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의 성에 대해선 유난히도 부산을 떨며 금기시하고, 말은 많지만 제대로 된 이야기는 거의 없는 한국 사회. [미성숙 폭동]은 청소년의 성적 권리 의제들을 하나씩 발굴해나가는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이 처음으로 연재하는 꼭지이다. '야동의 여고생'과 '순수한 우리아이'로 대표되는 청소년의 성에 대한 두 가지 편견을 모두 비판하면서, 실제로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진짜' 이야기와 연애하면 벌점 받고 임신하면 쫓겨나는 '진짜' 부조리한 사회를 드러내고자 한다. <인권오름> 주.
최근 한 일본의 초등학교에서, 본인의 성 정체성을 여성이라고 밝힌 한 '남학생'이 '여학생'으로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미국에서도 오레곤주의 한 고등학교가 트랜스젠더를 배려한 성별 구분 없는 '성 중립적 화장실'을 만들고, 한 여자대학교에서 FTM(Female to male, 출생 시 부여된 성별은 여성이나 스스로를 남성으로 정체화하는 이를 일컫는 말) 트랜스젠더 학생이 그의 성 정체성을 지닌 채로 학교생활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입장 표명을 하는 등 트랜스젠더 학생의 학습권이 공론화되고 있다.
많은 나라들이 트랜스젠더 학생과 청소년의 존재를 인식해나가고 있지만, 한국은 아직 학교 안에 트랜스젠더가 있고, 청소년 중에도 트랜스젠더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서울 학생인권조례 제정 과정에서 조례 속 차별금지 조항의 차별 사유 중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임신ㆍ출산 여부'가 함께 논란이 되었지만 정작 성별 정체성이 무엇을 뜻하는지, 성별 정체성에서 기인한 차별을 금지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일례로 전북에서는 학생인권조례 제정 과정 중 논란이 되자 성적지향과 임신ㆍ출산 여부를 차별금지 사유에서 삭제시켰지만 성별정체성은 그대로 두었다. 사람들은 아마 성별정체성이 무슨 뜻인지 몰라 그랬을 것이라고 추측했다(전북 학생인권조례는 아직 제정되지 않은 상태다).
나는 한 달 전 졸업까지 11개월을 남겨둔 채로 여고를 자퇴했다. 11개월만 더 버티면 졸업장을 따낼 수 있었을 테지만, 단 11개월이라도 여고에서 여학생으로 있고 싶지 않았기에 자퇴를 결정했다. 여고에서 나는 '내'가 아니라 '여학생'일 뿐이었다. 나는 '여학생'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남성에 가까운', '사회적으로 남성으로 보이고 싶은' 청소년이다. 굳이 스스로를 FTM이라고 칭하지는 않는데, 나는 남성이 아니라 남성에 가까울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스스로의 성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건 13살 때 학교와 가정에서 '아웃팅'(outing)을 당한 레즈비언들을 취재한 시사 프로그램을 보고 나서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학교에서 그들의 연애 사실이 밝혀진 뒤 그들은 학교를 그만두고 탈(脫) 가정을 한 뒤 따로 독립해서 살고 있었다. 그 프로그램을 보고 나서 인터넷에 레즈비언이나 게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았고, 내가 레즈비언인지 자문했었다. 아마 고민을 하다가 아니겠지 하고 넘겼던 기억이 난다.
또 한 번 나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 건 어떤 계기로 성 소수자와 관련한 웹서핑을 하다가 청소년 성 소수자 커뮤니티 '라틴'(Rateen)을 찾은 뒤였다. 포털 다음의 한 카페였던 라틴에 가입하고 정모도 나갔다. 그곳에 올라온 게시물 중 누군가가 위키피디아에서 퍼온 성 소수자 단어 사전을 보고 내가 젠더퀴어(genderqueer, 남녀 성 구분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이를 부르는 말)라고 생각했다.
FTM이라고 정체화한 건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난 뒤인 중학교 3학년 말 무렵이었다. 단지 쇼트컷이 더 멋있어 보여서 해봤을 뿐인데, 주위 반응은 하나같이 "남자 같다"는 반응이었다. 심지어 옷을 고르고 있으면 "그건 여자 옷인데요"라는 말까지 들은 적도 있었다, 머리만 잘랐을 뿐인데 남자로 보일 수도 있다니. 물론 머리카락을 잘랐다고 트랜스젠더가 '된' 것이 아니라, 머리가 짧으니 남자로 여기는 그런 말들을 듣고 있자니 스스로가 정말 FTM인지 아닌지 고민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위의 일련의 과정을 거친 지금은 '사회적으로 남성에 가깝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젠더퀴어나 중성 같은 정형화된 언어로는 나에 대해 설명하기 힘들다. 남성과 여성을 나누는 사회의 성별 구분법으로 보면 나 자신이 남성에 가깝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가깝다'라고 한 것은 그렇다고 해서 기준에 딱 들어맞는 남성이라고 하기 싫고, 그럴 수도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여성이라고 하기도 싫었다. 나는 어느 쪽이든 성별을 둘러싼 기준에 맞춰 나를 다듬어 끼워 넣고 싶지 않다. 경계인이라는 표현이 더 좋겠다. 나는 지금 내가 그 어느 쪽도 아닌 동시에 둘 다이기도 해서 좋다.
태어날 때부터 남자아이에겐 파란색 옷을 입히고 머리를 짧게 자르게 한다. 여자아이에겐 분홍색 옷을 입히고 머리를 길게 기르게 한다. 남자아이는 바지를 입고 용감하고 씩씩해야 한다. 여자아이는 치마를 입고 조신하고 얌전해야 한다. 어렸을 때부터 족히 10년은 넘게 주입되어 온 성별 규범의 힘은 강력해서 그것이 너무도 당연한 것처럼 여기도록 만든다. 그래서 규범에서 벗어난 '이탈자'를 사람 그대로 온전한 시선으로 보지 않고 다만 '이탈자'로만 볼 뿐이다.
나와 같은 청소년 트랜스젠더들의 존재가 이러한 상황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러길 바란다. 청소년 트랜스젠더의 존재가 가시화되면 될 수록 점점 더 경계가 무너지리라고 기대하고 있다. 또 사람들은 트랜스젠더가 모두 성인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대다수의 트랜스젠더들은 자신이 트랜스젠더라고 처음 생각한 것이 청소년기 때이거나 그 이전이라고 말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성인 트랜스젠더로 살아가기도 힘들지만, 청소년 트랜스젠더는 호적정정을 할 수도, 성별정정 수술을 할 수도 없다. 성인이 될 때까지는 남성인 척, 여성인 척하고 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청소년 트랜스젠더에게 필요한 권리는 성인이 된 후의 나중의 권리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살아갈 권리다.
트랜스젠더 청소년을 불편하고 불행하게 하는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최소한 자신이 생각하는 성별로 마음 편히 학교에 다니고 옷과 호칭도 자신의 성별에 맞게 입고 쓸 수 있는 권리는 모든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교육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출생 시 부여된 성별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고, 나이에 따른 차별이 없어져 누구나 자신의 성별과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이 글은 "성인이 될 때까지 여성인 척하고 살아야 하나"라는 제목으로 주간인권신문 <인권오름>에도 실렸습니다. <인권오름> 기사들은 정보공유라이선스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정보공유라이선스에 대해 알려면, http://www.freeuse.or.kr을 찾아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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