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글은 지난 22일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가 개최한 '한미 정상회담 이후 북미관계 전망' 세미나에서 발표된 가톨릭대 박건영 교수(국제학부)의 발제 논문 '한미 정상회담과 남북미 관계의 동학'이다. 연구소측과 필자의 양해를 얻어 전재한다. 편집자
***1. 한미정상회담 개괄 평가**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이 야기한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고 전쟁가능성을 일축했다는 면에서, 그리고 대북포용정책에 대한 전폭적 지지를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다른 한편, 부시 정부의 북한에 대한 경고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는 점을 재확인함으로써 미국의 대북정책의 기조를 명백히 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북미협상의 가능성이 제고되었다.
부시 대통령은 미사일 수출중단, 재래무기 후진배치를 협상의 전제조건에서 제거하였다."대화를 하게 되면 강조하고 싶은 것은 휴전선에서 한국을 겨냥하고 있는 무기를 뒤로 빼라는 것이다" (요르단의 압둘라 왕과의 기자회견시 "We would be more than happy to enter into a dialogue with them if that[북한의 재래무기 후진배치 및 미사일 수출 중단] be the case")
'악의 축' 발언이 야기한 난기류가 거두어졌다는 의미가 없지는 않지만 사실은 '악의 축'은 '북한 공격' 시나리오와는 원래부터 무관했다. '악의 축' 발언은 물론 "위험스런 북한"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지만, 군사외적 목적도 포함하고 있었다고 판단된다.
스코우크라프트 장군이 "이 부분은 연설의 다른 부분과 조화되지 않는다"고 말했듯이, 은폐된 다른 목적들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중간선거(9.11 이후 식어갈 수 있는 미국인들의 애국심 유지, 엔론 스캔들을 부시 정부 경제정책 실책의 상징으로 선거쟁점화하려는 민주당의 전략에 대한 대응), 미사일방어 및 국방비 대폭 증액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목적, 이라크ㆍ이란과 함께 북한을 포함함으로써 문명충돌론적 시비에 휘말리는 것 예방, 대한 무기 판매 등이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북한 공격 가능성은 아예 없었지만, 부시 정부의 대북 불신은 여전하다. 부시 대통령은 방한시 북한을 "독재정권(despotic regime)"으로 불렀고, "투명성"이 부재한 국가, 그리고 "주민은 굶어죽어도 군비증강에만 열을 올리는" 지도부를 비판했다.
***2. 북한의 반응과 향후 행보 전망**
북한은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절박한 경제상황에 놓여있다. 많은 행사가 준비되어 있다.
부시 대통령의 강경발언의 효과는 이미 흡수되어 한미정상에서의 발언수위는 오히려 포용의 측면을 더욱 많이 보여주었다. 북미협상의 전제조건이 제거되었다. '악의 축' 발언 이후 유엔주재 북한 대사는 "동등한 위치에서 조건없이 만날 수 있다"고 이미 발언한 바 있다.
남북관계의 걸림돌이 되었던 테러전쟁과 관련한 비상경계령, 주적론, 홍순영 장관과 관련된 문제 등이 모두 해소되었다. 약간의 냉각기를 가진 후, 남북 북미대화에 응할 것으로 예상된다.
***3. 북미 대화**
***가. 정상회담 이후 미국의 대북정책의 향방**
이 문제는 '악의 축' 발언과 햇볕정책간의 조화가 가능한가 하는 문제를 던짐으로써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다. 부시 대통령과 라이스 보좌관은 그동안 이 두 가지 사안에 대한 설득력있는 연계논리를 제공하지 못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양자간의 관계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보여주었다. 즉 "레이건 대통령도 소련에 대해 강경노선을 취했지만 결국 고르바초프가 출현하여 협상에 나서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식의 논리를 최초로 제시했다.
요컨대 부시 정부는 레이건의 대소 접근을 원용하여 대북 접근에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레이건 정부와 같이, 강제력을 사용하지 않지만 미사일방어 등 방어체계를 증강하는 가운데, 협상이 시작되면 힘의 우위에 입각해 미국 중심으로 이끌고 가겠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남한의 포용정책의 핵심중 하나인 "신축적 상호주의"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 회견중 북한이 협상에 응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경우 구체적인 경제지원책을 가지고 있는지, 특사를 파견할 의사가 있는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부시 대통령은 언급을 회피하였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없지 않다.
그러나 (1) 대북협상의 전제조건이 제거되었고 (2) 경의선 복원에 대한 지지가 표명되었으며 (3) 북한 정권과 주민에 대한 분리 대응이 제시되었다는 면에서 전향적인 부분도 지적될 수 있다.
***나. 향후 북미대화에 대한 전망**
대량파괴무기 문제는 핵사찰ㆍ생화학무기ㆍ미사일 문제가 되고, 재래무기는 후진배치 문제가 주로 된다. 핵사찰은 경수로가 2003년까지 건설될 수 없는 형편이기 때문에 전력손실분 보상의 문제를 둘러싸고 북미간의 대립이 예상된다.
북한이 아직까지 핵동결을 성실히 수행해 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손실분 보전은 중대한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이 전력만 취하고 사찰에 응하지 않는다면 미국 등은 전력ㆍ중유 공급을 중단하고, 경수로 핵심부품의 인도를 거부할 수 있다. 경수로는 무용지물화할 것이다. 나아가 미국 등은 북한의 대량파괴무기 보유를 반대하는 중국ㆍ러시아와 다자주의적 대북 압력전선을 형성할 수 있다.
9.1테러 이후 부각된 의제로,미국은 북한이 생화학무기의 개발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주장하며 압박하고 있다. 북한의 생물무기금지협약(BWC) 의무이행 및 화학무기금지협약(CWC) 가입 등이 쟁점이다. 생물무기 문제는 미국이 BWC의 검증기제(verification mechanism)를 제도화하는 노력에 동참한다면 실마리를 풀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이 생물무기금지협약 이행을 강화하기 위한 의정서 초안을 거부하는 이유는 미 정부의 생물학무기방어 프로그램이 외부에 노출돼 위험스런 국가들이 미국의 생물학 무기 전반에 대해 알게 되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다. 난제 중의 하나이지만 미국의 의정서 초안 수용 여부가 관건 중의 하나이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위에서 제시한 대량파괴무기를 장거리에 운반하는 수단인 탄도미사일 문제이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문제는 '셔먼, CFR의 접근법(disaggregation method)'을 따르면 안정적인 궤도를 탈 수 있을 것이다.
미사일 문제와 관련해 북한은 이미 클린턴 정부 때 3백 마일 이상 사거리를 가진 탄도미사일의 생산ㆍ시험ㆍ배치 뿐 아니라, 미사일 및 부품ㆍ기술의 수출 또한 중단하겠다고 제의한 바 있다. 협정 검증 및 기존 배치 미사일의 폐기 문제가 미해결이나 이는 추후 협상 의제로 남겨둘 것이었다.
재래무기 후진배치는 부시 행정부가 새로 제시한 의제로 접점을 찾기 힘든 문제다. 미국은 휴전선에 배치된 170㎜ 자주포, 240㎜ 방사포 등 장거리포의 철수와 117만 북한군 병역의감축 및 후방배치를 요구하고 있다. 북한은 `일방적 무장해제 요구'라며 '주한미군 철수'로 맞받아치고 있다.
재래무기 후진 배치 문제가 북미협상에서 논의된다면 미국 등이 받을 수 없는 주한미군 철수 문제 또한 협상테이블에 올라와져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북한 측의 입장에서는 부대이동의 비용을 조달할 수 없는 처지에 있다는 점이다. 용산 미군기지 이전에 1백억 불이 든다면 북한의 총생산은 1백70억 불이다.
아울러, 북한의 재래무기 위협은 한미연합방위력으로 억지되고 있다는 점, 남북기본합의서에 따르면 이 문제는 남과 북이 (군사공동위를 통해) 해결해 가기로 되어 있다는 점 등이 지적되어야 한다. 구동존이가 아니라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접근법은 협상을 결렬시키거나, 장기화할 개연성이 높다.
이와 관련하여 한 가지 대안은 DMZ내 경계초소(GP)들을 밖으로 재배치하거나 폐기하는 일이다. 정전협정과도 부합하고 평화문제와 관련한 실질적 성과를 내는 측면이 있다. 비용은 예방적 방어(preventive defense)전략의 관점에서 한미가 조달할 수 있을 것이다.
***4. 남북 관계**
이번 한미정상회담 결과가 남북대화 재개를 포함한 남북관계 개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가 중요하다. 단기적으로는 2001년 3월 한미정상회담 이후 상황이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냉각기 이후 대화에 나올 가능성 이 높다.
여기에는 남한의 정책적 의지가 중요하다. 인도주의적 지원, 비료ㆍ식량지원, 금강산관광사업 정부 지원 강화, 조건부적 전력지원 등이 방법일 수 있다. 북한은 절박한 경제상황, 아리랑 축제, 춘궁기 등을 고려하여 적어도 남한ㆍ미국 분리 대응책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
***5. 한미 관계**
***가. 미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
***국제정치의 이익추구 논리**
- 대외관계에서 한국이 국가이익을 추구하듯 미국도 당연히 국가이익을 추구한다. 이것을 부정하거나 도전하면 국제정치의 기본을 간과하는 것이다. 미국이 초강대ㆍ부국이라 해도 국내정치의 제약 등으로 타국에 '조건없이' 시혜적일 수 없고, 오히려 상호주의에 입각한 배타적 이익추구가 정상적 행위라고 전제해야 한다.
- 부시 대통령은 자신의 정권적 이익을 추구할 것이다. 이것 역시 부인해서는 안 되는 정치의 철칙이다.
- 이와 같은 맥락에서, 예를 들어, 부시 대통령이 우리 정부에 단종위기의 F-15전투기를 구매토록 요청하는 것 자체는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미국은 일괴암(一塊巖)이 아니다**
- 세계 어느 나라보다 더 다원주의적인 사회인 미국의 외교정책은 많은 부분 국내정치에 그 연원을 둘 수밖에 없다. 다양한 정치세력이 일정한 규칙내에서 이익을 자유롭게 추구하도록 헌법과 문화가 보장ㆍ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대미정책이나 관점이 반미ㆍ친미 등 이분법적 사고에 기초해 있다면 이는 시대착오적이다. 친북ㆍ반북 역시 시대역행적이다. 반미는 한국이 취하고 활용할 수 있는 미국내 유휴정치자원을 현실화시키는 데 장애로 작용하거나, 심지어 이유없이 한국의 적을 생산하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나. 대미외교의 대안**
***이한제한(以韓制韓 극복을 위한 정치의 반성과 협력**
- 이익추구에도 규칙과 도덕이 존재한다. 햇볕정책 비판, 북한의 재래무기 위협 강조가 전투기 등 무기강매를 위한 수단이라면 이는 (1) 한국의 국내정치에 대한 개입 (2) 주권침해의 소지가 있다(한국군 운용, 남북기본합의).
- 정부는 이러한 사안들이 연계되어 있을 경우 미국이 전통적으로 사용해온 "이한제한(以韓制韓)"이라는 대남한 협상지렛대를 제거하기 위해서라도 타협해서는 안 된다. 차기 정부에 부담이 된다. 이러한 선례는 국가외교정책의 백년대계를 위해 지양되어야 한다. 이를 이루어나가기 위해서는 초당적 협력 필수적이다.
(이한제한의 사례: 1980년 미국이 전두환 정권에 민주화를 촉구하기 위한 수단을 찾고 있을 때 국가안보회의(National Security Council)의 데이비드 에런은 "말로 하는 것은 아무런 효과도 없다 ... 그 친구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미국이 북한과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는 미국이 자신의 대북 정책을 대 남한 영향력을 제고시키는 방향으로 관리하고자 하는 의도를 명확히 반영한다 하겠다.)
***미국내 정치자원 개발**
대미정책은 한국의 정치자원이 될 수 있는 미국내 인사들이나 집단들을 찾아내고 세력화하며, 지속적으로 의사소통라인을 유지ㆍ운용한다는 기조에 입각할 필요가 있다. 전통적인 외교수단 외에 정당ㆍ의원외교, 시민단체 교류 등의 활성화가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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