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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한다더니 웬 신사참배?"

<해외언론 반응> 일본 언론도 고이즈미 신사참배 비판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전격적인 신사참배에 대해 아사히 등 대부분의 일본 언론들도 비판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마이니치는 23일자 사설을 통해 이번 신사참배는 '배신적 행위'라며 고이즈미 총리를 강도높게 비판했다. 뉴욕타임스, 파이낸셜 타임스,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 등 미국과 유럽의 언론들도 고이즈미의 수구반동적 행태를 비판했다.

일요일인 지난 21일 이른 아침 고이즈미 총리는 기습적으로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단행했다. 메이지(明治) 시절인 1869년 세워진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국수주의의 상징. 이곳에는 1853년 이후 전쟁에서 사망한 전몰자 2백47만여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문제는 이 가운데 2차대전후 도쿄 전범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처형된 도조 히데키 등 A급 전범 14명의 위패가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2차대전의 A급 전범들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신사에 일본 총리가 참배한다는 것은 일본의 전쟁 책임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행위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것은 지난 1985년 나카소네 당시 총리 이후 지난해 고이즈미 총리가 처음이다. 신사참배를 선거공약으로 내세웠던 고이즈미 총리는 지난 해 한·중 이웃 나라들의 반발을 의식해 '종전 기념일'인 8월 15일보다 이틀전인 8월 13일 신사참배를 단행했다.

이번에 패전일보다 4개월 가량 앞당겨 신사참배를 단행한 것은 지난 해 참배로 빚어진 외교적 마찰을 최소화하면서 대국민공약을 지키려는 나름대로의 계산이 작용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아사히, "총리는 왜 야스쿠니 참배에 집착하는가"**

고이즈미 총리의 전격 참배에 대해 가장 먼저 비판한 것은 아사히신문이었다. 아사히는 22일자 사설 '야스쿠니참배, 왜 총리는 집착하는가'에서 총리의 신사 참배는 "야스쿠니가 이룬 역할에 대한 역사적 통찰이 결여"됐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사설은 이어 "(신사 참배는) 일본 자신의 문제이지만 한·중 등 이웃나라의 감정도 무시할 수 없다. (일본의 대외군사활동 범위를 넓힌) 유사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직후인 점에서는 더더욱 오해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월드컵 공동개최를 눈앞에 두고 한일우호에 또다시 찬물을 끼얹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23일자 마이니치 사설('야스쿠니신사 참배 - 당돌, 눈가림, 부족한 숙고')은 한층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마이니치는 고이즈미 총리가 이번 참배에 앞서 "총리의 참배가 헌법의 정교분리에 저촉된다는 것, 군국주의와 결별하겠다는 우리들의 맹세에 반하는 행동은 아닌가" 하는 점을 충분히 숙고했느냐고 물었다. 사설은 이어 "여당 간부에게조차 (참배 사실을) 직전에 전달됐을 만큼 긴급"한 것이었느냐고 되물으면서 총리의 참배 결정은 당돌한 것이었다고 비판했다.

마이니치는 또 이번 참배는"어떠한 종교단체도 국가로부터의 특권을 받으면 안된다"(일본헌법 20조 1항), "국가 및 그 기관은 어떠한 종교활동도 하면 안 된다"(20조 3항)에 어긋난 것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야스쿠니신사는 군국주의의 정신적 지주였으며 A급전범도 합사돼 있다. 국가를 대표하는 총리가 이러한 신사에 참배하는 것은 국제약속을 깨려는 의사라고 받아들여진다. 참배를 둘러싸고 한국,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지난 해) 몸으로 느꼈을 터이다. 총리뿐만 아니라 정부간 왕래, 어린이들의 민간교류에까지 영향이 미쳤었다."

***마이니치, "신사 참배는 배신적 행위"**

사설은 특히 "올 3월 총리는 서울에서 '신뢰관계를 중요시하는 성신(誠信)의 교류야말로 한국에 대한 기본"이라고도 말했다. 또 (야스쿠니신사가 아닌) 새롭게 (전몰자들을) 추도할 수 있는 시설이 정부내에서 검토중"임을 상기시키면서 "검토를 지시한 총리 자신이 그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행동한 것은 성신이 아닌 배신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한편 도쿄신문 23일자 사설('야스쿠니신사 참배, 총리는 더욱 숙고를')도 "총리의 판단은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한 역사적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야스쿠니신사에는 제2차대전에서 A급전범으로 알려진 사람들이 합사돼 있다. 한국, 중국이 반발하고 있는 이유는 양국민에게 다대한 고통을 준 전범의 혼을 위령하는 신사에 총리가 참배했다는 불쾌감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설은 이어 "8월15일의 참배를 피한다 해도 A급전범의 합사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현실에서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해 총리는 더욱 신중했어야 했다"면서 "현직의 총리인 이상 개인적인 신조를 억누르고 국민 전체의 입장에서 행동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이 신문은 또 "전몰자를 위령하는 것이 총리의 참배 목적이라면 무명전사를 안치하고 있는 국립 치도리가부치(千鳥淵) 전몰자묘지의 확충이나 국립위령탑의 설치라는 방법도 있다. 국민을 포함해 폭넓은 논의를 거친 후 현실적인 결과를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요미우리는 고이즈미 두둔**

반면 우익을 대변하는 산케이, 요미우리 등은 고이즈미의 신사참배를 두둔했다. 특히 요미우리는 "총리 야스쿠니 참배, '나타소네 총리 이전'으로 돌아간 것일 뿐" 제하의 22일자 사설에서 "이번 참배는 나카소네 총리 이전으로 돌아간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특히 "고이즈미 총리의 전격적인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담담히 조용한 환경하에서 하고 싶다는 정치적 배려에 의한 것", "8월에 참배하면 불필요한 혼란을 초래할 수 있어 총리가 이 시기를 택해 참배한 것은 적절한 판단"이라면서 고이즈미 총리를 적극 옹호했다.

요미우리는 또 "본래 지도자가 전몰자를 추모하기 위해 언제 참배할 것인가는 그 나라의 전통과 관습에 기초한 국내문제로, 타국으로부터 간섭 당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한국, 중국 등의 비판을 일축했다.

***파이낸셜 타임스, "개혁한다더니 웬 신사참배?"**

그러나 이같은 지지 입장은 요미우리 등 일본의 일부 우익언론에 한정된 것일 뿐, 아시아와 미국·유럽 등의 해외언론은 한결같이 비판적 입장을 보였다.

예컨대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22일자 기사에서 "1년전 바로 오늘 고이즈미가 자민당 당수로 선출되자 해외에서는 일본이 과거식 정치를 탈피할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었다"면서 "그러나 야스쿠니신사는 바로 일본의 과거에 대한 존경심, 특히 잔혹했던 과거에 대한 존경심을 상징한다"며 고이즈미의 신사참배를 꼬집었다.

또 영국의 가디언은 22일 고이즈미의 신사참배로 일본은 "월드컵 공동개최국인 한국과의 정면 충돌의 위험을 택했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일본 국내정치가 이번 기습 참배의 배경"이라고 분석하면서 고이즈미는 이번 참배로 "그의 가장 중요한 지지단체중 하나인 '참전용사회'를 다시 한번 기쁘게 해주었다"고 비꼬았다.

한편 홍콩에서 발행되는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는 22일자 사설에서 고이즈미 총리가 "예상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예고없이 참배한 것은 세계의 관심이 월드컵에 집중되어 있는 때에 한국이 지나치게 거센 반발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계산에 나왔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신문은 이어 "이번 참배에서 우려스러운 것은 2차대전 전후 일본이 이웃 나라들에 가한 고통을 얼버무리려는 민족주의자들의 힘이 느껴진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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