는 등 최씨에 대해 파격적일 정도로 호의적인 보도태도를 보였다. 최규선씨 또한 자신과 베이커 전 국무장관과의 대담을 보도한 중앙일보 기사에 상당한 만족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 지난 3월 28일 경실련 홈페이지에 '최규선의 비리'라는 글을 올린 천호영씨는 최씨가 자신의 사진이 실린 2001년 1월 8일자 중앙일보 신문을 500부 샀다고 밝히기도 했다.
천씨는 이 글에서 '(최씨가) 신문에 나온 자기 약력을 과시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도쿄대 객원연구원을 사칭했다. 연구원인 최규선은 일본도 거의 간 적이 없다'며 '하다 못해 룸싸롱에 종사하는 아가씨들에게까지도 신문을 보여주며 자기를 과시한 적도 있다'고 지적했다.
***조선·중앙 주도에 다른 신문들 전전긍긍**
한편 다른 신문들은 최규선 게이트 이후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독주가 계속되자 전전긍긍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씨가 공개한 녹음테이프 등이 워낙 큰 폭발력을 가지고 있어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주도하는 게이트 보도를 따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조급한 상황에서 신문제작을 하다 보니 예기치 않은 실수도 발생했다. 동아일보의 경우 7일 최씨의 녹음테이프 관련보도에서 최씨가 청와대 김모 비서관을 만났다고 오보를 냈다가 8일 A7면 '바로잡습니다'를 통해 만난 것이 아니라 "전화통화한 것으로 밝혀졌다"는 정정기사를 실었다. 한 기자는 7일자 신문을 위해 6일 저녁 급하게 관련기사를 처리하다 보니 실수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한 일간지 중견기자는 이같은 상황에 대해 "최씨가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를 이용해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다고 본다"며 "조선일보는 현 정부나 김대중 대통령과 가장 대척점에 있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고, 중앙일보와는 베이커 전 국무장관과의 대담기사 등을 통해 자신에게 호의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최씨는 지난 2월 중앙일보의 부시 대통령 단독인터뷰 때도 자신의 미국 인맥을 동원하는 등 인터뷰 성사에 상당한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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