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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에서 시작하자"

'작은 언론이 희망이다'의 저자, 장호순 교수

미국 아이오와주 에임스에는 데일리 트리뷴이라는 신문이 있다. 발행부수 1만. 우리 기준으로 보면 신문이랄 수도 없는 아주 조그만 지역신문이다. 하지만 이 신문의 발행인 마이클 가트너는 결코 작은 사람이 아니다. 월스트리트저널 기자로 출발해 아이오와주 최대의 신문인 데모인 레지스터 편집국장을 거쳐 USA투데이와 NBC뉴스 사장을 역임한 미국 최고 경륜의 언론인이다.

그런 그가 1993년 NBC뉴스 사장을 그만두고 맡은 것이 데일리 트리뷴의 논설위원직이었다. 초창기 그는 지역사회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했다. 지역사회의 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바람에 지역사회의 안정을 저해하는 인물이라는 비난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공원, 주차장 문제 등을 다룬 논설로 97년 퓰리처상을 받으면서 자신의 진가를 입증했다.

윌리엄 알렌 화이트(1869-1944)란 언론인이 있다. 죽을 때까지 48년동안 고향인 캔사스주 엠포리아에서 엠포리아 가제트라는 지역신문을 펴냈던 그는 1999년 지난 20세기동안 미국을 빛낸 25인의 신문인중 한명으로 선정됐다.

미국의 지역신문이 간단치 않음을 보여주는 이 일화들은 순천향대 장호순 교수(언론학)가 최근 펴낸 ‘작은 언론이 희망이다’라는 책에서 따온 것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서울사람들에게는 지역신문이란 말조차 낯설 것이다. 지방지도 아니고 지역신문이라니.

지역신문은 군 단위, 또는 대도시의 구(區) 단위로 발행되는 신문이다. 대략 10-20명의 인원이 1만5천부 내외를 발행하는 아주 작은 신문이다. 87년 6.10시민항쟁의 덕택으로 언론 발행에 대한 제한이 풀리면서 충남 홍성 등지에서 발행이 시작됐고 지금은 2백여개 남짓이 발행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지역신문 하면 사이비언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게 우리네 실정이다.

***지역언론이 잘 돼야 민주주의도, 언론개혁도 성취**

장호순 교수는 이런 사회적 통념과는 정반대되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지역언론이 잘 돼야 민주주의도 잘 되고 언론개혁도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난 96년 지역언론과 인연을 맺은 이래 지금까지 지역언론을 살리고, 키우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이번에 낸 책 ‘작은 언론이 희망이다’는 그동안의 노력과 경험을 모은 것이다.

지난 10월 25일 서울에 들른 장 교수를 프레시안 사무실에서 만났다.
‘책이 잘 나가느냐’는 첫 질문에 그는 “뭐 잘 나갈 책입니까. 지역에서들 많이 보시라고 지역에 많이 내려보냈습니다”라고 덤덤하게 답한다.

“왜 지역언론입니까”
“언론 없이 민주주의가 안 된다는 것은 다들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방자치가 잘 되려면 제대로 된 지역언론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장 교수는 ‘언론 인프라’라는 개념을 앞세워 지역언론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지방자치가 시행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아직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 것은 바로 지역언론이 제 구실을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방정부를 감시하고, 경제 사회 문화 등에 걸쳐 지역공동체의 각종 정보들을 유통시켜주는 언론 인프라가 제대로 돼 있지 않고서는 지방자치가 잘 될 턱이 없다는 것이다.

***지역사회 살리려면 언론인프라부터**

“인구의 도시 집중이 큰 사회문제 아닙니까. 이 문제를 푸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지방도 도시만큼 잘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지역공동체를 활성화시키는 데 언론만큼 중요한 것도 없습니다”

장 교수는 정부가 IT산업이나 중소기업 육성에만 돈을 쏟아부을 것이 아니라 지역언론 육성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역사회를 살리는 데 지역언론만큼 부가가치가 큰 산업도 없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

두 번째 이유는 일제시대 이후 정부는 언제나 지역언론 탄압정책을 펴왔으므로 잘못된 언론정책의 희생자인 지역언론을 이제라도 정부가 나서서 살려내야 한다는 것이다. 1920년 총독부에 의한 동아, 조선 창간에서부터 5.16 군사정부의 사이비 언론정리, 5공 군부세력의 언론기본법, 87년 이후 정기간행물등록법 등 지금까지의 정부 언론정책은 철저하게 작은 언론을 탄압해 왔다는 것이 장 교수의 주장이다.

나아가 지금 당장은 지역신문의 경제성이 없으므로 우선 정부가 ‘민주주의 복구 차원에서’ 자금 지원, 인재 육성 등을 통해 지역언론을 키워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지방지로는 안 됩니까”
“지방지는 지역사회에 뿌리를 둔 신문이 아닙니다. 지역사회에 뿌리박은 신문이라야 지역공동체를 살릴 수 있습니다”

그는 우리 삶의 영역을 국가와 시장, 시민사회로 3분하면서 지금의 전국지와 지방지는 국가와 시장에 함몰돼 있는 상태라고 진단한다. 전국지는 중앙정부와 대자본, 지방지는 지방정부 및 지방기업들과 유착 내지는 야합하면서 일반 시민들의 삶과는 무관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이 본래 있어야 할 자리는 시민사회이고 시민사회에 봉사하는 것이 언론의 본래 임무죠” 따라서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린 풀뿌리 지역언론이라야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친 김에 올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언론개혁운동에 관한 의견을 물었다.
“언론 문제를 우리 사회의 주요한 담론 과제로 만들었다는 것은 성과로 꼽아야겠죠”
하지만 ‘다양한 대안의 모색’이 불충분했던 점을 그는 아쉬운 점으로 꼽았다.

독재권력 몰아내듯이 조.중.동을 몰아내자는 식으로 운동을 전개하다 보니 국민 일반의 광범위한 지지를 끌어내지 못한 것 같다고 그는 진단했다. 언론 문제를 소유구조와 사주의 문제로 국한시킨 것도 그에겐 불만인 모양이었다.

***언론자유의 확대가 언론개혁의 핵심**

“신문제작 과정상의 문제, 불합리한 시장구조, 정부와 언론간의 떳떳치 못한 관계 등 여러 불합리한 관행 등을 짚었어야 했는데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느낌이 듭니다”

장 교수는 무엇보다도 ‘왜 언론개혁인가’에 대한 합의가 필요했었다고 말한다. 그가 생각하는 언론개혁의 핵심은 ‘보다 많은 사람이 언론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제도언론이 늘상 주장하는 국민의 알 권리보다는 표현의 기회 확대가 언론 자유의 본질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목표가 언론자유의 확대라고 했을 때, 언론자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와 합의 과정이 없었습니다. 각자가 자기만의 언론자유를 주장하다 보니 국민과의 광범위한 합의점을 형성하는 데 실패했다고 봅니다”

장 교수는 안티조선운동의 예를 들어 ‘자기만의 언론자유’를 설명한다.
“안티조선도 언론개혁운동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선일보에의 기고 거부도 운동의 한 방법으로 활용될 수 있겠죠. 그러나 조선일보에 기고하는 지식인들에 대해 ‘우리 편이 아니다’라고 비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프랑스의 계몽철학자 볼테르의 말처럼 “나는 당신의 말에 절대로 동의할 수 없지만 당신이 말할 자유만은 죽음으로써 지키겠다”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런 면에서 장호순 교수는 원칙론자이다.

‘기고 거부는 몰라도 취재 거부는 운동의 방법으로서 문제가 있다’든가 ‘최장집사건때 월간조선 배포금지 가처분 같은 것은 언론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의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도 관심을 가졌어야 했다’는 지적 등은 그의 원칙론자적 면모를 여실히 드러낸다.

언론개혁의 핵심이 언론자유의 확대이고 그 구체적 방법이 표현의 기회를 넓히는 것이라면 장 교수가 말하는 지역언론의 활성화는 분명 표현의 기회를 넓히는 길이 될 수 있다.

“솔직히 말해서 옥천신문이 전개한 조선일보 구독거부 운동의 성공이 없었다면 안티조선운동이 저토록 확산될 수 있었을까요”

***작은 것에서 시작하자**

그는 지역언론 활성화가 언론개혁, 나아가 사회변혁 운동의 주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지역언론 운동의 장점은 첫째 적들이 많지 않다, 둘째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다, 셋째 한 지역에서 성공을 거두면 다른 지역으로 쉽게 이식할 수 있다.

현재 사회변혁을 꿈꾸는 사람들은 대부분 거대 담론, 흑백의 2분법에 빠져 있는데 그보다는 ‘작은 것에서 시작하자’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지배세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약한 사회변혁세력들이 그 힘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지역운동이라는 것이다.

“어쨌거나 지역언론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 10여년을 견뎌 왔습니다. 이들이 살아 남았다는 것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물론 아직 많은 것이 부족합니다. 특히 인적 자원의 측면에서 미흡한 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적절한 지원을 해준다면 지역언론의 사회변혁의 주요한 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옥천신문을 비롯해 설악, 당진, 홍성, 남해 신문 등을 가능성 있는 지역신문으로 꼽으면서 이들을 잘 키워 나간다면 언젠가는 지역신문도 우리 언론의 주요한 한 축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피력했다.

작은 것에 대한 그의 기대는 태생적인 것일까. 그는 현재 50여개 분교의 학부모들과 함께 ‘작은 학교를 지키는 사람들’이란 모임을 꾸려가고 있다. 순천향대로 내려오기 전에는 두밀분교 폐교 반대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사실 그가 지역언론과 인연을 맺게 된 것도 지역사회운동을 통해서였다. 지난 96년 당시 문공부가 5개 지역신문에 대해 2개월 정간처분을 내렸을 때였다. 윤전시설을 갖추지 못한 특수 주간 신문은 정치 관련 보도를 할 수 없다는 정기간행물법에 따른 조치였다. 5개 지역신문의 정치보도란 지방선거에 관한 보도였다.

지역신문이 지방선거를 보도할 수 없다면 그것은 존재의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정부는 인쇄시설 미비를 이유로 이들 신문에 정간 조치를 내렸고 기존 신문들은 ‘사이비언론 정간 조치’라는 식으로 제목을 뽑았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당시 크리스찬 아카데미 사회교육원에서 지역운동을 하고 있었던 장호순은 이 일을 계기로 지역신문과 인연을 맺었고 그 인연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마침 그 당시 한국을 방문중이었던 미국의 은사(노스캐롤라이나대 마가렛 블랜차드 교수)에 부탁, 미국의 지역신문 현황을 국내 종사자들에게 전했다.

정간 당한 지역신문을 중심으로 정간법상의 인쇄시설 제한을 없애자는 법개정 청원운동을 통해 이를 관철시켰다. 이때 모인 30여개의 지역신문들은 ‘바른 지역언론 연대’(바지연)라는 모임을 결성했다. 장 교수는 초창기때부터 바지연의 지도위원을 맡고 있다. 바지연 회원들을 이끌고 96년에는 미국, 97년에는 유럽지역을 돌면서 그곳의 지역신문 활동에 대해 함께 공부하기도 했다.

사실 장 교수에게는 언론학자보다는 사회운동가라는 타이틀이 더 어울릴 성싶다. 그가 어떻게 해서 언론학을 공부하게 됐는지 궁금했다. 알고 보니 그는 남들과는 조금은 다른 과정을 통해 대학엘 들어갔다.

***언론학자가 된 기관사 청년**

그는 대학에 들어가기 전, 철도 기관조사(助士) 생활을 1년반동안 했다. 가정형편 때문에 국비로 가르치는 철도고등학교를 졸업했던 것이다. 기관조사 생활을 하면서 ‘세상을 제대로 살려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잠자리를 바꾸면 잠을 잘 못자는 체질도 기관조사 생활을 계속 할 수 없게 했다.

그래서 남들보다 2년 늦게 1979년 경희대에 입학했다. 입학할 때 생각은 황순원 선생이 계시는 국문과에서 문학을 공부할 생각이었으나 정작 졸업은 영문과로 했다. 졸업 당시 마침 학교에서 주는 장학금으로 미국 유학을 갈 기회가 주어졌다. 그때만 해도 문학에 대한 꿈은 여전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만난 문학은 장호순이 생각하는 그런 문학이 아니었다. ‘문학을 위한 문학’ ‘자기만의 내밀한 독백’ 이런 것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1년만에 전공을 저널리즘으로 바꾸었다. 글은 글이로되 여럿의 문제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장르가 저널리즘이었다.

대학시절의 경험도 한몫을 했다. 대학 2학년때 5.17이 터졌다. 공부삼아 읽던 타임지 등에 실린 한국 관련 기사는 찢기거나 검은 잉크로 지워진 채였다. 대학 때 체험한 우리 언론 자유의 실상이 저널리즘을 택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길게 보면 한국도 비전 있습니다”**

노스캐롤라이나대학에서 일관되게 공부한 주제도 언론자유였다. 석사 논문은 노동조합의 시위.집회에 관한 것이었다. 노동자들은 이를 언론자유라고 주장한 반면 자본가측은 업무방해라고 맞섰다. 노조의 시위와 집회가 언론자유에 해당된다는 판례가 확립된 것은 19세기 후반이라고 한다.

박사 논문은 미국의 ‘국가보안법’에 관한 것이다. 미국의 국가보안법은 우리처럼 하나의 법으로 돼 있는 게 아니라 연방 형법이나 주법 등에 몇 조항으로 들어 있다. 국가 안보를 이유로 개인의 자유나 권리를 제한한다는 점에서 국가보안법이라 할 수 있다.

언론자유를 비롯한 기본권 제한의 범위를 결정하는 요인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장 교수의 결론은 절대적인 법 원리가 아니가 시대정신(Zeitgeist)이 결정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안보와 기본권간의 줄다리기의 우열을 결정하는 것은 그 당시의 시대분위기라는 것이다.

50년대 매카시즘이 기승을 부릴 때라면 안보가 우위에 설 것이고 60년처럼 반전평화운동이 대세를 이룬다면 기본권이 우세해진다는 것이다. 장 교수의 결론을 더욱 밀고 나가면 언론자유 등 기본권의 확대에는 사회운동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셈이다.

장호순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미국의 언론자유는 거저 얻어진 게 아닙니다. 3백년을 싸워서 얻어낸 것입니다. 길게 보면 한국도 비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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