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스 아메리카나'로 대변되는 미국의 패권주의를 견제하려는 유럽의 움직임이 유럽합중국 헌법 제정논의, 유럽연합 확대추진 등과 더불어 가속화되고 있다.
"유럽통합 헌법을 제정하자." 지난 달 28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처음 열린 유럽미래회의의 의장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 프랑스 대통령이 회의에 참석한 회원국과 유럽연합 대표 1백5명에게 '유럽합중국을 향한 새로운 발걸음이 시작됐다'고 평가하며 제안한 말이다.
데스탱 의장은 개회식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유럽헌법 제정에 대한 일치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면 15개 유럽연합 국가와 13개 EU 가입희망국의 대표들이 참석한 이번 유럽미래회의는 실패일 것"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는 개회사에서 '우리 모두가 지지할 수 있는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유럽헌법을 위한 길은 열려 있다'며 참석자들의 통합의지를 촉구했다.
유럽헌법 제정을 통한 유럽통합정부 건설과 유럽연합 회원국 확대문제를 주제로 브뤼셀에서 개최된 유럽미래회의 개회식에는 데스탱 의장외에 유럽연합 의장국인 스페인의 호세 마리아 아즈나 총리와 로마노 프로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패트 콕스 유럽의회 의장 등이 참석했다.
데스탱 의장은 먼저 개회사에서 지난 수십년간 유럽의 안정성과 복지의 보장과정에서 나타난 성공적인 유럽의 통합과정을 회상했다. 그는 유럽통합의 걸림돌로 '유럽공동체보다 국가이익이 우선하는 상황' '유럽연합에 대한 소속감과 국가 정체성 상실에 대한 두려움간의 증가하는 긴장' 등을 지적했다.
데스탱 의장은 "이번 유럽미래회의는 1955년 메씨나 컨퍼런스 이후 처음으로 미래의 유럽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에 대해 심사숙고할 기회를 주고 있다"며 "이 회의가 무산된다면 우리가 지난 50년간 이루어온 성과들이 파괴될 수 있는 위험이 존재한다"고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유럽연합 의장국인 스페인의 아즈나 총리는 개회식 연설을 통해 지난해 12월 브뤼셀 유럽연합 회원국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유럽시민을 위한 헌법 제정'이란 목표를 상기시켰다. 그는 "통합목표를 위해 열정적인 사람들은 이제 유럽프로젝트의 마무리 즉 안정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유럽통합이란 저절로 이루어지는 목표가 아니다"고 말했다.
브뤼셀 유럽미래회의가 열리게 된 당초 배경은 현재 15개국인 유럽연합 회원국을 25개국으로 확대하는 문제를 논의하는 데 있었다. 유럽연합은 현재 회원국가간 정상회담과 의회, 집행위원회 등으로 구성된 유럽연합 지배구조의 변화를 전제로 하는 회원국 확대 문제를 12개월 정도의 기간을 두고 추진중에 있다.
현재 유럽연합 가입을 희망하는 국가는 후보국 터키를 비롯해 1차 가입협상국인 체코 폴란드 헝가리와 동유럽 9개국 등 13개국이다. 유럽미래회의 부의장인 장 뤼크 드하네 전 벨기에 총리는 "어떤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한두달 시간이 더 걸리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밝혀 유럽연합 확대문제가 간단한 사안이 아님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번 회의에서 데스탱 의장이 주창한 유럽통합 헌법을 제정하기 위해 넘어야 할 장애물은 어떻게 회원국간의 마찰을 최소화하고 각국이 수용할 수 있는 헌법을 제정하느냐다. 로만 헤르초크 전 독일 대통령은 이미 '현존하는 다양한 법들을 서로 연계성을 갖지 않는 하나의 통합헌장으로 융합하는 안'을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이 안은 이념적으로 갈등의 소지가 있는 문제들을 미봉한 계약서의 한 부분으로만 짜여져 현존하는 국가간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해소하는데는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유럽의 민족과 국가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헌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로마노 프로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그러나 유럽연합이 민족적 이기주의에 빠져선 안된다. 유럽헌법은 초강대국으로 가자는 의미가 아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프로디 의장의 말은 유럽의 통합을 위한 헌법제정이 유럽을 미국에 이은 또하나의 패권주의로 전락시켜서는 안된다는 경고로 해석된다.
이번 회의의 결정은 어떤 결정권을 갖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각국 대표들로 구성된 유럽미래회의 지도부는 향후 15개월간 유럽연합의 확대문제 등을 심도있게 준비해나갈 예정인데 각국의 이견조율을 거친 유럽미래회의 지도부가 통일된 안을 제시할 경우 유럽회원국 확대문제는 지도부 안대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유럽언론들의 분석이다.
제2차 유럽미래회의는 오는 21일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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