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시사카페' 15일자 '장기표 대표께 드리는 고언'에 대해 당사자인 장기표 대표가 프레시안에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글을 보내왔다. 이 공개편지의 전문을 소개한다. 편집자
유시민동지께!
아끼는 후배가 '고언'이란 이름으로 나의 불찰을 지적하는 글을 보내오니 적이 곤혹스럽군요. 더욱이 이번 노무현씨 관련 글만의 문제가 아니라 민국당 문제 등 후배들을 실망시켜온 일들을 지적하니 몸둘 바를 모르겠군요. 그러나 그런 구체적 사안보다 거듭되는 실패로 후배들께 너무 많은 실망과 걱정을 하게 해서 엄청난 죄책감을 느낀다는 점을 먼저 밝혀두지 않을 수 없군요.
그런데 나에 대한 실망과 걱정이 어찌 유시민 동지만의 것이겠소. 많은 후배들이 비슷한 실망과 걱정을 하고 있겠지요. 나를 포함해서 선배들이 제대로 했던들 오늘 겪고 있는 온갖 시련과 수모를 겪지 않아도 될 것을 생각하면 어떤 비난도 받아 마땅하지요. 그런 점에서 운동권 선배의 한 사람으로 엄청난 죄책감을 느낀다는 것을 거듭 밝혀두고자 합니다.
그런데 내가 노무현씨의 '언론관련발언'(발언하지 않았을 수도 있음)을 문제삼아 어줍잖은 글을 하나 써 올린 것은 단순히 그 문제 때문만은 아니었답니다. 나는 사실 노무현씨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보는 바, 이것이 그 글을 쓰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이지요.
그래서 나는 진작 노무현씨를 비판하는 글 내지는 노무현씨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되는 이유를 써 올리고 싶었으나 그 대안도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누구도 안 되고 누구도 안 된다는 식의 글을 쓰는 것도 무책임하거니와 특히 노무현씨와의 사적인 관계를 고려할 때 내가 그런 내용의 글을 쓰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보아 자제하고 있었던 거죠. 그러던 차에 '언론관련발언'이 나왔는데, 그 문제가 내 판단으로는 노무현씨의 정치성향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고 보아 이번 기회에 노무현씨를 비판하는 글을 하나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 글을 썼던 것이랍니다.
그러나 나는 그 글에서 노무현씨를 전면적으로 비판하기 보다 노무현씨가 한 말에 근거해서 부분적으로 비판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즉 노무현씨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은 자제하면서 좀더 지켜보고자 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노무현씨 말의 모순을 지적하는 차원에서 비판했던 것이지요. 이렇든 저렇든 노무현씨를 비판했다는 점에서는 같은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요.
그러면 나는 왜 노무현씨의 그 '언론관련발언'이 노무현씨의 정치성향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고 보았는지 밝히고자 합니다.
기본적으로 나는 노무현씨가 그런 내용의 발언을 했다고 봅니다. 이것은 나의 막연한 추측이나 선입견 때문만이 아니라 노무현씨가 '해명'한 말들에서 충분히 그런 판단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노무현씨가 정말로 그렇게 할 생각(국유화 또는 폐간)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발언을 한 것이 아니라 당시의 상황논리에 따라 그런 발언을 했으리라고 보는 것이 나의 판단입니다. 노무현씨의 이러한 점 곧 상황논리에 따라 그때그때 사람들이 듣기 좋도록 말하는 것이야말로 노무현씨의 중요한 성향이라고 보아 바로 이점을 나는 지적하고자 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바로 이러한 정치성향에 기초한 발언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그를 개혁적이거나 진보적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 같아 이를 방치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나는 기본적으로 노무현씨가 국정운영능력 내지는 국정운영방안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보는데, 문제는 그런 방안이 없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다른 정책을 구사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보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 점을 깊이 우려하는데, 언론관련사건은 나의 그러한 우려를 확인시켜 준 것이라고 보아 그 문제를 중시하게 되었답니다.
혹 내 글과 관련하여 '노무현이 조중동과 싸우는데 장기표는 왜 조중동 편을 드느냐'든가, '장기표가 아무리 순수한 입장에서 정당한 비판을 하더라도 조중동이 그것을 악용할 줄을 모르고 그런 글을 쓰느냐'하는 비판을 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요. 매사를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것이지요. 물론 그런 고려를 해야 할 때가 있긴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이 문제는 조중동과의 싸움이라기보다 노무현씨 정치성향의 단면을 드러낸 문제였기에 이것은 방관해서는 안 되겠다고 본 것이지요. 그리고 어차피 노무현씨를 비판하는 글을 좀 써야 하겠는데 이런 식으로 시작해두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유동지는 나더러 노무현씨가 그런 발언을 했는지 안 했는지 확인했어야 하고, 그 확인은 의혹을 제기한 쪽을 향해 해야 한다는 견해에는 동의하기 어렵군요. 나는 우선 노무현씨가 그런 발언을 했느냐 안 했느냐를 밝히기 위해서 그 글을 쓴 것이 아니라 노무현씨의 해명이 논리적으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고 보아 그 글을 쓴 것이거든요. 그리고 노무현씨의 해명에서 그런 발언을 했으리라고 추측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는 터라 의혹을 제기한 사람에게 문제를 제기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지요.
유시민 동지!
짐작하시다시피 나는 요즘 고민이 보통 많은 게 아니라오. 한국정치를 근본적으로 혁신해야 할 상황은 도래했는데 그럴 만한 힘은 없고, 그리고 엉뚱한 일들이 벌어져 상황은 더더욱 어려워지고 있으니 어찌 답답하지 않을 수 있겠소? '노무현 돌풍'의 긍정적 의미를 살려 정치혁신은 물론 진보정치세력 구축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논의들도 있는 것 같으나 나는 그런 견해에는 동의할 수 없군요. 좋은 방안이 있으면 들려주시오.
변함없는 명논설을 기대합니다.
(전화를 하려다 어차피 공개편지를 했으니 공개답변을 하는 것도 무방하겠다고 보아 이 글을 띄우니 양해하세요)
2002. 4. 16.
장 기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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